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대 총선 사흘 전, 한 매체는 ‘전문가들이 보는 판세 분석’이란 제목의 기사를 내놓았다. 이에 따르면, 리얼미터 이택수 대표는 새누리당 155석, 더불어민주당 100석, 국민의당 25~28석, 정의당 8석 등으로 예측했다. 오피니언라이브 윤희웅 센터장도 새누리당 155석, 더민주 99석, 국민의당 31석, 정의당 7석으로 전망했고, 엠브레인 이병일 상무 역시 새누리당이 158~170석을 얻어 압승할 것으로 내다봤다. 더민주는 93~94석, 국민의당 28~30석 정도였다. 이처럼 각 여론조사 기관이 새누리의 과반 의석 확보를 예측한 근거는 야권 분열이었다.

그러나 과거 선거 데이터를 살펴보면 ‘야권 분열=야권 필패’라는 등식이 성립하지 않음을 알 수 있다. 가장 최근에 여소야대로 귀결된 선거는 2000년 16대 총선이었다. 공동 여당이었던 새천년민주당과 자민련이 따로 출마했다. 당시 야당인 한나라당에서도 공천 논란 때문에 민국당이 떨어져나갔다. 결국 ‘2여 3야’ 구도로 총선이 치러졌다. 그러나 개표 결과를 보면, 공동 여당은 의석의 48.3%밖에 차지하지 못했다. 그래서 무소속 의원을 영입하고 민국당을 연정에 끌어들이는 등 고육지책을 동원해야 했다. 1992년과 1996년 총선은 노태우 정부 말기와 김영삼 정부 임기 후반부에 치러진 선거다. 두 선거 모두 1여 2야 구도로 진행되었지만, 여당은 과반 의석 확보에 실패했다. 야권이 분열된 상태였으나, 시민들이 대통령의 국정을 심판했던 것이다. 또한 1992년에는 국민당, 1996년에는 자민련이라는 중도 또는 보수 성향의 야당이 등장해 여당 표를 잠식하기도 했다.

총선 전 거의 모든 정치 여론조사 기관이 ‘새누리당 과반 의석 확보’를 예측했다.

여론조사는 총선 결과에 큰 영향을 미친 것으로 분석되는 2030 세대의 ‘분노’를 전혀 감지하지 못했다. 방송 3사 출구조사에 따르면, 20대의 투표율 잠정치는 19대 때보다 13.2% 늘어난 49.4%다. 30대 투표율 역시 6.2% 증가한 49.5%였다. 나머지 세대는 큰 변화가 없었다. 대다수 여론조사 기관은 이런 흐름을 간과했다. 더욱이 청년과 직장인의 의견을 반영하지 못하는 ‘집 전화 여론조사’의 구조적 한계가 명백했다.

당내 경선에 여론조사를 계속 사용해도 될까

중도층의 표심을 읽어내는 일 역시 마찬가지다. 중도층은 흔히 ‘산토끼’로 불린다. 그러나 사실은 ‘무당층’으로 불러야 적확하다. ‘마음이 흔들리는 투표자’라는 의미인 ‘스윙보터’란 용어도 있다. 이들은 자신의 삶에 도움을 줄 만한 후보를 찾기 위해 지지 정당을 쉽게 바꾼다. 이념보다 선거 당시의 정치 상황과 이슈에 따라 투표하는 경향을 나타낸다. 소선거구제가 부활된 13대부터 19대까지, 원내에 진출한 ‘제3세력’을 지지한 유권자는 평균 389만명이었다. 유효투표 수의 19.4%다. 무소속 당선자까지 합산하면 20% 이상일 것이다. 중도층으로 불리는 이런 유권자들이 어떤 시대정신을 바라고 있는지, 그에 따라 정치권이 어떤 이슈에 집중해야 하는지 보여주는 역할을 여론조사 기관들은 수행하지 못했다. 그저 후보와 정당 간 지지도 추이에만 매몰되었다.

20대 총선이 끝났다. 또다시 여론조사 무용론이 등장했다. 리얼미터 이택수 대표는 업계 대표 자격으로 공개 사과했다. 그러나 정치권이 여론조사를 대하는 태도를 바꾸지 않는 한 악순환은 계속될 것이다. 특히 여론조사를 후보자 선출(당내 경선)의 잣대로 사용하는 한 이런 실수와 논란은 그치지 않을 것이다. 여론조사로 선거를 치르는 나라는 한국뿐이다.

기자명 최광웅 (데이터정치연구소 소장) 다른기사 보기 editor@sisain.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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