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사IN 양한모

라디오 DJ에는 여러 유형이 있지만, 특히 오후 시간대에 사랑받는 DJ들은 대체로 ‘청자의 혼을 쏙 빼놓는’ 이들인지도 모르겠다. 지치지만 힘내야 하는 오후에 정신없이 몰아치며 즐거움을 선사하니 말이다. MBC FM4U에서 〈오후의 발견〉을 진행하는 이지혜도 그중 하나다. 그가 TV 예능에서 수시로 자리를 박차고 일어나 손가락질을 하거나 팔을 휘두르며 신나게 소리치는 바로 그런 기세로 진행자 역할을 맡는다고 생각하면 될 듯하다. 또랑또랑하고 날렵한 목소리로 따박따박 쏘아붙이는 그의 방송은 느슨해질 틈을 전혀 주지 않는다.

마치 이모티콘이 덕지덕지 붙은 SNS 문장처럼 들리는 그의 말들에는 대체로 거침이 없다. 한동안 사연을 보내다 뜸해진 청취자에게 ‘탕자’를 찾는다며 전화를 걸기도 하고, 전화 연결된 청취자가 너무 긴장하는 것 같으면 “심호흡을 해라, 그래도 떨리면 그냥 끊으셔도 된다, 뭐 어떠냐”라고 말하기도 한다. 독설가의 독설이 줄 시원함을 그는 독설 없이도 전해준다. 비결은 친근감 넘치는 막무가내일 것이다. 사연 받아주는 ‘뚝방길 왕벨트’라는 ‘부캐’를 내세우기도 하는데 듣는 처지에서 딱히 이지혜와 왕벨트의 차이가 무엇인지는 사실 잘 알 수 없으나 어쨌든 분위기는 들썩인다. ‘오후의 발견’을 줄여 가발 광고처럼 “오발~ 오발~”이라고 한다든지, 1990년대식 막무가내 랩을 한다든지 하는 것도 마찬가지다. 그러고 보면 그의 DJ 애칭인 ‘샵디’만 해도 그렇다. 4인조 혼성그룹 샵(S#ARP)에서 대중이 인식하는 그의 지분이 4분의 1을 넘을 것이기는 하나, ‘샵의 멤버로 알려진 이지혜니까 샵디’라니 어지간한 ‘뭐 어때’ 정신이 아니고선 쉽지 않을 유쾌함이다.

그럼에도 그의 방송에는 어떤 견고함이 있다. 앞 시간대를 진행하는 김신영에게는 마치 대우주 ‘드립’의 도서관에서 실시간 스트리밍을 받아 쏟아내는 듯한 신들림이 있다면, 이지혜는 꽤 떠들썩한 대본을 1.6배속으로 읽는 느낌에 가깝다. 그의 말이 빠르고 ‘깨알 재미’가 많기 때문만은 아니다. 라디오는 시트콤 같은 구석이 있다. 온갖 해프닝이 벌어져도 다음 방송일에는 마치 아무 일 없었다는 듯이 원점으로 돌아와 새로운 이야기를 해줘야 한다. 일종의 매너리즘 미덕이다. 이지혜가 청취자와 게스트 모두를 리더처럼 끌고 나갈 때 선명하게 지켜지는 바로 그것이다. 그러면서도 해야 할 말을 놓치는 법이 없다. ‘남편이 조금 거칠게 프러포즈해서 심쿵했다’는 사연을 소개할 때는 “이미 마음에 들었으니까 ‘심쿵’인 것”이라는 말을 빠뜨리지 않는 식이다. 두 사람의 로맨스를 존중하면서도, 다른 맥락에 섣불리 적용하면 안 된다는 지적도 놓치지 않는 적확한 선을 순발력 있게 짚어내는 것이다. 마치 뒤의 대본을 미리 받아 읽어본 사람처럼. 그의 진행을 들을수록 뚜렷한 안정감이 느껴지는 이유다.

2018년 〈오후의 발견〉을 시작했을 때 이지혜는 임신 8개월이었다고 한다(지금도 그는 방송 중에 딸을 자주 언급한다). 쉴 법도 한 시점에 방송을 시작한 결정도 놀랍기는 하다. 하지만 사실 더 놀라운 것은 그가 이만한 실력의 진행을 단독으로 선보일 기회가 이제야 주어졌다는 점 아닐까. 이지혜가 눈부신 실력으로 전력투구하는 〈오후의 발견〉은 이지혜의 발견이자 오후 라디오의 발견이 아닐 수 없다.

기자명 미묘 (<아이돌로지> 편집장) 다른기사 보기 editor@sisain.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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