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해성 그림

하루 시간 대부분을 보내는 학교에서 교우관계는 학생들에게 가장 어렵고 중요한 사회생활이다. 내가 담임을 맡고 있는 특수학급의 장애 학생들에게도 친구 사귀기가 중요한 문제다. 대부분 경도 지적장애를 가진 우리 반 학생들은 여느 청소년 못지않게 친구들과 어울리고 좋아하는 사람과 연애하고 싶어 한다. 하지만 상호 존중, 적절한 감정표현 같은 사회적 기술에 미숙해 원만한 교우관계 형성이 쉽지는 않다.

특수학급이 있는 많은 학교에서는 ‘또래 도우미’라는 제도를 운영한다. 장애 학생에게 호의적인 통합학급 학생을 도우미로 선정해, 장애 학생의 준비물을 챙겨주고 학교 적응을 돕도록 하는 제도다. 우리 반 학생들이 또래 도우미 학생과 지내는 모습을 보며, 장애 학생들이 어느 정도는 만족스러운 교우관계를 맺고 있다고 생각했다. 하지만 이 학생들은 여전히 친구가 없다고 외로움을 토로했다. 도우미 학생은 고마운 대상이지만, 일방적인 도움을 받는 관계는 편안한 친구와는 다르다고 느끼는 듯했다.

계속 시도해도 되는 안전한 공간, 학교

친구 대신 쉬는 시간마다 나를 찾는 학생도 있다. 친구의 빈자리를 계속 교사로 채울까 봐 점심시간에 다른 학생들과 어울리는 자리를 마련했다. 게임하고 대화하며 자연스레 가까워지는 학생이 생겼다. 마음을 놓으려던 차, 얼마 뒤 학생은 다시 ‘교사 껌딱지’로 돌아왔다. 이 학생은 자신의 외로움을 교사에게 털어놓고 위로받고자 하는 경향이 있다. 이 같은 모습을 친구에게 보였고, 의존적인 모습에 상대 학생이 부담을 느낀 것 같았다.

또 다른 학생은 표면적으로 장애가 단번에 드러나지 않는다. 이 학생은 처음에는 친구들과 잘 지내는 듯했지만 오래지 않아 친구들 사이에서 어울리기 힘든 친구가 되어 있곤 했다. 장애가 있다는 걸 바로 인식할 수 있는 학생은 조금 모난 모습을 보여도 다른 학생들에게 이해받는 경우가 있지만, 경계선 정도의 장애가 있어 함께 지내다 보니 미묘한 갈등이 생기는 학생은 또래들 사이에서 비교적 수용되기 어려운 듯했다.

처음에는 고군분투하는 아이들을 지켜보기 어려웠다. 좋아하는 친구에게 다가가려다 좌절해 슬퍼하거나, 특수학급에서 공들여 만든 작품과 간식을 몽땅 통합학급 학생에게 주고 빈손으로 돌아오는 아이들을 보며 마음 한구석이 쓰라렸다. 특수학급에서 비교적 잘 지내는 경우 차라리 특수학교에 가서 장애 학생들끼리 생활했더라면 고생이 없지 않았을지, 지금의 환경이 아이들에게 너무 힘든 건 아닌지 걱정스러웠다. 하지만 계속해서 친구에게 다가가려 하고, 나와 함께 연습한 사회적 기술을 실천하려는 학생들을 보며 의미 없는 시도는 없다고 느꼈다.

사실 아이들에겐 가장 편하고 친한 친구가 있다. 특수학급 학생들이다. 소수가 모인 특수학급에서도 엎치락뒤치락, 다투고 화해하고 절친해지는 등 계속 관계 변화가 있다. 통합학급 친구들에겐 자신의 좋은 모습만 보여주려 하지만, 특수학급에서는 내숭 없이 좀 더 솔직하다. 그러면서도 학생들은 친구가 없어 외롭다고 말한다. 학생들과의 대화를 종합해보면, 친구란 자신의 감정을 모두 이해하고 위로해주며 물질을 아낌없이 나누어주는, 상상의 존재다. 학생들은 사회적 기술에 미숙해서뿐만이 아니라 환상의 친구를 기다리기 때문에 현실의 친구를 만들기 어려운 거였다.

학생들은 특수학급에서 다투고 화해하는 과정을 통해 상대를 배려하고 자신의 감정은 스스로 돌보아야 함을, 친구는 먼 곳이 아니라 지금 옆에 있다는 걸 배워가고 있다. 동시에 학생들이 특수학급 밖에서 친구를 찾는 노력을 멈추지 않기를 바란다. 나는 학생들에게 친구를 만들어줄 수 없다. 다만 무엇이든 시도하고 때론 좌절해도 너무 힘들지 않도록 곁에서 지켜볼 뿐이다. 학교는 학생들이 계속 시도해도 되는 안전한 공간이 되었으면 한다. 지금의 분투가 당장 열매 맺지 않더라도 학생들이 미래에 얻을 결실의 씨앗이 될 것이다.

기자명 송은진 (경기도 안산시 선일중학교 특수교사) 다른기사 보기 editor@sisain.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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