2020년 12월4일. 건강검진을 받았다. 암이 간에 전이되었다고 했다. 일주일 뒤 12월11일. 재검사를 했다. 의사가 말했다. “이대로 두면 앞으로 남은 시간은 6개월 정도입니다.”

“하지만 저는 그다음 날 피아노 솔로 연주의 온라인 생중계를 앞두고 있었습니다. 그때까지의 인생에서 경험한 적 없을 정도로 자신의 ‘죽음’을 가까이 느끼며 그 상태 그대로 공연 당일을 맞이했습니다. (중략) 최악의 상황 속에서 어떻게 열다섯 곡의 연주를 마쳤는지 지금도 기억이 나지 않습니다(이하 큰따옴표 인용은 사카모토 류이치가 쓴 책 〈나는 앞으로 몇 번의 보름달을 볼 수 있을까〉에서)."

그날의 연주가 앨범 〈플레잉 더 피아노(Playing the Piano) 12122020〉으로 남았다. 사람들은 너무 좋다고 했지만 “몸과 마음의 상태가 모두 최악이었던 때라 적잖이 후회가 남았”고, “그것이 마지막이 된다고 생각하니 분한 마음이 들더”란다. “간신히 만족스러운 수준으로 피아노를 칠 수 있”을 때 마지막 연주 장면을 남겨두고 싶은 마음도 있고. 그래서 2022년 9월8일부터 9월15일까지 “일본에서 가장 소리의 울림이 좋다고 생각하는” NHK 509 스튜디오를 빌렸다. 체력을 안배하며 하루에 대략 세 곡씩 녹음했다. 그렇게 연주한 스무 곡이 〈류이치 사카모토: 오퍼스〉에 담겼다.

밤에서 시작해 서서히 아침이 밝아온 뒤 낮과 저녁을 지나 다시 밤으로. 처음부터 이 구성을 정해놓은 건 감독이었다. 늘 공연이 임박해서야 곡을 결정하던 사카모토였지만 “감독이 상당히 엄격한 분”이라서 이번엔 꽤 이른 시점에 선곡을 마쳤다. 이 곡을 연주할 때쯤 흐름상 아침이겠지, 이 곡은 아무래도 밤이 어울리겠지, 하면서 직접 스무 곡의 순서를 정했다.

첫 곡 ‘랙 오브 러브(lack of love)’를 연주하는 뒷모습이 영화의 첫 장면. 캄캄한 스튜디오 오른쪽 상단에 동그란 조명 하나가 달처럼 켜져 있다. 흡사 보름달 아래 홀로 연주하는 피아니스트처럼 보인다. 그 뒤로 곡마다 조금씩 밝기가 달라지는 스튜디오 조명으로 시간의 경과를 표현하다가 다시 밤이 된 것 같은 후반부, 열일곱 번째 곡 ‘Trioon’을 연주하는 사카모토 류이치. 이번엔 화면 왼쪽 상단으로 자리를 옮긴 보름달, 아니 둥근 조명 하나. 한 음 한 음 온 힘 다해 연주하는 수척한 얼굴 앞에서 나는, 그가 쓴 마지막 책 제목을 소리 없이 되뇌고 있었다. 〈나는 앞으로 몇 번의 보름달을 볼 수 있을까〉.

세상 떠나기 6개월 전, 오직 둘을 위한 공간에서 피아노 한 대와 마주 앉은 사카모토 류이치. 평생 사랑했지만 또 평생 다투었던 연인과 마지막 사랑을 나누듯, 그는 자주 피아노를 어루만지고 종종 마음이 흔들리다가 결국 담담하게 돌아선다. 다큐멘터리이면서 공연 실황이지만, 그러므로 누가 뭐래도 나에겐 슬픈 멜로영화로 기억될 작품 〈류이치 사카모토: 오퍼스〉.

집에서 그가 연주하는 모습을 미리 아이폰으로 찍은 뒤 세밀하게 카메라 움직임을 설계하고 꼼꼼하게 스토리보드를 준비한 범상치 않은 재능의 소유자 네오 소라, 피아노 건반의 색을 닮은 단정한 흑백 화면으로 위대한 아티스트의 마지막 연주를 정갈하게 기록한 이 ‘상당히 엄격한 감독’은, 사카모토 류이치의 아들이기도 하다.

기자명 김세윤 (영화 칼럼니스트) 다른기사 보기 editor@sisain.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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