특집


‘아님 말고’식 여론조사 주범은 선거용 ‘떴다방’


“이대로 놔두면 2년 뒤 또 낚인다”

 

4·13 총선을 한 달여 앞둔 3월8일, 전국적 관심 지역구인 대구 수성갑을 발칵 뒤집는 여론조사가 하나 나왔다. 새누리당 김문수 후보(47.4%)가 처음으로 더민주 김부겸 후보(43.2%)를 제쳤다는 결과였다. 〈경북일보〉와 〈뉴데일리〉가 공동으로 지역의 한 여론조사 업체에 의뢰한 조사에서였다. 당시 거의 모든 여론조사에서 김부겸 후보가 최소 10%포인트 이상 앞서는 것으로 나타나고 있었던 터라 충격은 컸다.

〈경북일보〉는 이 결과를 1면 머리기사로 보도하면서 ‘김문수·김부겸 박빙 승부’라는 제목을 달았다. 그러면서 “최근 북한의 미사일 발사 등으로 인한 남북 갈등, 더민주의 필리버스터로 인한 반감 등으로 (새누리당 지지층이) 김부겸 지지에서 김문수 지지로 이탈·유입되는 현상이 나타나고 있다”라고 해석했다.

그러나 이 조사 결과는 하루 만에 중앙선관위로부터 경고 조치와 함께 ‘공표 불가’ 판정을 받았다. 후보자 지지 여부를 묻는 질문의 답변 가운데 ‘지지 후보자 없음’ 항목을 빼고 ‘잘 모름’만 집어넣었기 때문이다. 이런 답변 항목 설정은 아직 지지 후보를 결정하지 못한 부동층의 응답을 왜곡할 수 있다는 것이 일반적 시각이다. 20대 총선 결과 김부겸 후보(62.3%)는 김문수 후보(37.75%)를 24.55%포인트 차로 크게 따돌리며 승리했다.

ⓒ동아일보선거 때마다 각종 여론조사 결과가 쏟아지는 것은 저렴한 비용구조 탓이 크다. 위는 한 여론조사 기관이 여론조사를 실시하고 있는 모습.

대구 정가에서는 이 여론조사 결과를 놓고 뒷말이 무성했다. 이 조사를 수행한 여론조사 업체 관계자는 “원래 넣어야 하는데, 실수로 빠졌다. ‘잘 모름’에 ‘지지 후보 없음’이 포함될 수도 있다고 생각했는데, 이번 선거부터 기준이 까다로워졌다”라고 말했다.

대구 수성갑의 사례처럼 올해 실시된 총선 여론조사에서는 유독 예측이 실패한 경우가 많았다. 올해 실시된 선거 여론조사 가운데 문제점이 발견되어 중앙선관위 여론조사공정심의위원회가 조치를 취한 건수도 110여 건에 이른다. ‘여론조사 무용론’까지 나오는 형편이다.

뒤늦은 변명이지만, 총선 이전에도 이번 여론조사의 문제점을 지적하는 목소리는 있었다. 지역구가 253개나 되는 총선의 특성상 휴대전화 여론조사가 불가능한 탓에 100% 유선전화로 이루어지는 현재 총선 여론조사를 곧이곧대로 믿어서는 안 된다는 이야기였다(〈시사IN〉 제447호 ‘끝날 때까지 끝난 게 아니다’ 기사 참조).

실제로 총선 이후 만난 여러 여론조사 전문가들은 한결같이 ‘이상 징후’를 감지했다고 말한다. 선거 막판으로 갈수록 새누리당 지지율이 빠지고 더민주와 국민의당 지지율이 동반 상승하는 결과가 나타났다는 것이다. 따라서 이들은 현행 선거법이 발목을 잡고 있는 ‘선거일 6일 전부터 여론조사 공표 금지’ 조항을 완화해야 한다고 주장한다. 특정 여론조사에 유권자가 휘둘리는 것을 막기 위한 취지지만, 상당수 유권자가 선거 막판에 지지 후보를 결정하는 만큼 여론조사의 신뢰도를 높이기 위해서는 법적 제한을 풀어줘야 한다는 것이다(“이대로 놔두면 2년 뒤 또 낚인다” 기사 참조).

그러나 이는 반쪽짜리 해법이다. 이번 총선에서 각종 여론조사 기관은 선거 마지막 날까지도 자신 있는 답을 내놓지 못했다. 소수의 전문가만이 새누리당 지지층 균열을 근거로 ‘여소야대 가능성’을 점쳤을 뿐이다. 한 여론조사 전문가의 말마따나 “흐름은 감지했는데, 지표가 워낙 뚜렷하니 입을 열지 못하고 간 보는 상황”이 된 것이다. 공표 금지 조항이 발목을 잡는 건 맞지만, 이것이 여론조사 오류의 근원은 아니라는 이야기다.

ⓒ연합뉴스2015년 9월 당시 김무성 새누리당 대표(왼쪽)와 문재인 새정치민주연합 대표는 안심번호를 통한 국민공천에 합의했다.

유선전화가 아예 없는 집이 전체 가구의 20%

현행 여론조사에는 몇 가지 한계가 있다. 우선 대통령 선거와 같은 전국 단일 선거와 총선·지방선거와 같은 지역구 선거의 차이다. 앞서 말했듯 지역 단위 선거에서 여론조사 기관은 유선전화를 기반으로 조사를 실시한다. 휴대폰 번호로는 어느 지역 유권자인지 알 수가 없기 때문이다.

문제는 유선전화 조사 환경이 갈수록 악화된다는 데 있다. 아예 유선전화가 없는 집이 전체 가구의 20% 정도나 되는 데다, ‘070’ 사용 가구, 전입 가구 등은 지역구 파악이 정확하게 되지 않는다. 여기에 20대 유권자의 경우 유·무선 상관없이 응답률이 현저하게 떨어지는 탓에 여론조사 기관마다 20대 표본 확보에 사활을 거는 형편이다.

상당수 이름난 여론조사 업체들이 ‘해법’으로 삼는 게 안심번호 여론조사다. 현재 사용하고 있는 ‘010-’ 형식의 전화번호를 다른 가상번호로 바꿔 여론조사를 실시하는 것이다. 개인정보를 식별할 수 없어서 조직 동원 등 여론 조작이 어렵다는 장점이 있다. 향후 안심번호 활용이 정착될 경우 응답자들의 피로감이 커지면서 표본이 ‘오염’될 가능성도 있지만, 지금으로서는 가장 믿을 만한 대안이라는 데에 큰 이견이 없다.

현재 선거법상 이 안심번호는 정당 여론조사에만 사용할 수 있다. 지난해 9월 새누리당 김무성 대표와 새정치민주연합 문재인 대표가 ‘안심번호를 통한 국민공천’에 합의했다가 청와대의 강한 반발을 산 바 있다. 당시 정치권에서는 노년층 보수 유권자의 표본 수집이 줄어들 것을 염려한 청와대와 친박계가 반발하고 있다는 관측이 우세했다.

안심번호를 여론조사 업체가 사용할 수 있다면 어떻게 될까. 우선 돈 문제가 있다. 〈시사IN〉은 한 여론조사 업체 관계자로부터 실제로 안심번호가 사용될 경우 비용이 얼마나 드는지 설명을 들었다. 그는 “이 업계가 이윤을 내기 얼마나 힘든 구조인지 알려주겠다”라며 실행 예산을 적나라하게 보여줬다.

2016년부터 바뀐 선거법에 따라 총선 때는 지역구마다 최소 500명 이상의 표본을 모집해야 여론조사 공표가 가능하다. 500명 이상 표본을 모집하기 위해서는 통상 그것의 20배(1만 개)의 전화번호를 확보해야 한다. 먼저 통신사로부터 안심번호를 ‘구매(건당 330원×1만 개)’하는 데 드는 비용이 최소 330만원이다. 면접원 1인당 하루에 6시간(응답률을 10%로 잡았을 때) 정도 전화 면접을 실시할 수 있다고 가정하면 75건 정도가 가능하다. 최소 7명(일당 12만원)은 투입해야 500명 이상 표본을 만들어낼 수 있다. 여기에 각종 간접비와 연구원의 인건비를 합치면 최소 100만원. 결국 부가세를 제외한 순비용만으로도 500만원을 훌쩍 넘는다. 샘플 한 개당 기본비용만 1만원이 넘는 셈이다. 업체 마진까지 계산하면 지역구 한 곳당 500만~1000만원 사이가 ‘정가’라는 이야기다.

ⓒ연합뉴스2월26일 중앙선거관리위원회에서 ‘제20대 국회의원선거 여론조사 공정성 확보 대책회의’가 열렸다.

누구나 여론조사 기관의 대표가 될 수 있다고?

현실은 많이 다르다. 지역구 한 곳당 이 정도 비용을 감수하고 여론조사를 의뢰할 수 있는 언론사는 그리 많지 않다. 결국 안심번호를 도입할 경우 이만한 비용을 낼 수 있는 몇몇 언론사만 여론조사를 의뢰할 수 있다. 정치 여론조사에 일종의 ‘진입 장벽’이 생기는 셈이다. 안심번호 도입 여부를 놓고 언론과 여론조사 기관 사이에 미묘하게 의견이 갈리는 지점이다.

실제로 선거 때마다 여기저기서 각종 여론조사 결과가 쏟아지는 데에는 ‘저렴한 비용구조’ 탓이 크다. 자동응답시스템(ARS)을 이용하는 여론조사는 문제가 더 심각하다는 게 중론이다. 한 여론조사 업체 관계자의 말마따나 “조사원 한두 명에 기계 몇 대만 있으면” 가능하기 때문에 부실한 여론조사 결과가 속출한다. 앞서 지적한 대구 수성갑 여론조사 역시 100% 유선전화 ARS였다.

사정이 이렇다 보니 선거 때마다 반짝 하고 사라지는 ‘떴다방’ 업체도 한둘이 아니었다. 특정 후보나 특정 언론사의 의뢰를 받고 품질이 떨어지는 여론조사 결과를 내놓고 선거 이후에 사라지는 업체들이다. 현행법상 여론조사 업체는 등록제가 아닌 신고제다. 누구라도 신고만 하면 여론조사 기관의 대표가 될 수 있다. 이런 상황이니 중앙선관위 등 관련 부처는 현재 여론조사 기관이 몇 군데인지, 매출 규모가 얼마인지 제대로 파악하지 못하고 있다. 100~200군데 정도 업체가 들고 난다는 게 대체적인 시각이다.

한 여론조사 기관 관계자는 “국내 리서치 시장 총매출액을 5500억원 수준으로 보는데, 이 가운데 언론사 여론조사가 얼마나 차지하는지 정확히 모른다. 다만 메이저 회사의 경우 언론사 여론조사가 돈이 안 되기 때문에 기피하는 게 현실이다”라고 말했다. 이 관계자는 “그나마 돈이 되는 정당 여론조사를 수행하려면 커리어가 필요하기 때문에 울며 겨자 먹기로 언론사 조사를 수행하는 곳이 태반이다”라고 말했다.

업계에서 ‘정치 여론조사’에 대한 취급이 이렇다 보니 전문가 양성도 제자리걸음이다. 여론조사 기관은 난립하지만 실제로 전문가는 손가락에 꼽을 정도다.

선거철만 되면 조사 의뢰가 쏟아지는 데 비해 전문가가 부족하니 실제 조사 분석은 경력이 일천한 말단 연구원이 수행하는 경우도 있다고 한다. 패널 추적조사나, 표적집단 심층면접 같은 양질의 조사를 수행하기 어려운 조건이라는 것이다. 지난 몇 년간 언론·여론조사 기관·중앙선관위 등 세 주체가 이런 현실을 방치해온 결과 이번 총선에서 ‘여론조사 참사’가 벌어진 셈이다.

중앙선관위 관계자는 “안심번호 문제 등 여론조사 업계가 어떤 고민을 하는지 알고 있지만, 현재로서는 뭐라 말하기가 어렵다. 5월27일 열리는 여론조사 개선 방안에 대한 공청회를 지켜봐야 할 것 같다”라고 말했다.

기자명 이오성·이상원 기자 다른기사 보기 editor@sisain.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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