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사IN 양한모

강유미는 2017년에 유튜브를 시작했다. 연예인, 특히 코미디언 중에서는 꽤 일찍 이 플랫폼에 뛰어든 축에 속한다. ‘좋아서 하는 채널’이라는 제목은 많은 것을 말해준다. 직업적인 의무감보다는 스스로의 발상을, 방송에 얽매이기보다는 자신이 즐길 수 있는 것들을 주로 하는 셈이다. PC방에서 숙박하기, 화장품 사용 후기, 악플 읽기, 한국어와 일본어를 섞어 말하는 ‘한본어’ 등이 신선하다는 반응을 일으켜왔다.

본격적으로 두각을 드러낸 것은 ‘강유미 ASMR’ 시리즈다. ASMR이란 대체로 미세한 소리를 들려주며 일종의 청각적 대리체험을 제공하는 포맷이다. 구슬, 동전 등 사물이 귀를 간지럽히는 소리, 혹은 식사나 이미용 등 상황에서 속삭이는 목소리를 들려준다. 몸과 마음을 편안하게 해주는 용도가 주류라고 할 수 있겠다.

이를 강유미는 코믹한 상황극으로 이끌어간다. 그가 연기하는 인물은 사이비종교 전도원, 일진 학생, 단식원 원장, 낙하산 직원, 싫은데 하는 스타일리스트 등이다. ASMR의 전형성을 따르고 있으니 등장하는 소품을 손끝으로 두들겨 소리를 들려주기는 하는데, 돌팔이 성형외과 의사를 연기하면서 가슴에 넣었다는 밥공기, 꼰대 직장상사의 키보드나 자를 두들기는 식이다. 사실 그의 목소리도 나직나직하지만 속삭이는 것과는 거리가 멀다. 요컨대 귀를 간지럽혀 마음을 안정시킨다는 취지와는 거의 관계가 없다. 더구나 터지는 웃음을 참아가며 안정을 찾는다는 것도 우스운 일이다. 그에게 ASMR은 상황·인물과 함께 패러디의 대상이고, 최소한의 분장으로 시작할 수 있는 플랫폼이며, 또한 과한 분장이나 액션 등을 제약하면서 상황과 언어에 집중하는 창작의 도구다. 그의 영상이 다층적인 웃음을 이끌어낼 수 있는 이유다.

그는 일상에서 마주치는 인간형들의 전형성을 날카롭게 포착하고, 풍성하고도 결정적인 디테일을 더해 생동감을 살리며, 공감하면서 즐겁게 웃을 수 있는 선으로 정리해 선보인다. 과거 그는 ‘분장실의 강 선생님’, 고소녀, 자연인 등 분장과 캐릭터 개그로도 사랑받았지만, 그의 ASMR은 ‘예술 속으로 Go Go’나 ‘사랑의 카운슬러’를 그리워하는 이들에게 더없이 반가운 기획이다. 매번 새로운 인물로 변신하면서 그가 정확히 짚어내는 웃음의 포인트들은 그 다채로움과 관찰의 깊이에 경탄하게 한다. 섣부를지는 모르나, 방송국의 공개 코미디 중심 환경이 강유미의 눈부신 재능을 고스란히 담아내기에는 부족한 일면이 있지 않았나 의심하게 될 정도다.

이례적인 한 편이 있다. ‘음압병동 간호사’ 편이다. 방호복을 입는 것만으로도 지난한 그 과정을 그는 꼼꼼히 재연한다. 환자들과 대화도 나눈다. 그러고는 직원식당 장면에 긴 시간을 할애한다. 동료들과 반찬을 나눠 먹으며 나누는 대사들은 생활감도 넘치지만, 의외일 정도로 ‘음압병동 간호사’와는 크게 관련 없는 일상적 내용이 대부분이다. 대화 도중 자주 즐겁게 웃지만 시청자가 웃음을 터뜨릴 대목은 많지 않다. 마치 간호사들의 일상이 무너지지 않길, 그들이 건강하고 밝은 마음으로 버텨주길, 밥이라도 잘 먹길, 그리고 우리가 그들이 사람임을 잊지 말아주길 기원하는 의식처럼 보일 정도다. 그것이 ‘광대’의 할 일이라는 듯이. 나는 이런 롤플레이나 코미디를 방송에서 본 적이 없다. 강유미가 좋아서 하는, ‘좋아서 하는 채널’이 아니고는.

기자명 미묘 (<아이돌로지> 편집장) 다른기사 보기 editor@sisain.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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