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늬 아부지 뭐 하시노?” 지금은 많이 사라진, 예전에 학창 시절을 보낸 많은 사람들의 가슴에 생채기를 내기도 한 질문이다. 학교에서 선생님이 이런 질문을 던지고, 대답하고, 그 답을 통해 학생을 가늠하던 시절이 있었다.
이제 많은 것이 바뀌었다. 학기 초 학교가 거둬들이는 자기소개서에 더 이상 부모의 직장명, 부모의 학력, 가정형편을 묻는 문항 등이 존재하지 않는다. 학생에 대한 빠른 이해를 돕는다는 순기능이 있지만 선입견을 조장하는 폐해가 더 크다는 공감대가 형성된 지 오래다. 이제 고등학교에서 교사들은 학생을 상담할 때 기초생활수급자 지원, 장학금 지급을 위한 자료수집 등 특별한 경우가 아니라면 부모나 가정환경에 대해 묻지 않는다.
지금 학교에서 학생들을 평가할 때 사용하는 준거 자료는 거의 ‘양적 지표’만이 남았다. 특히 입시와 직결된 교육기관인 고등학교에서는 생활기록부상의 교과 성적, 수상 실적 같은 자료를 통해 학생을 파악하고 상담하고 지도한다. 객관적이고 깔끔한 지표를 갖고 학생 한 명 한 명 얼굴을 쳐다보면, 사실 그다지 잘 모르겠다. 나는 이들을 잘 파악하고 있는 것일까. 이들 각각의 특성을 파악해 최선의 조언과 지도를 할 수 있을까.
미성년인 10대 학생들은 예나 지금이나 다양한 방식으로 성장 중이며 저마다의 문제에 봉착한다. 단체 구기 대회나 합창 연습 과정에서 에너지를 얻고 자기효능감을 얻는 학생이 있는가 하면, 심도 있는 개별 활동을 할 때 놀라운 실력을 발휘하는 학생이 있다. 이런 특성들은 성적표에 드러나는 숫자와는 또 다른 차원의 교육적 수요다.
학생 수 감소도 학생이 스스로를 파악하고 성장시키는 데 어떤 영향을 미친다. 한 학급 인원이 40~50명이던 시절에는 사교성과 상관없이 최소 한두 명은 자신과 비슷한 성향의 학생을 만날 가능성이 훨씬 높았다. 남녀 합반에 20명이 넘을까 말까 한 요즘의 평범한 학급에서는 그것이 쉽지 않다. 기질과 성향이 비슷해서 편하게 일상을 공유할 수 있는 동성 친구를 학급에서 만나는 일은 가능성이 희박한 행운에 가까워졌다. 이런 상황에서, 학교 안에서 자기 기질에 대해 제대로 이해할 기회가 있다면, 그리고 그것을 이끌어내는 적절한 도구가 있다면 학생들이 겪는 어려움을 좀 더 잘 헤쳐나갈 수 있지 않을까.
여러 도구들이 있겠지만, 지금 대중적으로도 많이 쓰이는 MBTI도 교육 현장에서 잘 활용하면 좋지 않을까 싶다. MBTI는 정신분석학자 카를 구스타프 융의 ‘심리 유형’에 근거해 미국의 마이어스-브릭스 모녀가 1957년에 고안한 성격 유형 지표이다. 직관적으로 자신의 기질적 성향, 대인관계 양상 등을 파악하는 데에 도움을 받을 수 있다.
양적 지표만으로 학생 파악하는 게 답일까?
이를테면, MBTI 검사에서 외향형에 해당하는 ‘E’ 계통의 학생이라면 활동량이 많거나 참여자 수가 많은 학습 활동에서 높은 성취도를 보이고 행복감을 느낄 가능성이 크다. 내향형인 ‘I’ 계통의 학생은 반대로 소수 그룹이나 개인 활동에서, 순발력을 요하는 것보다는 진득하게 문제 해결을 해나가는 활동에서 성취가 높을 것이다. 이들 중 어느 한 가지에 지나치게 치우친 교육 활동이 이루어진다면 학생들의 적절한 성장과 자기 발견을 제대로 촉진하지 못할 것이다.
대부분의 10대가 하루의 가장 많은 시간을 보내는 곳은 학교이다. 그렇다면 많은 문제 해결의 실마리가 학교에 있다고도 할 수 있다. ‘가정환경 조사서’가 사라진 시대라고 해서 학생들의 개인적 맥락을 도외시한 채 양적 지표만으로 학생을 건조하게 파악하고 교육적 판단을 내려야 할까. “늬 아부지 뭐 하시노?”라는 다소 폭력적일 수 있는 질문을 대체할 수 있는, 객관적이고 효과적인 도구들이 많이 개발되고 활용되었으면 좋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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