장기자랑 시간이었다. 어떤 친구는 노래를 했고 어떤 친구는 어설픈 마술을 해 보였다. 루카스는 춤을 췄다. 크리스티나 아길레라의 ‘파이터(Fighter)’ 안무를 멋지게 해 보였다. 그게 마지막 무대가 되었다. 춤이라면 자신 있었는데 다시는 춤을 출 자신이 없어졌다.

“남자가 왜 그런 춤을 춰?” 놀려대는 아이들 때문에 겁이 났다. 무리에 속하지 못할까 봐 두려웠다. 그들이 원하는 사람이 되기로 마음먹었다. 남들처럼 행동하지 않아서 좋아했던 친구들을 조금씩 멀리했고, 남자답게 행동하지 않아서 통했던 친구들을 열심히 밀어냈다.

“‘남이 뭐라고 하든 난 하고 싶은 걸 계속 할 거야’라고 말할 용기가 열두 살의 내겐 없었다”라고 서른두 살 영화감독 루카스 돈트는 후회하고 있다. 첫 장편영화 〈걸〉로 칸 국제영화제에서 상을 네 개나 받은 뒤, 두 번째 영화에서는 20년 전 겪은 그 혼란스러운 감정을 이야기해보기로 했다. ‘무리에 속하지 못할까 봐’ 열심히 밀어낸 친구들을 생각하며 시나리오를 썼다.

레오(에덴 담브린)와 레미(구스타브 드 와엘)는 어려서부터 단짝이었다. 형제처럼 붙어 다녔고 한몸처럼 움직였다. 하루의 대부분을 함께했고, 한 해의 대부분이 그런 하루로 채워졌다. 나란히 열세 살이 되어 중학생이 되었을 때, 처음 만난 친구들이 물었다. “둘이 사귀는 거야?”

레미는 웃어넘겼지만 레오는 그러지 못했다. 자기도 모르게 레미를 밀어내기 시작했다. 절대 사귀는 게 아니라는 걸 남들에게 보여주려 애썼다. ‘우리’의 우정 대신 ‘무리’의 인정을 택한 레오 곁에서 점점 외로워지는 레미. 함께 웃으며 자전거 타던 등굣길을 혼자 말없이 페달을 밟아 돌아오는 일이 늘어나던 어느 날. 레미가 학교에 나오지 않는다. 레오가 집으로 달려간다.

지난해 칸 국제영화제 심사위원대상 수상작 〈클로즈〉의 초반 15분을 감독은 “한 편의 단편영화처럼” 보이게 만들었다. 아지트에서 뛰어나와 신나게 꽃밭을 내달리는 친구. 같이 먹고 같이 자고 같이 웃다 보면 어느새 저무는 하루. 햇살은 눈부시고 우정은 반짝이는, 한없이 순수하며 더없이 아름다운 어린 날.

“그 15분이 영원히 계속되길 관객은 바라겠지만, 그런 시간은 둘에게 다시 오지 않는다. 우리 모두의 삶이 그러하듯이.” 이렇게 말하는 감독이 그 15분의 마지막 1분에 담아낸 건, 다른 아이들 눈을 의식하며 레미에게서 살짝 등을 돌리는 레오다. 남들이 사랑이라고 처음 부르는 순간, 오래전부터 이미 사랑이던 관계에 금이 가는 모습이다. 그렇게 멀어지기 시작한 두 사람이 끝끝내 떨어질 수 없는 존재가 되고 마는, 이 아름답고 슬픈 이야기의 시작이다.

아마도 영화는, ‘나’의 쌀로 ‘우리’의 밥을 짓는 일. 감독의 기억을 관객의 가슴에 뿌려 저마다의 꽃을 피워내는 일. 한 번이라도 남의 언어에 나의 마음이 흔들려본 사람에겐 〈클로즈〉가 ‘내 얘기’다. 내가 밀려날까 두려워 내가 밀어냈던 친구를 한 사람이라도 떠올리는 사람에게 〈클로즈〉는 ‘내 영화’다. 잊고 살았는데 그런다고 잊혀진 건 아니더라. 과거는, 그리고 기억은.

기자명 김세윤 (영화 칼럼니스트) 다른기사 보기 editor@sisain.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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