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6년 4월13일은 또 다른 ‘멘붕의 밤’이었다. 직업 정치인, 평론가, 언론, 여론조사 전문가, 교수…. 여의도 생태계 안에서 먹고사는 사람들 중에 20대 총선 결과가 이렇게 되리라고 예측한 이는 거의 없었다. 다자 구도로 대중의 선택지가 늘어난 점, 선거 막판 새누리당 지지층의 이탈 양상을 보며 여소야대 가능성을 점친 이들은 있었다. 그러나 그들 역시 이 정도 규모의 ‘투표 반란’이 일어나리라고 보지는 못했다.

2012년 12월19일에는 야권이 왜 패했는지 몰라서 혼란에 빠졌다면, 이번 4월13일에는 야권이 어떻게 이겼는지 설명할 수 없어서 곤혹스러웠다. 주어를 여권으로 바꿔도 마찬가지다. 4·13 총선 결과에 대한 정치권의 반응은 한마디로 ‘민심, 너무나 무서운 것’이다,

ⓒ연합뉴스

총선 결과가 나온 이튿날 국회에서 더불어민주당 핵심 당직자와 마주앉았다. 그는 자리에 앉자마자 상기된 표정으로 이렇게 말했다. “20년 넘게 정치권에 몸담았지만 이번 선거처럼 예측이 빗나간 적은 처음이다. 선거 이겼다고 좋아할 때가 아니다. 우리는 민심을 읽는 데 완벽하게 실패했다. 정치권의 완패다.”

4월13일 국회 상황은 이런 예측 불가를 그대로 보여준다. 투표 마감(오후 6시) 직전까지도 정치권 관계자들은 잠시 뒤 있을 충격의 낌새를 알아채지 못했다. 더민주 당직자들은 국회 상황실 주변에 하나둘씩 모여 의석수 세 자릿수를 넘길 것인가를 놓고 대화를 나누고 있었다.

정장선 더민주 총선기획단장이 기자와의 대화에서 “분위기가 나아지고 있다. 총선 목표 의석을 110석으로 올렸다”라고 말했지만, 당직자 대다수에게 새누리당 과반 붕괴는 상상조차 못한 일이었다. 방송사 출구조사 발표 직전 일부 당직자들이 ‘새누리 과반 붕괴’라는 문자 메시지를 받고 “이게 뭐야?”라며 놀라워했다. 그마저도 방송사 출구조사에서 새누리당이 얻을 최대치(새누리당 140석대)에 반응한 것이었다. 실제 새누리당이 얻은 의석은 122석에 불과했다. 탄핵 역풍이 불었던 2004년 총선 때보다 1석 더 얻는 데 그쳤다.

선거가 끝난 뒤에야 몇몇 여론조사 업체가 더민주 지지율이 새누리당을 추월했다는 결과를 발표하고 있지만 ‘사후 약방문’이나 마찬가지다. 여전히 정치권은 왜 민심이 반란을 일으켰는지 읽어내지 못하고 있다.

여의도 호사가들에게는 ‘변하지 않는 진리’가 하나 있다. 여론이 아무리 요동쳐도 결국 선거날 민심은 여야가 51대49 또는 49대51로 팽팽해진다는 것이다. 새누리당-더민주-국민의당 3자구도로 치러진 이번 선거에서도 마찬가지였다. 더민주가 선거 막판에 야권 지지층을 향해 한쪽으로 표를 몰아달라는 캠페인을 벌인 것은 이런 이유에서였다.

더민주의 이런 전략은 새누리당에게도 ‘현상 유지’를 유도한다. 제1야당의 캠페인이 거세질수록 여권 지지층도 결집하리라는 확신을 불러온다. 선거 막판 지지층 균열을 예감한 새누리당의 석고대죄는 제1야당의 표 몰아주기 전략에 대응하는 것이었다. ‘결집하는 야권에 맞서 미워도 다시 한번’을 호소했다.  

더민주·새누리당의 서울 득표율 살펴보니

투표함을 열자 세상이 뒤바뀌었다. 집 나갔던 새누리당 표는 돌아오지 않았다. 야권 지지층도 제1야당에 표를 몰아주지 않았다. 호남은 국민의당이 휩쓸었고, 정당 투표에서도 국민의당이 더민주를 앞질렀다.

야권 지지층이 지역구는 더민주를 찍고, 비례대표는 국민의당에 몰아준 ‘전략투표’ 결과 더민주가 수도권에서 승리했다는 식의 분석은 절반만 맞는 이야기다. 실제로 지역구에서 더민주를 찍은 유권자의 상당수가 정당 투표에서 국민의당으로 옮아간 것은 맞다. 그러나 그것만으로 더민주의 수도권 승리가 설명되지 않는다.

서울 지역을 보자. 서울 지역 49개 선거구의 총선 결과는 더민주 35석, 새누리당 12석, 국민의당 2석이다. 그런데 더민주가 승리한 35개 지역구 가운데 더민주 후보의 득표율이 50%를 넘은 곳은 종로(정세균), 동대문을(민병두), 강북을(박용진) 등 13군데다. 표 쏠림으로 ‘과반’을 차지해서 승리한 곳보다 3자 구도에서 비교우위를 점해 승리한 곳이 세 배 가까이 많다는 이야기다.

핵심은 새누리당 지지층의 이탈이다. 수도권에서 새누리당 득표율은 과반 한참 아래로 무너졌다. 서울 49곳 선거구 가운데 36곳에서 새누리당 후보의 득표율은 40%에도 미치지 못했다. 서초 갑·을, 강남 갑·병 등 전통적 강세 지역과 은평갑·서대문갑 등 국민의당 후보가 불출마한 13개 지역에서만 40%를 넘겼다. 19대 총선 때 새누리당은 서울 지역에서 야권에 완패했지만, 48개 지역구 가운데 41곳에서 40% 이상을 득표했다.  

이탈한 새누리당 지지층은 어디로 갔을까. 투표장에 가지 않았거나, 국민의당 쪽으로 이동했을 공산이 크다. 새누리당의 한 관계자는 “국민의당 정당 득표가 더민주를 앞지른 것은 야권 표만으로 설명되지 않는다. 새누리당에서 적어도 4% 정도 이동했고, 이 과정에서 지역구 투표에도 영향을 미쳤을 것이다”라고 말했다. 새누리당 강세 지역인 부산(20.3%), 대구(17.4%) 등에서도 국민의당이 적잖은 정당 득표율을 기록한 것은 이런 해석을 뒷받침한다. 오히려 새누리당 지지층 일부가 국민의당을 택하면서 더민주가 ‘어부지리’를 얻은 것 아니냐는 해석까지 가능해진다.  

ⓒ시사IN 윤무영새누리당은 탄핵 열풍이 불었던 2004년 총선 때보다 고작 1석 많은 122석을 거두었다.

새누리당은 왜 ‘지지층 이탈’을 감지 못했을까

새누리당은 왜 이런 결과를 미리 알아채지 못했을까. 공천 파동 여파가 결국은 잠잠해지면서 다시 지지층이 결집할 것이라고 생각했을까. 서울 지역에서 선거를 치른 한 새누리당 후보 측 인사는 이렇게 말했다. “선거를 많이 뛰다 보면 바닥 민심 체감만으로 우리가 얼마나 이기고 지는지 대체로 감이 온다. 이번에는 확실히 바닥 민심이 심상치 않았다. 전통적 지지층이 모이는 약수터 같은 곳에 인사를 다니면 ‘어떻게 정치를 그따위로 하느냐’라며 호통을 치는 유권자들이 많았다. 투표율이 낮은 2030 여론 따위야 솔직히 신경 쓰지도 않았다. 그래도 여론조사 결과가 워낙 좋으니, 다른 소리를 할 수가 없더라.”

그러면서 이 관계자는 흥미로운 이야기를 전했다. “새누리당의 공천 잡음이 커지면서 캠프에서는 불안감이 생겼다. 혹여 바닥 민심이 심상치 않다는 이야기가 캠프 밖으로 새어나가면 중앙당에서 ‘왜 지역구 관리를 그따위로 했느냐’라며 불이익을 줄지도 모른다는 분위기였다. 그저 모른 척하며 여론조사 결과만 바라보는 수밖에 없었다. 여론조사의 덫에 걸린 것이다.”

대구 지역 새누리당의 한 관계자도 비슷한 말을 했다. “지역에서 택시를 타보면 최경환 의원(대구·경북 새누리당 선대본부장)을 욕하는 이가 많았다. 자기가 뭔데 진박이니 뭐니, 호가호위하면서 정치판을 흔드느냐는 불만이었다. 공천 파동 이후에는 박근혜 대통령을 비판하는 목소리도 들을 수 있었는데, 설마 하면서 흘려듣고 말았다. 돌이켜보면 그것이 민심의 빨간불이었다.”

ⓒ시사IN 조남진4월13일 밤 새누리당(위)과 더민주의 선거 상황실 분위기는 무척 달랐다. 더민주가 123석 거두었다.

실제로 새누리당은 총선 국면이 본격적으로 시작된 뒤에도 이런 민심을 간파하지 못했다. 이는 거리 현수막을 통해서도 알 수 있다. 중요한 시기만 되면 이념 문제와 지역이기주의를 파고드는 현란한 현수막으로 논란을 일으켰던 과거와 달리 이번 총선 기간 새누리당의 주요 현수막은 ‘뛰어라 국회야’였다. 당 안팎에서 정체가 불분명한 메시지라는 비판이 잇따랐지만, 새누리당의 슬로건은 바뀌지 않았다. 선거운동 막판에야 회초리를 들어달라며 읍소 전략을 취했지만, 지지층의 균열을 막기에는 너무 늦었다.

이는 결국 ‘승자의 저주’에 가까웠다. 지난 4년 동안 새누리당은 모든 선거에서 극적인 승리를 거뒀다. 이명박 정권 말기, 참패가 예고됐던 2012년 총선 때 박근혜 비대위원장의 지휘 아래 과반 의석을 차지했고, 8개월 뒤 야권 단일 후보와 치른 대선에서도 승리했다. 세월호 참사 직후 치른 2014년 지방선거에서도 사죄 퍼포먼스를 벌이며 막판 뒤집기에 성공했다. 7·30 재보선 등 모든 재·보궐 선거에서도 승리했다. 모두 지지층의 막판 결집 덕이었다.

그러나 20대 총선에서 새누리당 지지층의 막판 결집은 일어나지 않았다. 전체 투표율이 올랐음에도 새누리당 후보의 득표율은 크게 떨어졌다. 김문수·김무성·오세훈 등 여권의 대선주자에게 씻을 수 없는 상처를 남겼고, 대구·부산 등 여권의 텃밭에서도 더민주 당선자가 대거 탄생했다. 지역주의가 무너지는 소리가 들리고, 국회는 1996년 총선 이래 20년 만에 ‘3당 교섭단체 체제’로 진입했다.

ⓒ시사IN 신선영안철수 대표가 이끄는 국민의당(위)은 38석을 얻으며 20대 국회 교섭단체 구성에 성공했다.

한동안 정치권은 이 민심의 파고로부터 헤어나오지 못할 것으로 보인다. 참패한 새누리당은 물론이고 야권도 커다란 숙제를 안았다. 더민주는 영남권 진출로 전국 정당이라는 타이틀을 얻었지만, 호남을 잃었다. 1987년 민주화 이래 호남-리버럴(민주화운동 세력) 연합으로 지탱해왔던 지지 기반에 근본적인 결함이 생겼다. 국민의당은 거꾸로 ‘호남 자민련’이라는 한계를 극복해야 할 처지가 되었다.

정치권 일각에서는 이번 총선 결과를 놓고 1년8개월 뒤 대선을 미리 점치기도 한다. 더민주·국민의당·정의당 등 야권의 정당 득표(59.5%)가 새누리당(33.5%)을 두 배 가까이 압도한 만큼 내년 대선이 야권에게 유리하리라는 이야기다. 천만의 말씀이다.

야권의 총선 승리는 야권 스스로 거둔 것이 아니다. 박근혜 정부와 새누리당의 실정에서 오는 반사이익과 20년 만에 등장한 3자 구도에 의한 ‘일시적 현상’으로 보는 게 옳다.

오히려 20대 국회 개원 이후 두 야당이 치열한 주도권 쟁탈전을 벌이는 과정에서 중심을 잃고 비틀거릴 가능성을 배제할 수 없다. 새누리당이 레임덕에 빠질 박 대통령과 선을 긋고 혁신 드라이브를 걸면 유권자의 선택이 180° 달라질 공산이 크다. 정치권이 민심의 흐름을 읽지 못하고 헤매는 한 2017년 12월20일에는 또 다른 ‘멘붕의 밤’이 찾아올지도 모른다. 민심이 그렇게 무섭다.

ⓒ연합뉴스원내 유일 진보 정당인 정의당은 6석을 얻는 데 그쳤다.

 

 

 

 

 

기자명 이오성 기자 다른기사 보기 dodash@sisain.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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