엄태화 감독의 첫 상업영화 〈가려진 시간〉(2016)의 아이들은 멈춘 시간 속에 살아간다. 현실 세계에서 ‘실종’으로 처리된 아이들의 시간만 다르게 흐르고, 결국 성민(강동원)이 혼자 며칠 사이 갑자기 어른이 되어 돌아온다. 아무도 성민의 말을 믿지 않는다. 친구 수린이만 믿어준다. 필사적으로 그를 보호하려고 애쓴다.

같은 감독의 신작 〈콘크리트 유토피아〉의 사람들은 닫힌 공간 속에 살아간다. 거대한 재난이 덮쳐 다른 아파트는 다 무너졌는데 ‘황궁아파트’만 무너지지 않았고, 결국 이 오래된 복도식 아파트 103동이 유일한 피난처다. 대다수 주민들은 ‘외부인을 몰아내야 우리가 산다’고 목소리를 높인다. 명화(박보영)처럼 ‘함께 살자’고 호소하는 주민은 극소수. 끝까지 인간다움을 놓치지 않으려고 애쓰는 사람이 정말 몇 없다.

〈가려진 시간〉의 아이는 혼자 어른이 되었다. 〈콘크리트 유토피아〉의 어른들은 함께 괴물이 되었다. 다른 시간을 살다 왔다는 이유로 성민이는 숲으로 쫓겨나 벼랑 끝에 내몰리고, 같은 공간에 살지 않았다는 이유로 아파트 주민이 아닌 사람은 단지 밖으로 쫓겨나 죽음을 맞이한다.

〈가려진 시간〉의 ‘감쪽같이 사라진 아이들’을 보며 어떤 이는 ‘대구 개구리 소년’을 떠올렸고, ‘물에 빠진 아이들’의 시간만 그대로 멈춰버린 이야기에서 또 어떤 이는 ‘세월호 아이들’을 떠올렸다. 그렇게 우리 곁을 떠난 아이들 가운데 단 한 명이라도 기적처럼 살아 돌아오는 영화의 판타지에 적잖이 위로를 받은 관객이 많았다.

〈콘크리트 유토피아〉의 주민들이 붙인 ‘외부인 출입금지’ 팻말에서 ‘임대아파트 주민 출입을 막은 분양아파트 주민들’을 먼저 떠올리는 사람이 있는가 하면, 난민 문제와 팬데믹 시기의 풍경까지 곱씹는 사람도 있다. 그러다 영탁과 명화 사이에서 갈등하는 민성(박서준)처럼 관객도 어느새 스스로 묻게 되는 것이다. “나라면 어떻게 했을까?”

매번 현실에 존재하지 않는 시간과 공간으로 관객을 초대한 뒤, 그 어떤 영화보다 현실적인 시공간의 감각으로 우리의 민낯을 마주하게 만드는 엄태화 감독. 한국에서 아직 일어난 적 없는 재난을 상상한 뒤, 한국에선 이미 매일 일어나고 있는 갈등과 충돌을 재현하는 영화 〈콘크리트 유토피아〉.

‘잘 만든 것 같긴 한데 너무 어두울 거 같아’ ‘배우들 연기는 보고 싶은데 너무 무거운 얘기면 어쩌지?’ 이렇게 망설이는 사람을 만날 때마다 나는 언젠가 주워들은 어느 농민의 말을 들려준다. ‘쓴맛이 나는 풀도 계속 씹다 보면 달아져.’ 딱 이 영화가 그렇다. 계속 곱씹을수록 단맛이 나는 쓴맛이다.

커피 좋아하는 사람은 안다. 그냥 쓰기만 한 커피가 있고 맛있게 쓴 커피가 있다는 걸. 후자의 경우엔 ‘쓰다’는 말 대신 ‘바디감이 있다’는 말을 쓴다는 것도. 바로 이 영화가 그렇다. 묵직한 바디감을 가진, 참 맛있게 쓴맛이 나는 영화. 연기 보는 맛, 촬영 보는 맛, 미술 보는 맛, 연출 보는 맛···. 그러니까 한마디로 ‘영화 보는 맛’이 있는, 올여름 최고의 한국 영화.

기자명 김세윤 (영화 칼럼니스트) 다른기사 보기 editor@sisain.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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