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사IN 양한모

짚고 넘어가야 할 게 있다. 지금 가 2012년 이후 최대로 ‘핫’하다면, 그 뒤에는 최소한 2014년부터 ‘차에 타봐’ ‘어디 가요 오빠’ 등 그의 노래에 진저리쳐온 이들이 있다. 이미 3년 전에 발표된 ‘깡’에 대해 ‘숨어서 듣는 명곡’이란 호칭을 선사한 그 사람들이다. 유튜브 영상에 비를 놀리는 댓글 잔치를 벌이며 수많은 사람들을 중독의 길로 떨어뜨린 분들이기도 하다. “내 인생은 ‘깡’을 만나기 전과 후로 나뉜다. 물론 차이는 없다”라는 댓글은 어찌 보면 팝 음악이 얻을 수 있는 최고의 찬사 중 하나다.

그들 중 누군가가 느낀 감정은 어쩌면 허망함이었을지 모른다. 노래 속 비는 스무 살 언저리 남자에게서 흔히 보일 법한 치기 어린 허세를 부리며 낡은 방식으로 ‘잘나가는 나쁜 오빠’ 행세를 했다. 호시절을 잊지 못하고 성장을 거부한 채 나이만 들어가는 남자처럼 보일 지경이었다. 한때 흉곽을 움직이며 숨을 들이쉬고 내쉬기만 해도 대중을 미치게 한 사람이 비다. ‘월드스타’가 그의 이름이나 마찬가지였다. 비는 이제 자신의 모든 것을 보여주고 만 것일까?

차라리 비가 게으르거나 거만했다면 지금과 달랐을지 모른다. 그러나 비는 목적은 불분명하지만 아무튼 기묘하고 힘든 동작들을 마구 해댔다. ‘깡’의 보컬 파트는 워낙 뜬금없는 구성이라 더 특이하기는 하지만, 첫 음정이 터질 때부터 2000년대의 기운이 화려하게 몸을 감싸는 그 음색으로 ‘감성’을 채워 넣는다는 점이 이 노래의 화룡점정이다. 지금 그의 거의 모든 것이 그렇다. 영화 〈자전차왕 엄복동〉 관람을 호소하며 SNS에 남긴 절절한 문구마저도 그랬다. ‘저렇게까지, 불필요할 정도로 전방위적으로 뜨겁기만 한 사람인가?’ 싶은 과잉 말이다.

비를 보고 있자면 좀처럼 답을 내리기 어려운 상념들이 쏟아진다. ‘지금 자신이 놀림거리라는 걸 알고 있는 걸까?’ 혹은 만에 하나라도, ‘허세와 낡음으로 전력투구하다 보면, 마침내 대중을 설득할 수 있으리라고 내다보고 이 모든 걸 준비한 것일까?’ 또한 ‘지금 대중이 기어이 자신의 미학을 따라잡았으니 앞으로도 꼭 이런 노래를 만들겠다고 생각하면 어떡하지?’

나의 상념과는 무관하게, 지금 MBC 〈놀면 뭐하니?〉에서 유재석·이효리와 함께하는 비는 조금 편안해 보인다. 겹겹의 아이러니 속에서 나이브하게 또는 교묘하게 길을 헤쳐가고 있는 사람의 그 모습이다. 살아 있는 화석의 기이한 뒷면이라고 조롱을 받았지만 그것으로 다시 일어난 그다. ‘웃기는 아저씨’가 될 수도, 옛 향취를 간직한 놀라운 하드웨어로 현재를 호흡할 수도 있을 것이다. 어느 쪽이든 나쁘지 않다. 비에게 새로운 삶이 열리고 있다. 꼭 “쓰러질 때까지 춤을 출” 필요는 없으니, 그의 시간이 멈추지 않길 기대한다.

기자명 미묘 (<아이돌로지> 편집장) 다른기사 보기 editor@sisain.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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