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사IN 이명익

모든 것은 ‘그것이 과연 무엇인가’를 정의하는 데서 시작된다. 모든 교과서는 해당 분야와 전문용어를 정확히 규정함으로써 시작한다. 물리학·화학·생물학·정치학·경제학은 여러 현상 중 어떤 것을 다루는지, 그리고 어떤 전문용어를 사용하는지 명확히 정의하고 규정함으로써 시작한다.

검찰개혁도 같다. 검찰개혁을 명확히 정의하는 데서 검찰개혁은 시작한다. 검찰개혁에 관계하는 모든 사람에게 그 의미는 명확해야 한다. 그래야 같은 목표를 향하여 걸어갈 수 있다. 같은 말을 하더라도 정의와 의미가 다르면 모든 게 달라진다. 지금 법무부 장관과 검찰총장 모두 ‘검찰개혁’을 말한다. 하지만 의미는 서로 다르다. 의미가 다르면 대화는 불가능하다. 합의를 본 것 같지만 합의를 한 것도 아니다. 장관과 총장 등의 지도자 혹은 의사 결정권자가 같은 말을 다른 의미로 사용하면 큰 혼란이 발생한다. 각자가 마음대로 해석할 때 검찰개혁은 한 발짝도 나아갈 수 없다.

혼란스러울 때에는 검찰개혁의 정의·원점·출발점을 확인해야 한다. 검찰개혁의 원점은 ‘검찰 권한의 분산과 견제’다. 이것이 모든 것의 출발점이다. 수사권과 기소권의 분리는 분산과 견제를 위한 최고의 정책이다. 법무부 견제장치의 정상적 작동 역시 필요하다. 그렇다고 정치권이 수사에 일일이 개입하거나 간섭해서는 안 된다. 수사와 재판에는 법치주의가 적용되어야 한다. 전문가인 법률가의 법적 판단이 우선한다. 수사의 중립성을 보장하면서 수사 권한이 남용되지 않도록 이를 분산하고 견제하는 것이 검찰개혁의 원점이요 출발점이다.

검찰개혁의 원점은 수사를 더 잘하기 위해서가 아니다. 국가권력에 대한 수사가 목적인 것도 아니다. 만일 국가권력에 대한 수사가 검찰의 존재 이유이고 검찰개혁의 목적이라면 검찰의 수사권을 강화해야 한다. 검찰을 모두 특수부, 공안부로 만들어야 한다. 모든 검사가 국가권력을 감시해야 한다. 검찰의 독립성도 보장해야 한다. 수사를 더 잘하려면 검찰에게 더 많은 권한을 집중시켜야 한다. 하지만 검찰 권한 강화가 검찰개혁일 수는 없다. 검찰이 한국의 정치와 사회를 지배하는 것을 막기 위하여 검찰개혁은 시작되었다. 검찰이 한국의 정치와 사회를 지배하는 것은 검찰에 막강한 권한이 집중되어 있기 때문이다. 검찰개혁은 검찰이 더 이상 한국의 정치와 사회를 지배하지 못하도록 하는 것이다. 검찰의 본래 임무인 공동체의 안전과 평화, 시민의 자유와 인권 보호에 충실하도록 하는 것이 검찰개혁의 원점이다.

검찰 권한의 분산과 견제를 위해서 지금 필요한 것은 무엇일까. 지금은 개혁된 시스템을 현장에 정착시키는 것이 필요한 때다. 검경 수사권 조정은 법률 수준에서는 완결되었다. 지금은 법률의 개혁을 현장의 개혁으로 마감해야 할 때다. 현장의 혼란을 최소한으로 줄이고 개혁된 시스템을 현장에 안착시켜야 하는 단계이다. 이를 위해서는 현장 실무가들이 개혁의 취지를 정확히 이해해야 한다. 검찰개혁의 정의와 원점을 이해해야 한다. 현장 실무가들이 개혁의 취지를 이해할 때 관료 시스템은 제대로 작동한다. 관료제의 장점인 치밀함과 실행력이 빛을 발하게 된다.

거칠고 살벌하며 투박한 현장

현장의 중심에는 개혁을 지휘하는 장관이 있어야 한다. 개혁의 리더십은 검찰개혁의 원점, 출발점을 현장의 실무가들과 공유해야 한다. 검사와 경찰이라는 현장 실무가들에 대한 교육, 연구, 매뉴얼 개발, 시범 실시, 모범사례 발굴, 모범 실무가 발굴, 타 기관과의 협조 등이 필요하다. 이를 통하여 검찰개혁의 원점을 장관과 현장 실무가가 공유해야 한다.

현장의 변화는 법률 개정이나 정치 대결과 달리 드라마틱하지 않다. 지루하기까지 하다. 현장은 거칠고 살벌하며 투박하다. 하지만 개혁을 정착시키려면 피할 수 없다. 개혁의 성공 여부는 현장에 달려 있다. 검찰개혁의 원점을 장관과 현장이 공유할 때만 개혁은 성공할 수 있다.

기자명 김인회 (인하대학교 법학전문대학원 교수) 다른기사 보기 editor@sisain.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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