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감사원장의 퇴임으로 국가기관, 그중 사정기관의 정치적 중립이 다시 쟁점이 되었다. 정치적 중립은 그 자체로 존중받아야 한다. 한국 민주화 역사에서 국가기관의 정치적 중립은 항상 최우선 과제였다. 군부독재 정권이 정권을 지키기 위하여 국가기관에 깊숙이 개입했기 때문이다. 군부독재 정권은 검찰·경찰·감사원 등 사정기관을 비롯하여 사법부까지 모두 장악했다. 합법적인 방법도 있었지만 중앙정보부 등 정보기관을 동원한 비합법적 방법도 사용했다. 국가기관은 정치권력에 종속되어 불법을 합법으로 포장하는 역할을 하기에 바빴다.

민주화가 되자 국가기관의 정치적 중립은 가장 중요한 과제로 떠올랐다. 사법부의 법관들도 성명을 내고 정치적 중립을 요구했다. 경찰 일부도 정치적 중립을 요구했다. 검찰개혁의 출발점도 정치적 중립이었다. 민주화 이후 정치권력의 국가기관 장악은 사라졌고 국가기관들은 정상을 찾아가기 시작했다. 하지만 정치적 중립을 둘러싼 진실은 그리 간단하지 않다. 정치적 중립을 둘러싼 표면적인 공식은 ‘정치권력=가해자, 국가기관=피해자’다. 그렇지만 현실은 이론보다 훨씬 복잡한 법이다. 국가기관은 일방적인 피해자가 아니었다. 국가기관은 정치권력의 요구를 들어주면서 동시에 정치권력과 공존하며 스스로 권력이 되어갔다.

정치권력이 국가기관을 장악할 때 국가기관의 전략은 세 가지다. 저항·순응·편승이다. 민주화 이전 국가기관은 순응과 편승 전략을 택했다. 순응은 정치권력의 요구에 수동적으로 따르는 것이다. 편승은 정치권력에 충성하면서 기관 내지는 개인의 출세를 지향한다. 편승은 두 가지로 나뉜다. 조직 전체가 편승하는 경우와 개인이 편승하는 경우가 그것이다. 조직이 순응하면 개인은 편승하는 경향이 있다. 두 가지 전략은 서로 영향을 미친다. 이 과정에서 국가기관의 정치적 중립은 완전히 망가진다.

민주화 이후 정치권력의 개입이 없는 상태에서 국가기관의 전략은 무엇일까? 정치권력의 개입이 없다면 국가기관은 본래 역할을 해야 한다. 따라서 정치권력에 대해 특별히 조직적으로 택할 전략은 있을 수 없다. 자신의 일만 하면 되기 때문이다. 그렇다고 완전히 전략이 없는 것은 아니다. 국가기관에게는 정치권력에 순응 또는 편승한 ‘역사와 전통’이 있기 때문이다.

민주주의 시대에 국가기관은 혁신, 현상 유지, 확대라는 세 가지 전략을 택할 수 있다. 혁신은 정치권력에 순응했던 역사를 청산하고 조직을 실력 있는 민주적 조직으로 개편하는 것이다. 현상 유지는 새로운 환경에도 불구하고 복지부동하는 것이다. 확대 전략은 정치권력이 행사했던 권한을 국가기관이 대신 행사하는 전략이다. 확대 전략은 조직 이기주의가 출발점이다. 확대 전략은 편승 전략과 같이 조직의 확대와 개인의 출세로 나뉜다.

감사원장 퇴임은 어느 경우에 해당할까

민주주의 시대에 국가기관은 혁신 전략을 선택해야 한다. 정치권력에 순응했던 역사와 전통을 청산하고 자율성을 높여야 한다. 정치권력의 지시 대신 스스로 판단하는 능력과 스스로 문제점을 해결하는 실력을 배양해야 한다. 정치권력 대신 국민과 소통하면서 조직의 민주적 운영을 정착시켜야 한다.

현상 유지 전략은 조직의 리더와 구성원들의 역량이 부족하거나 개혁 의지가 부족할 때 선택하는 전략이다. 민주주의 시대에는 바람직하지 않다. 국가기관의 장은 반드시 혁신 의지가 있어야 한다. 확대 전략은 최악의 전략이다. 국가기관이 자신의 권한을 넘어 정치를 하기 때문이다. 이 중에서 더 나쁜 것은 개인의 출세를 위해 조직을 이용하는 것이다. 정치권력이 간섭하지 않아 생기는 공백을 이용해 조직을 정치적으로 타락시키고 개인이 출세하는 것은 윤리상 용납될 수 없다.

이번 감사원장 퇴임은 어느 경우에 해당할까. 헌법에서 임기를 정할 정도로 감사원장의 정치적 중립은 중요하다. 감사원장 개인의 확대 전략이라면 개인에게도 국가에게도 좋지 않은 일이다. 퇴임 이후 행보로 우려를 씻어주기를 기대한다.

기자명 김인회 (인하대학교 법학전문대학원 교수) 다른기사 보기 editor@sisain.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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