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야케 쇼 감독의 영화 〈너의 새는 노래할 수 있어〉가 개봉한 2020년 봄, 나는 흥분을 감추지 못하고 이렇게 썼다. “좋은 영화는, ‘내가 겪어보지 않은 일’을 통해 ‘내가 겪어봤던 삶의 한때’를 다시 생각하게 만든다. 바로 이 영화처럼. 마냥 예쁘게만 포장된 여느 일본 청춘영화들과 처음부터 끝까지 다른 영화. 거칠고 솔직하고 세련됐다. 나는 감히 “일본 영화의 미래를 보았다”라고 말하고 싶다.”(〈시사IN〉 제657호 ‘일본 영화의 미래를 보다’ 칼럼 참조)

그 영화에서 일본 영화의 미래를 본 사람이 나 말고도 많아서, 청각장애인 여성 프로 복서 오가사와라 게이코의 자서전을 영화로 만들고 싶은 프로듀서가 미야케 쇼에게 연출을 부탁했다. 감독이 써온 시나리오엔 복싱 영화의 흔한 클라이맥스가 없었다. ‘청각장애의 핸디캡을 극복하고 세상의 편견에 맞서 마침내 프로 복서가 되는 이야기’ 같은 건 쓰지 않은 것이다.

주인공 게이코(기시이 유키노)는 이미 프로 복서가 되어 있다. “두 번째 시합에서 승리하고 세 번째 시합을 준비하는 사이”의 시간을 맞이하고 있다. 그에게 장애는 뛰어넘어야 할 허들이 아니라 늘 차고 다니는 모래주머니 같은 것. 다른 영화라면 더 부각했을 농인의 불편함을 그래서 굳이 강조하지 않는다. 다른 사람이 만들면 라스트 신이 되었을지 모를 장면이 이 영화에서는 오프닝 장면이 된다. 다른 사람이라면 중요하게 다루지 않았을 시간을, 언제나 가장 중요하게 다루는 감독이어서 그랬다.

전작 〈너의 새는 노래할 수 있어〉에서 겨울로 유명한 홋카이도의 여름을 그린 감독. 그곳에서 성장했으므로 “정말 짧아서 더 소중한 계절”이란 걸 누구보다 잘 알기에 가능했던 선택. 영화 속 세 사람의 청춘을 닮은 여름 한 철을, 덕분에 나도 함께 살아낸 기분이었다. 이번 영화에서는 봄의 벚꽃을 볼 수 없는 시간, 도쿄의 겨울을 담았다. 영화에선 거의 만난 적 없는 낡고 쓸쓸한 도쿄의 뒷골목을 들여다본다. 경기장에서 피 흘리는 시간보다 체육관에서 땀 흘리는 시간을 더 세밀하게 살핀다.

문제는 그다음이니까. 누구나 점을 찍을 순 있지만 아무나 선을 그리는 건 아니니까. 한 번은 몰라도 계속할 수 있을까? 지금은 좋지만 앞으로도 좋을까? “자기가 하고 싶은 걸 계속할지 다른 일을 시작할지” 고민하게 되는, “청춘 이후의 인생에 찾아온 첫 번째 큰 위기”를 그리는 게 감독의 목표라고 했다. 링 위에서 승리를 거두는 건 복서만의 경험이지만, 삶에서 경험하는 패배는 우리 모두의 것이므로. 복싱을 몰라도 인생을 알면, 이 영화에 담긴 게이코의 시간이 실은 내 시간이기도 하다는 걸 깨닫게 된다.

영화를 보고 나는, 어릴 적 복싱 중계를 기억해냈다. 펀치를 맞고 휘청이며 뒷걸음질 치는 선수에게 해설자가 소리치고 있었다. “로프 반동을 이용해서 빠져나와야 합니다!” 로프 때문에 벗어날 순 없지만 로프 덕분에 버텨낼 순 있다. 나를 가로막는 울타리가 또한 내가 기댈 곳이다. 지쳐버린 나를 같이 버텨주다가 다시 힘껏 앞으로 밀어준다. 게이코에겐 복싱이, 체육관이, 그를 아끼는 사람들이 로프 반동이다. 나에겐 뭘까, 로프 반동. 계속 그 생각을 하고 있다.

기자명 김세윤 (영화 칼럼니스트) 다른기사 보기 editor@sisain.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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