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해성 그림

중학교 1학년 자유학년제 진로탐색 수업에서 ‘모둠에 기여하는 공기놀이’와 ‘아무도 상처받지 않는 비행기 날리기 놀이’를 해보았다. 공감과 배려, 협업, 문제해결 능력 등을 기르는 활동이다. 대개 비행기 날리기 게임은 가장 멀리 날리는 순서대로 1, 2, 3등 상을 주곤 한다. 하지만 나의 수업에서는 ‘누구도 지지 않고 누구도 패배감을 느끼지 않는 세상’에 대한 이야기를 하고 싶었다.

종이비행기를 접기 전에 먼저 ‘윈윈 게임’의 개념과 의미를 설명했다. 아이들은 잘 받아들이지 못했다. 현실 속에서는 승패가 냉혹하기에 모두 승자가 되는 ‘윈윈’이란 개념은 존재하기 어렵다고 주장한다. “약자를 조금 배려하여 모두가 게임을 즐기면 좋지 않을까요?”(그건 공정하지 않다고 한다.) “여러분이 약자가 될 수도 있잖아요?”(그래도 할 수 없다고 한다.) “그러니까 여러분은 비록 여러분 자신이 패자가 될지라도 공정한 승패를 원한다는 건가요?”(많은 학생들이 크게 고개를 끄덕인다.)

“자, 그럼 한번 손을 들어봅시다. 세상은 냉혹한 경쟁사회다, 인정!”(두 명을 뺀 스물한 명의 학생이 손을 든다.) “내가 패자가 되어도 좋으니 공정한 규칙이 있는 경쟁이라면 기꺼이 참여할 것이다?”(세 명을 빼고 모두 손을 든다.) “그러니까 여러분이 두려워하는 것은 패자가 되는 것보다 게임의 규칙이 불공정한 것이다?”(대부분 고개를 끄덕인다.) “…그럼 어쩔 수 없이 능력을 타고나지 못했거나 좋은 환경을 타고나지 못한 사람들은 어쩌죠?”(반박하는 이는 없지만 고집스러운 침묵이 교실을 감싼다.)

칠판으로 돌아와 몸이 허약한 동료를 수면으로 들어 올려 살리는 돌고래, 병약해 사냥을 하지 못하고 굶어 죽어가는 동료에게 먹이를 나누어주는 황금박쥐, 허들링으로 영하 50℃의 맹추위에 다 함께 살아남으려 애쓰는 황제펭귄들의 이야기를 들려주었다. 우리 인류 역시 동료 인간과 많은 대화를 나누고 약자를 배려하며 협동하면서 지내왔기에 아직까지 살아남을 수 있었다는 이야기도 덧붙인다. 그리고 우리 어린 시절의 놀이 문화에 대해서도 들려주었다.

“여러분 고무줄놀이 알죠? 만약 어떤 아이가 다리가 좀 불편해서 그 놀이를 하고 싶어도 할 수 없어요. 그럼 어떻게 하죠?”(냉정한 표정을 지으며 “다른 놀이를 해요”라고 말한다.) “그 아이와 함께하는 방법은 없을까요?(고개를 도리도리 흔든다.) “사실은 선생님이, 고무줄놀이를 무지 못하는 어린이였어요. 그런데 친구들이 ‘깍두기’를 시켜줬어요.”(몇몇이 “깍두기가 뭐예요?” 하고 묻는다.) “양쪽 팀에 다 끼워주는 거죠. 그 친구가 점수를 깎아먹어도, 팀에 해를 끼쳐도 공평하니까. 어때요?”(꽤 많은 아이들이 고개를 끄덕이고 한 아이가 큰 소리로 “그거 괜찮네요!”라고 말해준다.)

공정을 무너뜨리지 않고도 모두 승리하는 윈윈 게임

“깍두기는 못하는 친구만이 아니라 너무 월등하게 게임을 잘하는 친구가 되기도 했어요.”(그제야 진정 어린 감탄의 “오~!”) “여러분이 그토록 소중하게 생각하는 공정, 그거 무너뜨리지 않고도 모두가 승리하는, 아무도 슬프지 않은 그런 윈윈 게임이 충분히 가능하다고 선생님은 생각한답니다. 우리도 운동장에 나가 모두가 즐길 수 있는 게임 규칙을 멋지게 만들어봅시다.”(공정이고 나발이고 운동장에 나간다니 신난다고 모두들 “꺄~!”)

초여름 풀냄새를 맡으며 아이들은 비행기를 날린다. 그 모습은 공정한 패배를 수긍하는, 어리지만 냉엄한 교실의 그들과 달라 보였다. 물론 아이들이 찾아낸 규칙이라고 해봐야 ‘날리기만 하면 상품을 준다’ ‘모두가 모두와 팀이 되어 날린다’ 정도였고, 심지어 어떤 아이는 ‘웃어준다’고 써서 그야말로 나를 웃게 했을 뿐이지만 말이다. 이 경쟁의 세상에서 ‘게임은 공정했으나 내가 못나서 패배했노라’ 인정하고 등을 돌리기에 열네 살은 너무 어린 나이 아닌가? 깔깔대며 운동장을 뛰고 있지만 나의 소년들이 결코 행복해 보이지만은 않았다. 그날 햇살은 짙고, 그늘도 너무 짙었다.

기자명 안정선 (경희중학교 교사) 다른기사 보기 editor@sisain.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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