앙코르와트를 여행한 적이 있다. 12세기 건축물이라고는 믿어지지 않을 만큼 거대하고 정교한 앙코르와트는 눈이 닿는 곳마다 다양한 부조(浮彫)를 새겨 그들의 신화와 역사를 기록했다. 인류는 항상 글에 앞서 미술로 역사를 기록해왔다.
라스코 동굴 벽화, 알타미라 동굴 벽화를 보라. 구석기 시대에도 인간은 동물과 자신의 삶을 그림으로 남겼다. 그렇다면 우주와 지구의 역사 역시 기록되어야 마땅하다. 인류의 문명 역시 우주의 일부니까. 〈알파-우주, 지구, 생물의 탄생〉은 우주의 탄생에서부터 인류가 등장하기까지 과정을 만화로 기록하려는 담대한 시도다.
책의 그림을 한 장 한 장 넘기며 그 지난한 과정을 보고 있노라면 지구가 생겨나고 인류가 문명을 만들고 내가 태어났다는 사실이 기적처럼 느껴진다. 인류 역사에서 1만5000년이라는 시간이 까마득하게 느껴지지만 우주의 시각에서 보면 100만 년조차 찰나에 불과하다.
하나의 특이점으로부터 우주가 팽창하여 태양계가 탄생하기까지는 무려 87억 년이라는 시간이 필요했다. 축구공 크기의 특이점으로부터 플라스마, 쿼크, 방사선, 전자, 양전자 등 물질과 에너지가 뒤섞여 한없이 충돌하며 은하가 생성되고 항성이 생겨난다. 끝없는 탄생과 충돌, 소멸 과정을 겪으며 우주는 분화되고 새로운 원자가 탄생한다.
지구 역시 이 과정에서 46억 년 전에 태어났다. 지구의 위치는 절묘했다. 태양에 가까운 행성은 작고 뜨겁고, 태양에서 먼 행성은 무겁고 차가운 가스 형태를 이뤘다. 오직 지구만이 기적적으로 생물이 탄생할 수 있는 균형을 맞춘다. 그렇다고 곧바로 생물이 태어난 것도 아니다. 너무 뜨거워 지표조차 제대로 생성하지 못했던 원시 지구는 생성 후 4억 년 정도 시간이 흐르고서야 100℃ 아래까지 내려갔다. 그때쯤 대량의 구름이 생기고 처음으로 척박한 대지에 비를 뿌린다!
수백만 년의 시간을 거쳐 조금씩 바다를 형성하고 ‘유기물’이 형성되기 시작한다. 환경의 위협을 이겨내며 유기물은 우주가 그러했듯이 끝없이 분화하고 결합하며 마침내 모든 생명체의 기원을 만들어낸다. 바로 박테리아다.
박테리아 생성 이후에도 지구에는 운석 충돌, 화산활동, 대륙 이동 등 급격한 환경 변화로 수많은 생물이 생겨나고 멸종한다. 지구의 주인은 양서류, 파충류, 그리고 포유류로 권력이 이동한다. 지구에 변동이 있을 때마다 수많은 종이 영문도 모른 채 쓸려 나간다. 인류는 300만 년 전쯤에야 원시적인 형태로 겨우 모습을 드러낸다.
저자는 철저한 자료 조사 위에 상상력을 보태고 섬세한 필치로 우주의 역사를 압축했다. 수십억 년의 역사 속에는 어떠한 주인공도, 일관된 스토리도 없다. 그러나 어떤 드라마 못지않은 감동이 서려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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