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른쪽에 파란 지붕 창고가 있는 곳이 김건희 여사 일가가 소유한 경기도 양평군 강상면 토지이다. ⓒ시사IN 이명익
오른쪽에 파란 지붕 창고가 있는 곳이 김건희 여사 일가가 소유한 경기도 양평군 강상면 토지이다. ⓒ시사IN 이명익

윤석열 대통령 처가에 특혜를 주기 위한 변경이었을까? 아니면 노선 계획을 바꾸고 보니 그 부근에 김건희 여사 일가의 땅이 있었던 걸까? 서울-양평 고속도로를 둘러싼 논란의 핵심이다.

변경안의 종점인 경기 양평군 강상면 병산리에서 반경 5㎞ 이내에 김건희 여사와 그 일가가 보유하는 것으로 확인된 토지는 29필지다. 합치면 3만9394㎡(약 1만1917평)로 축구장 5개 크기에 해당한다.

서울-양평 고속도로 건설은 2021년 기획재정부 예비타당성조사(예타)를 통과하며 사업 추진이 본격화됐다. 예타 통과안은 경기도 하남시 감일동에서 출발해 경기도 양평군 양서면에서 끝나는 약 27㎞ 왕복 4차선 고속도로를 신설하는 계획이다. 현재 ‘기존안’으로 불리는 노선이다.

양평군민들은 서울과 양평을 잇는 고속도로를 숙원사업으로 꼽아왔다. 두물머리를 지나는 6번 국도는 주말마다 상습 정체를 겪는 구간으로 악명이 높다. 이곳의 교통 정체를 해소하고 서울과 접근성을 높이고자 하는 염원이 투영됐다. 2009년 민자사업이 추진되었다가 무산된 뒤 진척이 없었으나 2017년 국토교통부(국토부)의 ‘1차 고속도로 건설계획 중점추진사업’에 포함되며 2019년 예비타당성(예타) 조사 착수, 2021년 예타 통과까지 이어졌다.

다만 2021년 한국개발연구원(KDI)이 발표한 예비타당성조사 보고서를 보면, 정부가 이 사업에서 방점을 찍었던 부분은 종점인 양평 지역보다는 시작점인 서울과 수도권 쪽의 교통량 분산이었다. 3기 신도시로 올해 착공 예정인 하남교산 공공주택지구의 광역교통망 확보도 주요 사업목적이었다. 2009년 민자사업이 구상되었을 때부터 2021년 예타 통과까지 서울-양평 고속도로 노선은 줄곧 양평군 양서면을 종점으로 하는 ‘기존안’이 검토되었다.

현재 논란이 되는 ‘변경안’이 처음 알려진 건 올해 5월8일이다. 국토부는 이날 ‘서울-양평 고속국도 건설사업 전략환경영향평가 항목 등의 결정내용’을 홈페이지에 공개했다. 이 문서에서 종점을 강상면으로 변경한 노선은 대안1로, 양서면 종점인 기존안은 대안2로 등장한다(〈그림 1〉 참조). 이어 6월21일 공개된 ‘서울-양평 고속국도 건설사업 전략환경영향평가서(초안) 요약문’에서 국토부는 ‘변경안’이 ‘기존안’보다 타당한 것으로 판단된다고 밝힌다.

6월28일 강득구 더불어민주당(민주당) 의원이 최재관 민주당 여주시·양평군 지역위원장 등과 함께 국회에서 ‘서울-양평 고속도로 종점 변경 의문 공개질의’ 기자회견을 열며 변경안은 전국구 이슈로 떠올랐다. 민주당은 서울-양평 고속도로가 추진되는 동안 한 번도 거론되지 않았던 노선으로 계획이 변경되었다며 변경안 종점(강상면) 부근에 위치한 김건희 여사 일가의 토지와 연관해 특혜 의혹을 제기했다.

〈그림 2〉는 변경안이 현실화될 경우 고속도로에서 양평읍으로 진출입하는 경로와 김건희 여사 일가가 보유한 토지가 표시되어 있다. 김 여사 일가가 양평군 강상면 병산리에 보유한 토지는 두 군데다. 선산의 일부로 알려진 17필지(병산리 1000-12 등)와 김씨 일가가 운영하는 부동산 개발업체 ‘이에스아이엔디(ESI&D)’가 소유한 3필지(병산리 578-3 등)다. 고속도로 계획이 변경안으로 결정되면 기존안보다 양평읍에서 서울로 향하는 고속도로 접근성이 더 좋아지는데, 〈그림 2〉에서 보듯 양평읍에는 양근리(4필지), 공흥리(3필지), 백안리(2필지)에 각각 김 여사 일가 소유 토지가 흩어져 있다. 강상면 병산리 땅은 임야라 당장은 개발이 어렵지만 김 여사 일가가 양평읍에 보유한 토지는 변경안이 개통되면 곧바로 수혜를 볼 수 있다는 게 양평 지역 부동산 중개업자들의 평이다(〈시사IN〉 페이스북 페이지에서 360도 영상으로 변경된 고속도로 종점과 김건희 여사 일가의 토지를 확인할 수 있다).

대선 거치며 김건희 일가의 양평 땅 알려져

김건희 여사 일가의 경기도 양평 땅은 지난 대선을 거치며 알려졌다. 당시 관심이 집중된 곳은 양평읍에 소재한 공흥지구였다. ESI&D는 김 여사 가족들이 운영하는 부동산 개발업체로 어머니인 최은순씨가 대표를 맡았으며 김건희 여사도 한때 사내이사로 재직했다. 현재는 김 여사의 오빠가 대표이사다. ESI&D가 소유한 경기도 양평군 양평읍 공흥리 산84-2번지(현 공흥리 885번지)에 357세대 아파트를 짓는 공흥지구 개발 사업은 2016년 마무리됐다. 그리고 대선 레이스가 한창이던 2021년 11월, ESI&D가 이 사업으로 최소 205억원의 수익을 챙겼지만 개발부담금이 제대로 부과되지 않았다는 특혜 의혹이 제기됐다(제744호 ‘특이하게 순탄했던 윤석열 장모의 아파트 사업’ 참조). 〈그림 2〉에서 볼 수 있듯, 이 아파트 단지는 현재 김건희 여사 일가가 소유한 양평읍 공흥리 부지와 백안리 부지 사이에 위치해 있다.

김건희 여사의 어머니 최은순씨가 소유한 양평읍 백안리 땅(붉은 선). 오른쪽 뒤편에 ESI&D가 소유했던 땅에 지어진 아파트 단지 ⓒ시사IN 이명익

의혹의 눈길은 누구의 제안으로, 어떤 절차를 거쳐 ‘변경안’이 도출되었는지에 쏠린다. 6월 말 의혹이 불거진 뒤 한동안은 양평군의 요구였다는 쪽에 무게가 실렸다. 기존안은 종점이 양평군 양서면을 지나는 수도권 제2순환고속도로와 만나지만, 양평군으로 바로 빠져나오는 나들목(IC)이 없어 양평군 초입인 강하면에 나들목(강하IC)을 추가해달라는 요구가 예타 통과 직후부터 지역사회에서 나왔다. 국토부도 비슷한 취지로 배경을 밝혀왔다.

그러나 양평군이 국토부에 보낸 의견서를 자세히 보면 얘기가 조금 달라진다. 양평군이 국토부 도로정책과에서 ‘서울-양평 고속도로 타당성평가 협의요청’을 받고 의견서를 회신한 건 지난해 7월이다. 양평군은 이 의견서에서 1안, 2안, 3안 총 세 가지 노선을 검토해서 보낸다. 제1안은 예타를 통과한 ‘기존안’과 거의 유사하고 종점도 그대로(양서면)인데 강하면 북부(운심리)에 IC만 추가하는 노선이다. 제2안은 강하면 남부(왕창리)에 IC를 추가하고 종점을 강상면으로 바꾸는 안이다. 지금 거론되는 ‘변경안’이다. 양평군은 제1안에 대해 ‘당초(안) 최소 범위 연계 고려. 경제성, 타당성, 지역주민 편의성 확보’라고, 제2안에 대해서는 ‘광역교통망 연결 타당성 고려. 경제성 재분석, 사업비 증액 예상’이라고 검토 의견을 달았다. 기존안과 거의 동일한 1안에 더 긍정적인 의견을 밝힌 것이다.

이런 반박이 나오자 국토부는 7월9일 “국토교통부에서는 양평군에서 최우선으로 요청한 강하IC를 반영하여 최적의 안을 마련하였습니다”라는 보도정정 자료를 배포했다. 국토부는 이 자료에서 종점을 양서면으로 유지한 채 강하IC를 설치하는 노선(양평군의 제1안)은 공사상 여러 어려움으로 추진이 곤란해 강하IC를 신설하되 종점을 강상면으로 바꾸는 대안(변경안)을 채택한 것이라고 전했다.

원희룡 국토교통부 장관이 양평 고속도로 백지화를 선언한 이후 양평 시내 곳곳에는 사업을 재개하라는 현수막이 나붙었다. ⓒ시사IN 이명익
원희룡 국토교통부 장관이 양평 고속도로 백지화를 선언한 이후 양평 시내 곳곳에는 사업을 재개하라는 현수막이 나붙었다. ⓒ시사IN 이명익

그런데 7월10일을 기점으로 국토부는 그때까지 알리지 않았던 새로운 배경을 밝힌다. 강상면을 종점으로 하는 ‘변경안’은 지난해 3월15일 선정된 민간 용역업체(동해종합기술공사·경동엔지니어링)가 국토부의 발주를 받아 본사업 타당성 조사를 진행했고 두 달 뒤인 5월 국토부에 보고한 결과라는 것이다. 원희룡 국토부 장관은 7월12일 공개한 ‘일타강사 콘셉트’ 유튜브 영상에서 이를 다시 한번 강조했다. ‘변경안’은 전문성을 가진 민간업체에서 제시한 것이며, 문재인 정부 시절에 정해진 업체이니 현 정권 인사에게 유리한 특혜 의혹도 낄 틈이 없다는 취지이다. 그런데 용역업체가 선정된 3월15일은 윤석열 대통령 당선 이후다. 윤 대통령은 지난해 3월9일 당선돼 3월18일 인수위를 꾸리고 5월10일 취임했다.

두 가지 해석이 다 가능한 상황

국책사업의 사전 평가와 진행 절차에 밝은 전문가들의 얘기를 종합해보면 예비타당성조사(예타)에서 검토된 안이 예타 통과 이후 정식 타당성조사(본타)에서 변경되는 경우가 ‘있을 수 없는 일’은 아니다. ‘예타’는 기재부에서 시행하고, 실제 사업에 들어갈 계획을 마련하는 ‘본타’는 국토부 같은 주무 부처에서 담당한다. 예타 통과는 바늘구멍 뚫기에 비견될 정도로 어렵다. 일단 예타를 넘어 예산이 편성되면 해당 사업을 완전 취소하는 것은 거의 불가능에 가깝다. 대신 당초 계획을 변경할 수 있는 공간은 비교적 크게 열린다.

국가재정법에 따르면, 예타안과 비교해 본사업의 예산이 10% 넘게 증가(1000억원 이상 사업)하거나 수요예측이 30% 이상 달라질 때에 예타 재조사를 받도록 되어 있다. 그 외에 통제 조항은 없다. 즉 예산 증액 10% 내의 범위라면 주무 부처가 예타 통과 계획을 뜯어고쳐도 절차상 하자는 없는 셈이다. 서울-양평 고속도로는 1조7695억원 규모의 국책사업인데 강상면을 종점으로 하는 변경안으로 갈 경우 국토부는 추가 소요 예산을 140억원 정도로 추정한다.

지금까지 전개만 놓고 보면 두 가지 해석이 다 가능한 상황이다. 일단 예타 통과를 최우선 과제로 두고 기존안을 설계(한국도로공사 담당)한 뒤, 제도가 허용하는 범위 내에서 인구가 밀집돼 있는 양평읍과 더 가깝고 지역의 요구(강하IC 설치)도 반영할 수 있는 대안으로 노선을 변경했다. 혹은 제도가 열어둔 공간을 이용해 누군가에게 혜택이 돌아갈 수 있도록 고속도로 노선을 변경했다. 확실한 것은 ‘기존안’에서 ‘변경안’으로 변화가 결코 작지 않다는 것이다. 노선의 55%가 바뀔 뿐만 아니라 두물머리에 가깝던 종점이 양평읍 쪽으로 8㎞가량 내려오면서 사업의 성격에도 차이가 생긴다.

원희룡 국토교통부 장관이 7월6일 국회 의원회관에서 서울~양평 고속도로에 대한 발언을 하고 있다.ⓒ연합뉴스
원희룡 국토교통부 장관이 7월6일 국회 의원회관에서 서울~양평 고속도로에 대한 발언을 하고 있다.ⓒ연합뉴스

원희룡 국토부 장관은 7월6일 기자회견에서 “민주당의 날파리 선동이 끊이지 않을 것이기 때문에 서울-양평 고속도로 사업 추진 자체를 백지화한다”라고 전격 발표했다. 현근택 민주연구원 부원장은 7월8일 MBC 라디오 프로그램에 출연해 “일각에서는 그런 얘기가 나온다. ‘밑장빼기를 하다 들키니까 판을 엎어버렸다’”라고 말했다. 더불어민주당 경기도당은 7월13일 직권남용 혐의로 고위공직자범죄수사처에 원희룡 장관을 고발했다. 대통령실은 7월9일 "이 문제는 기본적으로 국토부에서 알아서 해야 할 문제"라는 입장을 밝혔다. 7월13일까지 윤석열 대통령의 발언은 따로 나오지 않았다.

기자명 양평·김연희 기자 다른기사 보기 uni@sisain.co.kr
저작권자 © 시사IN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
이 기사를 공유합니다
관련 기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