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사IN 양한모

12월 백예린의 새 앨범이 나온다. 그의 음악에 대한 기대감 다음으로 지난 연말이 떠올랐다. 〈아워 러브 이즈 그레이트(Our love is great)〉 미니앨범과 뒤이은 〈에브리 레터 아이 센트 유(Every letter I sent you)〉 앨범, 그리고 그 상업적 성공에 대한 흥분이 음악 팬들 사이에 넘쳐나고 있었다. 어떤 이는 끝끝내 ‘아이돌 기획사 출신’이 ‘그 이상’을 성취해냈다는 유의 환호를 삼가지 못하기도 했다. 앨범 전체가 영어 가사로 돼 있다든지, 전형적인 발라드나 R&B와는 거리가 먼 음악이라든지, 그가 이전 소속사인 JYP에서 조금 삐딱한 태도를 보인 적이 있다든지 하는, 그에게 따라붙는 ‘비주류 감성’이란 지극히 주류적인 딱지인지도 모른다. 그래서 그를 향한 대중의 환호가 어떤 이들에게는 신기하거나 통쾌한 일이었을지 모르겠다.

어떤 이는 뉴트로(Newtro) 붐의 한 단면으로 그를 거론하기도 했다. 모르겠다. 그는 구보타 도시노부의 1996년 히트곡 ‘라 라 라 러브송(La La La Love Song)’을 커버해 대단한 반향을 일으키기도 했고, 따뜻하고 포근한 사운드를 잘 쓰기도 한다. 자신의 레이블 이름에도 ‘바이닐(레코드판)’이 들어간다. 하지만 그의 음악은 베이퍼웨이브나 시티팝, 레트로와는 아무런 관련이 없어 보인다. 그에게서 팝 음악의 ‘좋았던 시절’이 떠오른다면 그가 오래된 것을 (되)살리기 때문은 아니다. 차라리 가장 정통적인 것을 잘하기 때문일 듯하다.

백예린의 목소리는 울 줄 아는 사람의 다정함과 불안을 아는 사람의 나른함이, 교대하기보다 늘 공존하는 입체적인 음색이다. 그의 멜로디는 너무 어렵지 않으면서 결코 뻔하지도 않다. 충실한 파트너처럼 넘실거리는 비트, 거기에 특유의 매캐한 로맨티시즘이 산들바람처럼 깃든다. 그것을 위해 공간감을 조금은 퇴폐적일 정도로 따스하게 채운 사운드는 아른아른하게 꽃피며 일렁인다. 일렉트릭 피아노가 영롱하게 고음을 훑는 장면이 상당히 자주 등장함에도 그것이 쉬운 장식처럼 느껴지지 않는 것은, 그의 음악이 가진 놀라운 우아함 때문이다. 아름다움이라는 오래된 가치를 믿는 사람의 노래이기 때문이다. 그가, 혹은 그의 음악이 혹여 시대와 불화하는 듯 보이는 순간이 있다면 그 또한 같은 이유다. 그런 그의 신작을 알리는 헤드라인이 고작 “백예린 더 예뻐졌다”인 세계라서 말이다.

문득 생각한다. 케이팝 아이돌의 명가 JYP에서 보낸 시절은 그에게 어떤 의미일까. 그는 JYP에서 나올 법하지 않은 음반들을 내며 레이블의 스펙트럼을 넓혔다.

어쩌면 역사상 적지 않았던 아티스트들처럼 레이블의 방향성과 불화를 겪었을지도 모른다. 또, 냉정히 말해 ‘좋은 팝송’의 설 자리가 오히려 흔치 않은 시장에서 팝송의 가치를 느끼는 이들에게 자신을 선보이는 계기를 갖기도 했다. 만일 이곳이 발라드와 한 줌의 장르 음악과 케이팝 아이돌만으로 이뤄지지 않았더라면, 우리는 작지만 찰떡처럼 뜻이 맞는 레이블에서 시작해 자신을 세워나가는 그를 볼 수 있었을지도 모른다. 어찌 되었든 지금은 오로지 자신의 탁월한 감각이라 부르기에 충분한 백예린의 음악 세계를 즐길 수 있는 시간이다. ‘케이팝’이란 단어 그 자체마저 잊어버린 채.

기자명 미묘 (<아이돌로지> 편집장) 다른기사 보기 editor@sisain.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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