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에게 새로운 언어가 생겼습니다
임은주 외 지음, 글을낳는집 펴냄

“그래서 나는 시설을 떠나기로 했다.”

임은주씨는 어려서 소아마비를 앓았다. 6남매 중 넷째였고 5남매가 학교에 다닐 때 학교 문턱을 넘지 못했다. 엄마는 ‘다리병신’이라는 말을 자주 했다. 둘 다 장애가 있어 양가가 반대하는 결혼을 했지만 여전히 남편을 보면 설렌다. 뇌병변을 가진 국화씨는 유치원에 들어갈 무렵 은혜학교를 소개받아 그곳 학생이 되었다. 사생 대회에 나가면 상을 흽쓸었고 대학에서 서양화를 전공했다. 이혼 후 혼자만의 시간을 즐기며 계속 그림을 그린다. 부제가 ‘7명의 장애 여성들이 몸으로 쓴 손바닥 에세이’다. 광주장애인가정상담소에서 마련한 장애 여성 글쓰기 모임의 결과물. 전 생애를 덤덤하게 증언하는 이들의 이야기가 여운을 남긴다.

 

 

 

 

게임 기획자의 일
최영근 지음, 문학과지성사 펴냄

“게임을 만들면 당신은 이미 게임 개발자.”

문학과지성사의 ‘일이 삶이 되는 일이삼’ 시리즈. 2004년 게임 시나리오 기획자로 경력을 시작한 저자가 게임산업의 현재를 다뤘다. 게임에 대한 사회적 인식이 낮고 게임 개발자에 대한 시선이 곱지 않던 시절도 있었다. 이제 누구나 게임을 한다. 게임업계의 문턱도 높아졌다. 그는 종종 10~20대에게 질문을 받는다. ‘게임을 좋아해서 게임 기획을 하고 싶어요.’ 게임을 하는 것과 게임을 만드는 일은 당연히 전혀 다르며 일반적인 스펙 쌓기로는 입사가 어렵다. 능력을 증명할 수 있는 포트폴리오가 중요하다고 그는 말한다. ‘내가 창조한 세계가 게임에서 구현된다.’ 이 로망을 이루기 위한 현실적 조언이 담겼다.

 

 

 

 

숨은 말 찾기
홍승은 지음, 위즈덤하우스 펴냄

“그렇게 괴롭다면, 숨고 싶다면, 나는 왜 이 일을 할까?”

말을 하고 나서 자책한 순간을 꼽아보라면 각자 책 한 권은 쓸 것이다. ‘너무 더듬었나, 두서가 없었나, 중언부언했나….’ 능수능란하게 언어를 구사하는 달변가를 부러워하곤 했다. 집필 노동자이자 강연 노동자인 저자는 말하기의 괴로움에 대해 솔직하게 꺼내놓는다. 하지만 세련된 말하기가 전부인지 묻는다. “망설이고, 주저하고, 더듬거리고, 울먹이면 말 속의 진실은 진실이 아니게 되는 건가.” 투박하지만 차별 경험을 드러내는 것은 사회 곳곳에 균열을 내기도 한다. “고작 말”이 만들어낸 변화는 도처에 있다. 조금 매끄럽지 않아도 괜찮지 않을까? 그런 상상이 때로 사람을 더 자유롭게 만든다.

 

 

 

 

보수에서 극우로
김평호 지음, 삼인 펴냄

“미국 정치 위기는 신보수·신자유주의 체제의 문제이면서 동시에 취약한 진보 세력의 문제다.”

트럼프 전 대통령이 FBI와 뉴욕주 검찰 수사를 받고 있다. 자택을 압수수색당하고, 검찰에 출석했다. 검찰은 트럼프 일가 기업의 자산가치 조작 의혹을 수사하고 있다. FBI는 대통령 기록물 밀반출과 2021년 1월6일 지지자들의 연방의회 난입 연관성을 수사한다. 저자는 바로 ‘1·6 친위 쿠데타’로 시작해, 뿌리를 찾아 나선다. 공화당의 극우화 근원을 1950년까지 거슬러 올라가 조망한다. MBC PD 출신으로 저널리즘 교수를 역임한 저자는 극우 미디어의 활약상도 담았다. 말도 행동도 늘 건들건들하며, 지도자의 면모라고는 찾아볼 수 없는 트럼프가 대통령으로 선출된 건 일회적 이벤트가 아니었다.

 

 

 

 

덕다이브
이현석 지음, 창비 펴냄

“그가 뒤를 돌아봤다는 자체가 규칙을 숙지하고 있다는 뜻이었다.”

서핑의 제1명제는 하나의 파도에는 한 명의 서퍼만 타는 것이다. 규칙이 자연스럽게 깨질 때가 있다. 여럿이 하나의 파도에 탄다고 해서 ‘파티웨이브’라고 부르는 행위, 자신의 파도에 다른 사람을 초대하는 일은 신뢰와 교감의 표시다. 발리의 눈부신 바다와 한인 서핑캠프를 배경으로 펼쳐지는 소설이 다루는 이야기는 파도만큼이나 두렵고 묵직하다. 주인공들은 지면서도 지지 않는 법을 가르친 파도를 통해 ‘설령 실패한다고 하더라도 몇 번이고 다시’ 서로에게 다가가는 법을 배운다. 수면 아래로 깊이 들어가 파도를 흘려보내는 것(덕다이브)은 서핑의 기술인 동시에 삶의 기술이 될 수도 있다.

 

 

 

 

수없이 많은 바닥을 닦으며
마이아 에켈뢰브 지음, 이유진 옮김, 교유서가 펴냄

“허리가 밥줄이다 보니 허리가 아플 때마다 겁이 난다.”

다섯 아이를 키우며 청소노동자로 일해온 저자의 일기를 묶었다. 그는 글쓰기를 좋아하지만 좋은 종이를 낭비하는 것이 아깝다고 생각한다. 피난민들이 사막을 건너가는 중에도 자신은 컵에 물을 따라 마신다는 것을 생각한다. 물을 구하려고 살인을 하는 세상에 대해서 생각한다. 책은 1960년대를 배경으로 우울하게 변화하는 세계의 기운을 담고 있다. 12월의 어느 날, 그는 일기에 이런 문장을 적는다. “모두 잘 자요. 모든 보통 노동자들 말이지요. 그리고 억압받는 모든 사람, 잘 자요.” ‘청소용 양동이에 익사하지 않고’ 매일을 기록한 그의 일기가 시대의 우울로부터 독자를 건진다.

기자명 시사IN 편집국 다른기사 보기 editor@sisain.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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