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사IN 양한모

요즘 MBC 라디오 FM4U는 황금 라인업이라 해도 좋다. 낮 12시 〈정오의 희망곡 김신영입니다〉를 필두로 안영미와 뮤지, 이지혜, 옥상달빛 등 저마다 개성 강한 입담을 지닌 진행자들이 즐비하다. 물론 〈김현철의 골든디스크〉와 〈배철수의 음악캠프〉도 있다. 그리고 올해 5월부터 저녁 8~10시 〈꿈꾸는 라디오〉(꿈꾸라)를 전효성이 진행하기 시작했다.

고백하자면 초기 그의 방송에서 받은 인상은 ‘조심스럽다’는 것이었다. 그의 목소리는 무해하고 사근사근하며 소심한 듯 들렸다. 그는 문장을 몇 어절씩 떼어 선반 위에 올려놓듯이, 마치 시 낭송하듯이 대본을 읽었다. 혼잣말하다가 웃는 듯한 웃음을 드문드문 집어넣었다. 게스트들에게도 정해진 질문을 주로 하는 듯했고, 오히려 능숙한 게스트들이 그에게 곧잘 질문을 던졌다. 그는 듣고 있다가 천진하고 부드러운 목소리로 “와…” 하는 감탄사를 흘리곤 했다. 저녁보다는 새벽 방송처럼 들리기도 했다.

2009년 걸그룹 시크릿으로 데뷔한 그는 한 시기 케이팝의 획을 그은 섹시 스타였다(김신영의 표현으로는 ‘한국의 비욘세 6기’라고 한다). 무대 위에서 그는 터지기 직전의 풍선 같은 생명력을 쏟아내며 사방으로 뛰어다녔다. 남초 커뮤니티는 늘 그의 몸에 찬사를 보냈다. 윗잇몸을 활짝 드러내는 웃음은 천진함과 백치미 사이를 오가는 듯했고, 그는 아이돌로서 사랑받는 것이 기뻐 어쩔 줄 모르겠다는 듯했다. 그러다 구설을 겪었다. 여론이 호의적으로 돌아서기 시작한 건 몇 년 뒤, 그가 한국사능력검정시험을 보고 자격증까지 땄다는 소식이 ‘반성’과 ‘진정성’의 제스처로 읽히면서였다. 연예인 걱정도 병이라면 병일까, 그런 그가 참 노력한다 싶었다. 같은 맥락에서, 그가 라디오에서 미움받지 않으려 애쓰는 건 아닐까 하는 생각도 조금은 들었다.

방송을 ‘진행한다’는 것은 여러 가지 의미가 있을 수 있다. 전효성은, 이를테면, 몇 시 몇 분에 노래가 나와야 하고 이후 몇 분간 어떤 주제로 토크해야 한다는 식으로 타이트하게 짜인 라디오 생방송의 시간 구성 속에서 게스트를 확확 이끌고 가는 느낌을 주지는 않는다(그렇다고 구성에 끌려다니는 느낌을 주는 것도 아니다). ‘드립’을 쏟아붓거나, 스스로 흥에 들떠서 왁자지껄 노는 시간을 보내는 것 같지도 않다. 게스트가 있을 때의 그는, 전국 방방곡곡의 역사 이야기나 전설적 스포츠 영웅의 이야기를 들으며 적절히 리액션하는 사람에 가깝다. 때로는 조금 가벼운 터치의 교양방송처럼 들릴 정도로. 그리고 같은 자세로 청취자들의 이야기를 들어주곤 한다. 그럴 때, 그의 ‘무해한’ 목소리는 청취자를 향한 초대장이 된다. ‘당신의 말을 들어주겠노라’는. 그의 말투는 무리하는 조심스러움이 아니라 다정한 경청인 듯하다.

타블로, 박경, 양요섭 등 존재감이나 캐릭터가 강한 남성 진행자들로 이어져온 ‘꿈꾸라’는 대체로 조금 분방한 방송이었다. 그렇기에 더욱, 전효성이 이 자리를 자신의 것으로 만들 수 있었는지도 모른다. 음악과 말을 들려주는 DJ이기보다는 들어주는 DJ로서 말이다. 마침 시간대는 사람이 다정한 이와 속마음을 나누고 싶어지는 저녁 8시다.

기자명 미묘 (<아이돌로지> 편집장) 다른기사 보기 editor@sisain.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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