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근에 친구와 이야기를 하다 보니 아이 이름 얘기가 나왔다. 친구는 자기가 지은 아이 이름을 말해주며 나중에 학교에 가서 놀림거리가 되지 않게 최대한 무난한 이름으로 지었다고 했다. 아쉽게도 친구의 소망은 이루어지지 않을 가능성이 높다.

어린 시절을 떠올려보면 내 흔해빠진 성과 이름으로도 애들은 기가 막힌 창의력으로 사람을 놀려댔다. 이게 가능한 것은 이름은 놀림을 위한 명분일 뿐이지 핵심은 놀리는 행위에 있기 때문이다. 또한 내가 화를 냈던 것도 놀리는 단어보다는 행위 자체가 기분 나빠서였다.

최근에 PC(Political Correctness: 정치적 올바름) 운동의 일환으로 차별적 발언과 사회적 약자에 대한 비하를 욕으로 쓰지 말아야 한다는 주장이 나온다. 옳고 마땅한 말이다. 하지만 그것으로 충분할까 하는 생각이 든다. 미국은 인종차별적 발언을 터부시하지만 그렇다고 해서 인종차별이 사라지기는커녕 암묵적 차별이 늘어났다.

인터넷은 사회적 분위기나 억압 등으로 내보일 수 없었던 억눌린 내면을 드러내는 공간이다. 낙태가 금지된 주에서 자가 낙태 관련 검색률이 높은 사실이나, 동성애에 비관용적인 지역일수록 게이 포르노의 검색률과 더불어 동성애자 테스트를 같이 검색하는 현상 등은, 드러나지 않는 곳에 실제가 존재한다는 사실을 우리로 하여금 깨닫게 한다.

인종차별 또한 마찬가지다. 이슬람교인들은 테러리스트라는 고정관념이 박힌 집단이다. 2015년 캘리포니아 총기 난사 사건 당시 언론에 가해자의 이슬람식 이름이 공개되자 캘리포니아 주에서 ‘이슬람교도를 죽이자’라는 구글 검색이 급격히 늘어났다.

〈모두 거짓말을 한다〉
세스 스티븐스
다비도위츠 지음
이영래 옮김
더퀘스트 펴냄


이후 오바마 대통령은 전국 연설에서 ‘이슬람포비아’를 줄이는 것이 중요하다며 포용과 관용을 외치는 연설을 했다. 언론들의 평가는 극찬 일색이었다. 그러나 검색어에선 오히려 사람들의 분노가 더욱 커졌다는 사실만 확인될 뿐이었다. 이러한 현상은 1년간 지속되다가 ‘이슬람계 미국인은 우리의 이웃이자 우리의 스포츠 영웅이며 제복을 입고 우리나라를 위해 기꺼이 목숨을 바치는 사람들’이라는 오바마 대통령의 연설 이후 달라졌다.

이전까지 이슬람의 연관 검색어는 테러리스트, 극단주의자, 난민이었지만 운동선수, 군인이라는 검색어가 크게 증가한 것이다. 분노한 사람은 가르치려는 행위에 더 분노하며 오히려 그들의 편견과 차별을 강화해나간다. 표면적인 금지만으로는 아무것도 달라지지 않는다. 〈모두 거짓말을 한다〉는 우리의 이러한 어두운 면을 마주보게 한다. 이제는 이면의 현실을 인정하고 표면이 아닌 이면을 바꾸고자 하는 노력이 우리에게 필요하지 않을까? 

기자명 김영준 (〈골목의 전쟁〉 저자) 다른기사 보기 editor@sisain.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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