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호가 바뀌었는데 앞의 트럭이 움직이지 않았다. 운전자가 딴짓을 하는 게 분명했다. 빠앙. 경적을 울렸다. 한 번 더. 다시 한 번 더. 그래도 꿈쩍하지 않는 앞차 때문에 슬슬 짜증이 났다. 얼마 뒤 트럭이 출발하고 나서야 알게 되었다. 휠체어 탄 사람이 길을 건너고 있었다는 것을.

“그때 울린 경적을 지금도 후회하고 있다. 내가 피해자가 되는 일에는 민감하지만, 내가 가해자일 수 있다는 생각은 하기 어렵다는 걸 그때 알았다. 이 문제를 10년 넘게 고민해왔다. 가해자를 어떻게 그려야 할까? 피해자는 어떻게 생겨날까? 누가 가해자이고 누가 피해자인지 어떻게 알아챌 수 있을까? 그것이 나의 오랜 주제였다.”

작가 사카모토 유지는 말했다. 앞차의 사정을 몰라 경적을 울린 10년 전 사소한 실수가 이 대단한 시나리오의 시작이라고. 그날 이후 ‘알지 못해서 알아차리지 못하는 일’들에 자꾸 마음이 쓰였다. ‘악의가 없어도 악인이 될 수 있다는 두려움’과 싸우며 〈괴물〉을 썼다. ‘나도 모르는 사이에 내가 모르는 사람을 벼랑 끝으로 내몰 수 있는 세상’을 끈질기게 파고들어 마침내 이 괴물 같은 작품을 손에 넣었다.

초등학교 5학년 아들 미나토(구로카와 소야)를 혼자 키우는 엄마 사오리(안도 사쿠라)가 이야기의 출발점이다. 담임교사 미치토시(나가야마 에이타)가 미나토를 괴롭힌다는 의심이 점점 커져간다. 학교를 찾아가 항의해보지만 교장(다나카 유코)은 기계적인 사과만 반복하고 담임은 억울한 누명이라고 항변한다. 화를 참지 못해 폭발해버린 엄마에게 미치토시가 이죽거리며 던진 한마디. “당신 아들이 다른 아이를 괴롭히고 있다고!”

내 아이가? 설마 진짜? 엄마는 혼란에 빠지고 때마침 태풍은 다가오고 아이는 감쪽같이 사라진다. 이제 영화는 2막으로 넘어간다. 지금까지 보여준 이야기를 담임교사 미치토시의 시선으로 완전히 다르게 그려낸다. 이어지는 3막. 마침내 아이들의 시선으로 찬찬히 들여다보는 사건의 이면과 전말. 괴물은 누구인가? 진짜 가해자는 누구인가? 소문과 의심, 오해와 속단의 가장 큰 피해자는 누구인가?

영화라는 예술은 종종 우리를 배심원 자리에 앉힌다. 영화 속 누구의 잘못이 더 큰지 따져보게 만든다. 그러다 가끔, 관객을 증인으로 호출하는 영화를 만난다. 더 많이 생각하고 더 신중한 태도로 이야기를 곱씹을 책임이 우리에게 주어진다. 그러다 아주 또 가끔, 정말 드물게 우리는, 〈괴물〉 같은 영화를 마주치는 것이다. 관객을 피고인의 자리에 세워놓는 영화. 내가 본 이야기를 판단하는 데 그치지 않고, 기어이 ‘나’라는 인간의 실체를 자백하게 만드는 영화.

올해 칸 국제영화제 각본상 수상작 〈괴물〉의 넓고 깊은 이야기가 모두 끝난 뒤, 내가 서 있는 곳은 10년 전 작가 사카모토 유지가 멈춰선 그 신호등 앞이었다. 빠앙. 경적을 울리는 손이 내 것이었다. ‘악의가 없어도 악인이 될 수 있다는 두려움’을 품고 극장을 빠져나온 나는, ‘나도 모르는 사이에 내가 모르는 사람을 벼랑 끝으로 내몰 수 있는 세상’으로 돌아갔다. 그날 이후 ‘알지 못해서 알아차리지 못하는 일’들에 자꾸 마음이 쓰인다. 모든 장면이 좋았지만 특히 학교 음악실 장면과 영화의 마지막 장면, 이 두 시퀀스가 두고두고 잊히지 않는다.

기자명 김세윤 (영화 칼럼니스트) 다른기사 보기 editor@sisain.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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