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2년 12월12일 취임식에서 소감을 말하는 김광동 진실·화해를 위한 과거사정리위원회 신임 위원장. ⓒ진실화해위원회 제공

“과거를 파헤치는 모든 권력은 실패한다. 우리는 김영삼 정부의 ‘역사 바로 세우기’는 물론 김대중 노무현 정부 10년 동안 과거사 진상조사를 수도 없이 되풀이했다. ‘진실과 화해’라는 명목으로 스무 개 가까운 과거사 진상조사위가 작동되었고 정치권력의 뜻에 따라 과거사를 사법 심판도 없이 재단했다. 결과는 모두 참혹한 종말이었다.” 2017년 6월2일자 〈미래한국〉에 실린 ‘5·18 신화 만들기는 대한민국을 조이는 족쇄 될 것’이라는 칼럼의 서문이다. 보수단체 뉴라이트 계열에서 대표 논객으로 꼽히던 당시 김광동 나라정책연구원장이 이 매체 편집위원 자격으로 기고했다. 그랬던 그가 최근 ‘진실·화해를 위한 과거사정리위원회(진실화해위)’ 2대 위원장이 됐다. 이율배반적이라는 평가가 나온다.

윤석열 대통령은 2022년 12월9일 장관급 지명직인 진실화해위 위원장 자리에 그를 소환하면서 언론에 이렇게 공지했다. “김 내정자는 과거사 진실 규명에 대한 이론과 실무를 겸비해 과거와의 화해를 통해 미래로 나아가기 위한 국민 통합에 기여할 수 있는 적임자이다.” 이에 대해 더불어민주당, 정의당 등 야권은 그의 친일·독재 미화에 편향된 과거 역사관과 4·3 및 5·18 폄훼 전력을 들어 ‘부적절한 인사’라고 반발하며 해임을 요구하고 나섰다. 그가 과거 저서나 논문, 토론회 등에서 권위주의 군사독재 정권을 미화하고 민주화운동을 폄훼했을 뿐 아니라 과거사 진실 규명의 의미와 필요성을 부인한 전력이 속속 드러나면서다. ‘한국전쟁전후 민간인피학살자 전국유족회’와 5·18재단 등 국가 폭력에 의한 인권유린 피해자 단체들도 잇따라 ‘해임 요구’ 성명을 냈다. 신임 김 위원장의 편향된 역사관이 진실화해위가 추구하는 ‘진실 규명’과 ‘피해 회복’ 그리고 ‘화해를 통한 국민 통합’에 걸림돌이 될 것이라는 주장이다.

김광동 위원장은 어떤 인물이며 그가 이끄는 진실화해위는 앞으로 어떤 운명을 맞을 것인가. 뉴라이트 계열의 대표적 인물인 김 위원장은 보수 NGO 나라정책연구원 원장과 자유민주연구학회장을 지냈다. 이명박·박근혜 정부 시절에는 MBC 최대주주 방송문화진흥회 이사(3연임), 국가보훈위원회 위원 등을 지냈다.

2019년 3월 충북 보은군 일대에서 유해를 발굴하는 ‘한국전쟁기 민간인학살 유해발굴 공동조사단’.ⓒ시사IN 조남진

“집단학살이 아니라 사회가 흥분한 사건”

그는 ‘제주 4·3사건은 공산폭동’ ‘5·16은 근대화 혁명’ ‘10월 유신은 근현대사의 위대한 전환이자 성공의 기반’ 따위의 주장을 펴왔다. 특히 제주 4·3이나 노근리 양민학살, 5·18 민주화운동 등 굵직한 현대사 사건들에 대해서는 논문, 저서 등을 통해 극우적 시각으로 폄훼했다.

2014년 4월호 〈한국논단〉에 기고한 글에서 그는 “제주 4·3 폭동은 반한·반미·반유엔·친공 투쟁”이라고 단정했다. 이어 “4·3 희생자는 제주도민 유격대에 의해 발생했다”라고 주장했다. 2011년 제주에서 열린 ‘제주 4·3 교과서 수록 방안 공청회’에 참석해 제주 4·3에 대해 “공산주의 세력에 의한 폭동”이라고 매도했다. 그러나 2003년 4·3특별법에 따라 이뤄진 정부 차원의 진상 규명에 따르면, 4·3 때 희생된 제주도민 3만여 명 가운데 군인과 경찰 토벌대에 의한 희생이 78.1%였다. 무장대에 의한 희생은 12.6%였다.

그는 한국전쟁 당시 대표적인 민간인 학살 피해 사건인 ‘노근리 사건’에 대해서도 ‘집단학살이 아니라 반미 세력에 의해 사회 전체가 흥분한 사건’이라고 주장했다. 노근리 사건은 1950년 7월 충북 영동군 노근리 일대에서 미군이 인근 마을 주민들에게 기관총 사격과 전투기 폭격을 가해 수백 명 사상자를 낳은 사건이다. 정부의 진상조사를 거쳐 사망자 150명, 행방불명자 13명, 후유장애인 63명 등 226명이 희생자로 인정됐다. 하지만 김광동 위원장은 저서 〈반미 운동이 한국 사회에 미치는 영향〉에서 노근리 사건에 대해 “전쟁 중 후퇴하던 미군의 오인사격에 의한 충북 노근리의 희생인데, 마치 미국이 양민을 살해할 목적을 가지고 자행한 것처럼 ‘집단 학살’이란 표현을 써가며 사회 전체가 흥분했던 것 등은 바로 한국 사회에서 반미화의 진행 수준을 나타내는 지표라 할 수 있다”라고 주장했다. 하지만 노근리 사건은 국내 ‘반미주의자’들에 의해 드러난 게 아니라 1999년 AP통신의 보도로 진상이 처음 알려졌다.

김 위원장은 논문과 저서를 통해 역대 군사독재를 미화하거나 민주주의를 폄훼하는 듯한 주장도 폈다. 그는 “18년간의 박정희 체제를 거치고 부분적 위기 국면을 거쳐 다시 1980년대 중반 전두환 체제로 안착되고 노태우 정부로 계승됐다”라며 군사독재의 정통성을 강조했다. 또 “5·16 주도 세력은 민주주의라는 가식적 허울에 매몰되지 않았고, 민주주의라는 이름으로 펼쳐지는 혼란과 독재, 혹은 무질서를 바로잡았다”라고 주장했다. 그의 편향적 역사관은 2008년 뉴라이트 계열 교과서인 〈대안교과서 한국 근·현대사〉에도 고스란히 반영됐다. 그가 집필에 참여한 대안교과서는 뉴라이트 단체인 ‘교과서포럼’이 출간한 책으로, 식민지 근대화론과 이승만 국부론, 박정희 경제성장 주역론 등이 담겼다. 이 때문에 출간 이후 식민지 근대화론에 경도됐다는 비판과 함께 친일·독재 미화 논란에 휩싸이며 학계의 비판을 받았다.

2017년 3월 김광동 당시 나라정책연구원장이 ‘박정희 시민강좌’에 강연자로 나섰다. ⓒYTN 유튜브 갈무리

김광동 위원장은 법적으로나 역사적으로 반민주적 군사독재로 정리된 5·16 군사쿠데타와 10월 유신을 정당화하거나 찬양했다. 2018년 5월 출간한 저서 〈4·19와 5·16 연속된 근대화 혁명〉에서 그는 “4·19는 좌절된 혁명이 아니라 그 자체로 혁명이고, 더 나아가 5·16으로 꽃피워지고 완성된 혁명”이라고 썼다. 5·16 군사쿠데타에 대해 ‘4·19 정신을 이어받은 혁명’이라는 이상한 논리를 동원한 것이다.

이 책에서 그는 “박정희의 군사 쿠데타는 정치적 지배나 권력을 누리기 위한 쿠데타라기보다 근대화를 추진해보겠다는 쿠데타였다. 민주당 체제가 유지됐다면 4·19의 결실을 맺지 못하고, 산업화도 이뤄내지 못했을 것이다”라고 주장했다. 또 2019년 10월 열린 토론회에서는 “10월 유신은 우리 근현대사의 위대한 전환이자 성공의 기반이다”라고 주장했다.

그의 편향적 역사관은 필연적으로 민주화운동과 그 과정에서 발생한 국가 폭력에 의한 인권유린 등을 폄훼하거나 부인하고 외면하는 태도로 이어졌다. 특히 그는 5·18 민주화운동에 관해 극우적 견해를 표출한 바 있다. 2020년 10월 한국하이에크소사이어티(현 시장경제학회) 가을 정책심포지엄에서 발표한 ‘역사 인식 문제에 대한 국가의 파시즘적 통제’ 논문에서 “5·18 민주화운동 당시 헬기 사격이 있었다는 건 허위 사실”이라고 주장했다. 한발 더 나아가 북한군 개입 가능성도 있다고 언급했다. 하지만 계엄군에 의한 헬기 사격은 이미 2018년 국방부 5·18특별조사위원회 조사 결과와 2017년 국립과학수사연구원의 감정 결과 등을 바탕으로 법원에서 “헬기가 사격했다고 인정할 수 있다”라고 결론 내린 사안이다. 북한군 개입설 역시 국가정보원과 법원에서 허위라고 결론지었다. 하지만 그는 지금까지 5·18을 둘러싼 그간의 주장을 수정하거나 사과한 바 없다.

이처럼 국가 폭력으로 저질러진 인권침해 사건을 부인하거나 진상 규명과 화해 조처를 비난하는 입장을 보여온 김 위원장이 진실화해위와 직접 인연을 맺은 때는 2021년 2월이었다. 당시 그는 여야 합의 특별법인 ‘진실·화해를 위한 과거사정리 기본법’에 따라 출범한 제2기 진실화해위에 상임위원(국민의힘 지명)으로 들어갔다. 김 상임위원은 2022년 12월9일 윤석열 대통령으로부터 진실화해위원장으로 지명되기까지 2년 가까이 진실화해위 제1소위원장으로서 ‘한국전쟁 전후 민간인 집단희생 사건’을 담당했다. 가까이서 그를 지켜본 복수의 진실화해위 관계자들에 따르면, 그는 특히 한국전쟁 시기 군경 등 국가 공권력에 의해 저질러진 민간인 집단희생 사건 진실 규명 과정에서 주로 ‘부인주의자’ 역할을 수행했다. 위원회 내부 상임위원 4명 중 보수 진영 몫인 김광동·차기환 위원 2명이 대표적 부인주의자로 꼽힌다. 특히 김광동 위원장은 상임위원이 되기 전 뉴라이트 계열 사회단체에서 활동할 때는 노골적인 부인주의자였지만 막상 진실화해위에 상임위원으로 들어와서는 ‘기술적 부인주의자’로 교묘하게 진상 규명을 방해했다는 것이다. 집단학살 피해자 중에서도 좌익 계열 희생자 유족에게는 사건 당시 사진이나 서류 등 ‘매우 높은 증명력’을 요구하는 방식을 썼다. 이에 대해 한국전쟁전후 민간인피학살자 전국유족회의 정국래 운영위원장은 “김 상임위원은 72년 전에 집단 총살당한 아버지가 생전에 쓴 일기장이라든지 책갈피에 남긴 메모, 편지 등 물적 증거물을 찾아서 가져오지 않으면 학살 피해자로 인정받을 수 없다고 했다. 사건 당시 긴급한 현실을 도외시한 황당한 요구였다”라고 말했다.

김광동 위원장의 이런 태도는 진실화해위의 조사 활동에도 영향을 끼친 것으로 보인다. 2022년 12월23일 기준으로 김광동 상임위원이 맡았던 제1소위(조사1국)에 배정된 항일 독립운동 시기와 해방 이후부터 한국전쟁 전후 시기 ‘민간인 집단희생’ 접수 사건은 모두 1만6715건이다. 그런데 진실이 규명된 사건은 725건(4.47%)에 불과하다. 조사 인력과 시간 부족을 감안하더라도 과연 지난 2년 동안 제대로 일을 했는가 싶을 정도다.

사건의 유형별 조사 현황을 살펴보면 편향성이 더 뚜렷하다. ‘민간인 집단희생’ 1만6715건 중 ‘(대한민국 군경 우익단체에 의한) 불법적인 민간인 집단 사망·상해·실종’ 9988건(59.8%)과 ‘적대 세력에 의한 인권유린·폭력·학살·의문사’ 3852건(23%)이 80% 이상으로 대부분을 차지한다. 그런데 2년 동안 진실 규명이 종결된 사건은 적대 세력(인민군과 좌익)에 의한 학살 사건이 455건(12.5%)이고, 군경이 가해자인 사건은 267건(2.7%)에 그쳤다.

최근 ‘진실화해위 기본법 개정안’을 대표 발의한 안민석 더불어민주당 의원. ⓒ연합뉴스

사회적 상처 보듬는 자리

진실화해위원장은 국가범죄로 인한 민간인 희생을 규명할 책임을 갖고 있다. 국가의 잘못을 과감하게 밝혀내고 그로 인한 사회적 상처를 보듬는 자리다. 국가가 국민에게 저지른 잘못에 대해 정의로운 분노를 가져야 하고, 희생자들에게는 뭉클한 마음을 품을 줄 알아야 한다. 하지만 신임 김광동 위원장은 그간 왜곡된 역사관과 진실화해위 존립 자체를 부정하는 듯한 발언으로 인권유린 피해자들의 마음을 아프게 했다.

그는 최근 진실화해위 위원장직 부적격 논란의 불똥이 임명권자인 윤석열 대통령의 역사관으로까지 번지자 취임사를 통해 이런 입장을 내놓았다. “성공의 대한민국 역사가 걸어온 뒤안길에 남겨진 그늘을 재조명하고 잘못된 부정의를 잡아가면서 화해의 대한민국을 만드는 방향으로 진상 규명에 대한 소명을 다할 것이다. (중략) 역사에 조명받지 못한 피해와 희생을 규명하고 햇살을 비추는 것이 우리가 맡아야 할 본연의 업무다.”

김광동 위원장의 견해를 직접 물으려 했지만 연락이 닿지 않았다. 대신 진실화해위의 한 관계자는 최근 김 위원장의 심경을 이렇게 전했다. “자신이 과거 발언한 제주 4·3이나 광주 5·18은 진실화해위 소관 조사 대상 사건이 아닌데도 언론이 그 부분을 지나치게 부각해 공격한다는 불만을 갖고 있다. 위원회는 다양한 견해를 가진 9인이 합의해 결정하므로 결코 위원장의 견해로만 좌우되는 시스템이 아니니 걱정하지 말아달라는 입장이다.”

과연 그럴까. 진실화해위는 상임위원 3명을 포함해 위원 9명으로 구성된다. 대통령이 한 명을 지명하고, 국회에서 여야 정당이 각각 4명씩 8명을 지명한다. 위원 임기는 2년이며 위원장은 대통령이 상임위원 중에서 지명한다. 과거사 조사 개시 여부와 진실 규명 결정 등 중요 안건은 위원회 과반 찬성으로 의결하는 구조다. 여야 동수 위원의 의견이 갈릴 경우 위원장이 사실상 캐스팅보트를 쥐고 있다. 따라서 위원장인 그의 손에 사실상 진실화해위의 존폐가 달려 있다 해도 과언이 아니다. 이미 위원회의 상당수 조사관들은 위원장의 이런 성향으로 인해 몹시 위축된 분위기라고 한다.

민주당은 대변인 브리핑에서 “윤석열 대통령이 지난 대선에서 ‘5·18 정신을 헌법 전문에 수록하겠다’고 약속한 마음이 (지금도) 같다면, 결자해지의 자세로 김광동 위원장을 해임하라”고 요구했다. 다음 날 정의당도 “김광동 위원장의 뒤틀린 역사 인식이 뒤늦게 밝혀지고 있다. 한쪽 눈으로만 세상을 보는 사람에게 역사의 진실과 화해를 맡길 수 없다”라며 해임을 촉구했다. 안민석 더불어민주당 의원은 2022년 12월20일 ‘역사 부정 김광동 탄핵 법안’을 대표 발의했다. 진실화해위원장이 헌법이나 법률을 위배한 경우 계속 직무를 수행하는 것을 방지하기 위해 대통령이나 국무위원처럼 국회가 탄핵 소추를 의결할 수 있도록 하는 ‘진실화해위 기본법 개정안’이다. 안 의원은 이 법안을 발의한 배경에 대해 이렇게 말했다. “윤석열 정부가 임명한 김광동 위원장은 진실화해위의 존재 이유를 부정하고, 역사적 진실로 밝혀진 제주 4·3사건과 5·18 민주화운동을 왜곡했다. 5·16 군사쿠데타와 군사독재를 미화하는 등 논란이 계속되고 있다.” 그는 이어 “이는 윤석열 정부의 역사 인식을 보여준 것으로 진실과의 화해는커녕 각고의 노력 끝에 밝혀진 역사적 진실을 부정하는 조치다”라고 지적했다.

법안 발의 소식에 극우 논객 지만원씨가 반응했다. 5·18 당시 북한군 600명 개입설 등의 주장을 펴다가 기소돼 재판을 받고 있는 지씨는 최근 김광동 위원장에 대한 해임 요구와 탄핵 추진 법안 발의에 맞서 “애국자 김광동을 성원하자”라며 엄호하고 나섰다.

기자명 정희상 기자 다른기사 보기 minju518@sisain.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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