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형근의 ‘역사의 뒤 페이지’ 재난의 공동체 무정과 동정을 넘어 조형근 (동네 사회학자) 정조 1년(1777년) 초여름 가뭄이 심했다. 정조의 일기 〈일성록〉 5월15일자에 가뭄 이야기가 나온다. 왕이 말했다. “어제는 비가 올 듯한 기미가 매우 다분했는데 끝내 비가 내리지 않았으니 너무도 안타깝다. (중략) 천시(遷市, 시장 옮기기)는 몇 차에 행하는가?” 예조판서 홍낙성이 대답했다. “11차에 행한다고 합니다.” 왕이 한탄했다. “선조(先朝)께서 늘 중대하고 어려운 일로 생각하여 거행하지 않았었다.”농경사회에서 가뭄은 심각한 위기였다. 통치의 기초가 흔들리는 재난이 될 수도 있었다. 뭐라도 해야 했다. 천시 또는 사 기억함으로써 잊어버리는 것들, 두 개의 〈너의 이름은〉을 보며 [역사의 뒤 페이지] 조형근 (동네 사회학자) ※영화 〈너의 이름은〉의 스포일러가 포함되어 있습니다.여기 일본 청소년 두 명이 있다. 17세 소녀 ‘미츠하’는 깊은 산골 이토모리에 사는 신관 집안의 무녀다. 다음 생에는 산골 말고 화려한 도쿄의 남자로 살고 싶다. 또 다른 소년 ‘타키’는 바로 그 도쿄에서 고교 시절을 만끽 중이다. 어느 날 놀라운 사건이 일어난다. 둘의 몸이 바뀐 것이다. 불규칙하게, 자는 동안 몸이 바뀐다. 처음에는 실수를 연발하다가 상황을 깨닫는다. 서로의 생활을 위해 규칙들을 정하고, 몸이 바뀐 날 생긴 일을 스마트폰에 남겨 준다. 이 이상한 현상을 극복 좋은 의사는 민중과 어떻게 만나야 할까 [역사의 뒤 페이지] 조형근 (동네 사회학자) 1959년 3월20일은 몹시 추웠다. 눈보라도 몰아쳤다. 이미륵의 9주기 기일이던 그날, 전혜린은 이미륵의 친구였던 독일인 T, S와 함께 뮌헨 교외의 묘지를 찾았다. 무덤은 거친 들판 가운데 작은 공동묘지 안에 있었다. “그의 무덤은 아무 장식도 없고 아무 데나 굴러다니는 것 같은 돌로 만든 작은 비석 위에 단 세 글자, 새겨진 한문 李彌勒 때문에 누구의 눈에나 금방 띄었다. … 나는 화환을 비석 앞에 갖다 놓았다(전혜린, 〈그리고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 1966).”전혜린(1934~1965)은 시대의 신드롬이었다. 수학을 0 콰이강의 다리에 숨은 조선인의 슬픈 이야기 [역사의 뒤 페이지] 조형근 (동네 사회학자) 멀리서 경쾌한 휘파람 소리가 들린다. 밀림을 행군하는 장병들이 스코틀랜드 군가 ‘보기 대령 행진곡’을 부른다. 들으면 누구나 아, 하게 되는 익숙한 곡이다. 당당히 행진하며 부대가 들어오는 곳은 타이의 정글 속 포로수용소다. 말레이에서 일본군에 항복한 영국군 포로들이 도착한 것이다. 일본군은 전쟁물자 수송을 위해 한창 철도를 건설 중이다. 험준한 협곡을 흐르는 강에 열차가 지날 다리를 건설하면서 포로들을 동원한다. 포로들은 기어코 다리를 완성한다. 그리고 완공 날, 영국 특공대가 다리를 폭파한다. 영화 〈콰이강의 다리〉(1957) 〈사운드 오브 뮤직〉 뒤, 들리지 않는 이야기 [역사의 뒤 페이지] 조형근 (동네 사회학자) 1947년 여름, 마리아 아우구스타 폰 트라프(1905~1987)는 미국과 유럽의 여러 친구들에게 편지를 보냈다.‘사랑하는 친구들에게 게오르크의 소식을 전합니다. 연주 여행 중 게오르크의 건강 상태가 많이 나빠졌고, 진단 결과 폐암 선고를 받았습니다. 집으로 돌아온 게오르크는 행복해했지만 점차 악화됐지요. 마지막 순간이 다가왔습니다. 아이들을 부르고 신부님도, 의사도 불렀습니다. 우리는 침대 주위에 무릎을 꿇고 앉아 ‘로사리오 기도’를 바쳤습니다. 한밤중에 의사가 말했습니다. “마지막인지도 모르겠습니다.” 그 순간 나는 그의 귀에 무례한 시대, 스타도 팬도 함께 울었다 [역사의 뒤 페이지] 조형근 (동네 사회학자) “1939년 6월23일, 경기도 인천부 경정 203번지에 사는 소학교 5학년생 유윤순(15)이 돌연 집을 나선 후 종적을 감췄다. 끝내 딸을 찾지 못한 어머니 한씨가 경찰에 수색원을 냈다. 배우를 동경하던 딸이 기어코 배우가 되려고 가출했다며 하소연이다(〈매일신보〉 1939년 7월12일, ‘꿈 많던 처녀시대, 배우를 동경코 가출’).” 윤순은 어쩌다 배우를 꿈꾸게 됐을까? 기사에는 단서가 없다.주소를 보다가 혹시나 싶어 검색을 해본다. 극장 ‘애관’이 인천부 경정 238번지에 있었으니 윤순의 집과 지척이다. 애관이 어떤 곳인가? 1 무지한 아름다움은 무죄일까? [역사의 뒤 페이지] 조형근 (동네 사회학자) 1936년 8월9일 밤, 서울 광화문통, 종로 대창양화점 앞, 중학동 일대에 인파가 모여들었다. 신문사의 본사나 속보소들이 있는 곳이었다. 신문사 스피커에서는 NHK 아나운서 야마모토의 흥분된 목소리가 울렸다. 밤 11시2분, 드디어 “탕” 하는 출발 신호가 들렸다. 라디오 속 10만 관중의 함성과 조선인 군중의 함성이 뒤섞였다. “손기정!” “남승룡!” 뜨거운 응원 소리가 한여름의 밤하늘을 더욱 덥혔다.8월1일에 개막한 베를린올림픽은 식민지 조선인들에게도 가슴 뛰는 이벤트였다. 일본 대표단의 일원으로 조선인 7명이 올림픽에 참가한 세계일주의 꿈, 돌아와서 만나는 나 [역사의 뒤 페이지] 조형근 (동네 사회학자) “지구는 둥그니까/ 자꾸 걸어나가면/ 온 세상 어린이를/ 다 만나고 오겠네.” 어릴 적 즐겨 부르던 동요의 한 구절이다. 둥근 지구를 걷다 보면 정말 출발한 곳으로 돌아오게 될까? 생각해보면 바로 이게 세계일주다. 세계일주는 온 세상 사람들을 다 만난 다음 처음 자리로 돌아오는 행위다. 그때 우리는 어떻게 달라져 있을까?기록상 최초로 세계일주를 한 것은 마젤란 탐험대였다. 1519년 9월에 스페인을 출발해 지구 한 바퀴를 돌고 3년 만에 귀환했다. 약 270명이 출발해서 18명이 돌아왔다. 마젤란도 필리핀에서 죽었다. 오랫동안 세계 조국과 국적과 고향이 하나가 아닌 사람들 [역사의 뒤 페이지] 조형근 (동네 사회학자) 러시아 작가 안톤 체호프의 문학 세계는 1890년의 사할린섬 기행을 전후로 나뉘곤 한다. 기행 이전에도 명성이 높았지만, 〈갈매기〉(1896), 〈바냐 아저씨〉(1899), 〈세 자매〉(1900), 〈벚꽃동산〉(1903) 등 그의 희곡 대표작이 모두 이 기행 후에 탄생했다. 사할린은 거대한 러시아제국의 동쪽 끝, 변방의 유형 식민지(Penal Colony·형벌 식민지)였다. 길이 끔찍하던 시절, 모스크바에서 1만㎞나 떨어진 변방을 찾는 것은 고난이었다.체호프는 1890년 4월21일 모스크바를 출발, 시베리아를 횡단하여 7월11일 사 한국인을 혐오한 어떤 서구인 이야기 [역사의 뒤 페이지] 조형근 (동네 사회학자) “백인 여행자가 처음으로 한국에 체류할 경우 처음 몇 주 동안은 기분 좋은 것과는 영 거리가 멀다. 만약 그가 예민한 사람이라면 두 가지 강력한 욕구 사이에서 씨름하며 대부분의 시간을 보낼 것이다. 하나는 한국인들을 죽이고 싶은 욕구이며, 또 하나는 자살하고 싶은 욕구다. 개인적으로 나라면 첫 번째 선택을 했을 것이다.”한국인에 대해 이토록 강렬한 혐오 발언을 한 주인공은 누굴까? 20세기 초에 활동한 미국 작가 잭 런던이다. 러일전쟁(1904~1905) 취재차 한국에 와서 1904년 2월7일경부터 5월1일경까지 3개월 가까이 한국 서구의 시선이 동양 여성을 그릴 때 [역사의 뒤 페이지] 조형근 (동네 사회학자) 메이지유신 성공의 디딤돌을 놓은 사카모토 료마(1836~1867)는 일본인에게 가장 사랑받는 역사 인물 중 한 명이다. 도사번(지금의 고치현)에서 태어나 1853년, 검술을 배우러 에도(지금의 도쿄)로 갔다. 그해 7월8일, 페리 제독이 이끄는 미국 군함 네 척이 나타났다. 해안경비대원으로 차출된 료마는 군함을 직접 본다. 2010년에 방영된 NHK 대하사극 〈료마전〉에서의 묘사가 인상적이다. 거대한 배들이 지나가면서 일으킨 엄청난 물보라가 료마를 덮친다. 쓰러진 료마는 흑선의 위용에 넋을 잃는다. 당대 일본인들에게 서구의 위력이 과학이 정녕 우리를 구원할 것인가? [역사의 뒤 페이지] 조형근 (동네 사회학자) 국내 연구진이 상온·상압 초전도체를 개발했다는 뉴스로 세상이 난리다. 논문 초고를 내면서 초전도체를 만드는 상세한 레시피도 함께 공개했다고 한다. 자신 있으니 다 밝힌 것 아닐까? 국내의 관련 학회에서 검증을 선언했고, 세계 곳곳의 연구기관들도 재현 실험 중이다. 사실이라면 노벨상이 문제가 아니란다. 손실 없는 송전, 발열 없는 반도체, 자기부상열차는 물론이고 에너지 문제를 해결할 상온 핵융합도 앞당길 수 있다는 것이다. 그야말로 혁명이다.관련 기업들의 주가가 요동치고, 대중의 반응도 뜨겁다. 해외의 유수 연구기관들이 재현 실험 중 누가 양공주를 멋대로 규정하는가 [역사의 뒤 페이지] 조형근 (동네 사회학자) 한국 텔레비전 역사상 최고 시청률(65.8%)을 기록한 프로그램은 KBS 2TV의 드라마 〈첫사랑〉(1996~1997)이다. 무명 배우 손현주가 밤무대 마스터 주정남 역할로 인생 역전을 이뤘다. 극중에서 부른 노래가 인기를 얻자 앨범도 냈다. 그중 ‘내 이름은 순이’라는 노래가 히트했다.“내 이름은 순이랍니다/ 하지만 여기서는 에레나예요/ 그냥그냥 십팔번으로 통한답니다/ 술이 좋아 마신 술이 아니랍니다/ 괴로워서 마신 술에 내가 취해서/ …/ 그날 밤 극장 앞에서/ 그 역전 캬바레에서/ 보았다는 뜬소문도 거짓이에요.”군대 갔다 온 네 명의 여성이 보여주는 사랑과 혁명의 이중주 [역사의 뒤 페이지] 조형근 (동네 사회학자) 영화는 쓸쓸한 바닷가에서 시작한다. 덴마크의 외딴 마을, 나이 지긋한 자매 마르티나와 필리파가 목사 아버지가 남긴 작은 교회를 이어가며 소박하게 살고 있다. 어느 날 프랑스 여인 바베트가 등장하고 사건이 일어난다. 〈바베트의 만찬〉(가브리엘 악셀 감독, 1987) 이야기다.영화는 49년 전, 자매가 젊고 빛나던 시절로 돌아간다. 젊은 구애자들 중 스웨덴에서 온 장교 로렌스와 파리에서 온 파핀이 특히 진지했다. 자매의 마음도 부풀었다. 딸들이 사역을 돕기 바란 아버지가 허락하지 않았다. 자매는 순종했고 나이를 먹었다.35년이 흐른 1 카스바에서 하는 망향, 자기 연민의 서사를 넘어서기 [역사의 뒤 페이지] 조형근 (동네 사회학자) ‘국민학교’ 5학년 때 담임선생님은 일제 시기에 교육받은 분이었다. 일제 시기 말 소년비행병 학교에 지원한 일이 큰 자랑거리였다. 항공점퍼에 비행모와 고글을 쓰고 조종석에 앉은 사진을 보여주며 뿌듯해하던 모습이 지금도 선하다. 종전 때문에 진짜 출격을 못했다며 아쉬워했다. 수업 시간에는 열중쉬어 부동자세를 취해야 했고, 남학생은 상고머리, 여학생은 커트 단발만 허락됐다. '나의 조국'과 군가를 부르며 매일 제식훈련을 받았다. 운동회 때는 분열행진 시범도 보였다. 논산에서 받은 제식훈련이 훨씬 쉬웠다. 그이의 일제 시기는 끝나지 않았 역사의 후퇴 앞에서 리샹란을 생각하다 [역사의 뒤 페이지] 조형근 (동네 사회학자) 지난 3월28일, 일본의 음악가 사카모토 류이치가 세상을 떠났다. 남긴 작품이 많지만, 가장 널리 알려진 것은 그에게 오스카 음악상을 안긴 영화 〈마지막 황제〉(베르나르도 베르톨루치 감독, 1987)의 OST일 것이다. 영화는 청나라 마지막 황제이자 일제의 괴뢰 만주국 황제를 지낸 푸이의 파란만장한 삶을 그린다. 중국 현대사의 격동과 푸이의 복잡한 내면이 만나고 뒤틀린다. 드라마틱하던 영화의 호흡은 푸이의 내면으로 초점을 옮기면서 차츰 유장해진다. 황제에서 민국의 국민으로, 다시 황제로, 죄수로, 이윽고 인민공화국의 평범한 공민으로 더보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