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사IN〉 여론조사에서 일반 대중은 일자리 창출 등 당면한 경제 문제를 해결하는 데 박근혜 비대위원장보다 안철수 원장이 더 나은 능력을 보일 것으로 평가했다. 현실은 어떨까. 두 사람 모두 아직 경제 공약들을 체계적으로 내놓지는 않았다. 그러나 현재까지 보인 이들의 행보를 종합하면 안철수와 박근혜의 경제 공약은 의외로 비슷하리라 보인다.


안철수:IT와 청년

안철수는 자신이 몸담은 IT 업계의 현실을 통해 한국 경제 전체를 조망하는 경향이 있다. 예컨대 지난 10여 년 동안 미국에서는 애플·페이스북·트위터 등 세계적인 IT 신생 기업이 등장했다. 그런데 한국에는 이런 경우가 희귀하다. 대기업들이 신생 중소기업을 사실상 하청화한 뒤 여기에서 나온 수익을 독점하면서 작고 젊은 기업의 창업과 성장이 차단되고 있기 때문이다. 한때 주목되었던 싸이월드나 이글루스가 SK커뮤니케이션즈로 들어갈 수밖에 없었듯이, ‘IT의 싹’은 채 성장하지도 못한 단계에서 짓밟힌다. 따라서 시장에는 활력이 없다. 안철수에 따르면 “가장 중요한 것은 대기업과 공공기관들이 중소·벤처 기업의 이익을 빼앗아가는 불공정한 산업 구조와 거래 관행의 문제”이다(〈서울경제신문〉 2010년 6월29일자). 이 같은 인식은 IT 부문에서 한국의 경제 시스템 전반으로 확장된다.

 

ⓒ아름다운 재단안철수는 대기업이 중소기업을 ‘착취’하는 구조로는 성장을 할 수 없다고 판단한다.

더욱이 대기업 모델은 한국 경제가 IT를 비롯해 ‘첨단 지식산업 중심’으로 고도화되는 데도 치명적 장애물일 수 있다. 예컨대 삼성전자 같은 대기업은, 총수의 절대적 리더십과 조직력 덕분에 특정 부문으로 대규모 자본을 신속하게 투자해 우수한 기계(하드웨어)를 개발하는 데는 능수능란하다. 스마트폰 부문에서 선두 주자 애플의 아이폰을 쫓아간 삼성 갤럭시의 기동력을 보라. 그러나 하드웨어보다 소프트웨어가 경쟁력의 원천인 IT 부문에서는 삼성이 애플을 이길 수 없다는 것이 안철수의 시각이다. 소프트웨어 같은 첨단 지식산업은 수많은 개인이 스스로의 개성과 아이디어를 발판으로 자유롭고 평등하게 협력할 때 발전할 수 있다고 한다. 그래서 중소기업을 수직 계열화해서 ‘착취’하는 대기업 모델로는 소프트웨어 산업의 발전이 불가능하다는 것이다.

〈대한민국은 안철수에게 무엇을 바라는가〉의 저자인 민경우 대안과미래 대표는 애플의 강점에 대해 이렇게 설명한다. “(애플이 개장한) 앱스토어에서는 애플리케이션(앱) 개발자가 자유롭게 자신의 노력으로 앱을 개발하여 이를 등록하고 수익을 올릴 수 있었다. 수익 구조도 개발자와 애플이 각각 7대3으로 나누어 갖는 구조였다. 애플이 보여준 것은 하드웨어가 아니라 소프트웨어, 기업 단위의 경쟁력이 아니라 기업·개발자·콘텐츠 제공자가 공생하는 생태계였다.”

안철수는 대기업의 고용 창출 능력에 대해서도 매우 회의적이다. 안철수는 박원순 서울시장(당시 희망제작소 이사)과 함께 나눈 좌담(〈시사IN〉 제92호)에서 “대기업의 고용 수준이 외환위기 이전에는 200만명이었다면 지금은 130만명에 불과하다. 중소기업이나 자영업 쪽에서 일자리를 만들려고 정부가 노력해야 한다”라고 말한 바 있다. 이런 점들을 감안하면, 안철수 경제 공약은 ‘(청년) 창업과 중소기업’을 중심으로 구성될 것으로 보인다. 산업정책인 동시에 고용 창출 정책이기도 하다. 이를 위해서는 시장 개혁, 즉 대기업과 중소기업 간 공정하고 투명한 거래를 보장해야 한다. 재벌 대기업에 대한 상당히 강도 높은 규제가 불가피하다는 의미다.

창업과 중소기업에 대한 강력한 지원도 필요하다. 구체적으로는 청년 창업에 대한 금융 지원, 첨단기술 개발·교육·훈련 등에 대한 재정 투입이 강화될 전망이다. 다른 한편 이렇게 형성된 ‘역동적 시장’에서 퇴출되는 인력을 위한 실업 지원과 재교육 시스템도 필요하다. 이런 측면에서 보면 안철수의 산업정책(창업 및 중소기업 지원)은 복지정책이기도 하다. 안철수가 아직 복지에 대해 따로 발언하지 않는 것은 그렇게 할 필요성을 느끼지 못하기 때문일 가능성이 높다.

 

ⓒ뉴시스박근혜(왼쪽 세 번째)는 최근 중소기업 상생과 함께 재벌 개혁까지 주장하고 있다.

 


박근혜:한국형 복지+시장개혁

이에 비해 박근혜는 복지정책을 명시적으로 공약하고 있다. 박근혜는 이미 2010년 말, ‘줄푸세’(세금은 줄이고, 규제는 풀고, 법질서는 세우자)를 폐기하고 한국형 복지국가 모델을 선언했다. 이른바 ‘우파의 선두 주자’로 간주되는 박근혜로서는 꽤 파격적인 ‘사상 전향’이다. 한국형 복지국가 모델의 원형은, 영국 노동당의 사회투자국가론이기 때문이다. 노무현 전 대통령의 열린우리당, 2009년 뉴 민주당 플랜 당시의 민주당, 현재 통합진보당을 이끌고 있는 유시민 전 보건복지부 장관 등이 내건 노선이기도 하다.

사회투자국가론의 핵심은 ‘인적 자본에 대한 투자’다. 예컨대 교육·보육·직업훈련 등에 대규모 재정을 투입해 훌륭한 ‘인적 자본’들을 육성함으로써 ‘실업의 뿌리’를 제거하겠다는 것이 기본 아이디어다. 그런데 이는 안철수의 창업 및 중소기업 지원제도에 함께 포함되어야 마땅한 사안이기도 하다.

‘한국형 복지국가’ 관련 공청회에서 박희태 국회의장은 “복지가 돈만으로 하는 것이 아니라는 것을 보여줬다”라고 박근혜를 칭송한 바 있다. 이는 무지의 소치다. 이 모델에도 엄청난 규모의 국가재정 투입이 불가피하다.

이에 더해 박근혜는 최근 재벌 개혁이나 경제 민주화까지 주장하고 있다. ‘국가의 시장 개입’을 헌법에 명문화(이른바 ‘경제 민주화 조항’)한 김종인 전 의원을 비대위원으로 영입한 것이 뚜렷한 징후다. 이 경제 민주화 조항은 특정 세력, 즉 재벌의 시장 지배 및 경제력 남용 방지를 주요 목표로 한다. 정승일 복지국가소사이어티 운영위원은 “김종인을 영입했다는 것은 박근혜가 이미 박정희식 국가 자본주의 노선에서는 벗어났다는 것을 의미한다”라고 말했다.

또한 박근혜는 1월3일 KBS 라디오 ‘정당대표 연설’ 등을 통해 ‘대·중소기업의 상생’ ‘성장에서 국민행복 증진으로의 경제 패러다임 전환’ ‘공정한 시장’ ‘기회 앞의 평등’ 따위를 공개적으로 언급하기도 했다. 이에 박근혜가 평소 강조해온 ‘과학기술 기반의 아이디어 상업화 및 창업’을 결합시키면, 안철수의 시장개혁론과 크게 다르지 않다. IT 및 중소기업 정책, 재벌 정책에서도 마찬가지다. 김종인 비대위원은 박근혜에게 독일의 메르켈 총리를 닮으라며 이렇게 말한 바 있다. “메르켈의 기민당이 사민당의 정책적 에센스를 확 다 받아버렸다. 그러니 오히려 사민당이 뭘 해서 차별화할지 모르게 됐다.”(〈시사IN〉 제168호)

지금 ‘2012 대승’을 벼르는 범야권에 이 같은 박근혜의 변화는 매우 불길한 징조다. 야권 성향의 지식인 중 일부는 “박근혜가 선점한 복지보다 경제 민주화(재벌 개혁)를 내세우자”라고 주장해왔다. 그런데 박근혜가 경제 민주화까지 주장하고 있으니 이제 어디로 달아날 것인가.

안철수와 박근혜에게는 부정적인 공통점도 있다. 이들은 한국 경제라는 배의 내부 수리에 대해서는 이런저런 방안을 제출했지만, 이 배가 놓일 항로에 대해서는 주목할 만한 주장을 한 적이 없다. 예컨대 한·미 FTA나 ‘금융자본주의의 세계적 위기’에 대해서는 특별한 분석이나 대응 방안을 내놓지 않고 있다.

한편 박근혜의 ‘한국적 복지’는 ‘시장 참여자를 위한 복지’에 머무를 가능성이 크다. 시장에 들어갈 수 있는 계층에게 혜택(교육·보육 등)이 집중되도록 설계되어 있다. ‘한국적 복지’의 원형인 사회투자국가론은 본고장 영국에서는 이미 실패한 것으로 평가되었다. 그런데 안철수 역시 이런 문제점에서 자유롭지 않다. 더욱이 안철수는 ‘IT 중심’ 및 ‘활력적인 시장’의 본고장인 미국이 세계에서 가장 불평등한 나라 중의 하나인 이유도 성찰할 필요가 있을 것이다.

 

기자명 이종태 기자 다른기사 보기 peeker@sisain.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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