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월20일 미국 프로야구 메이저리그(MLB) 정규 경기가 서울 구로구 고척스카이돔에서 쿠팡플레이 주관으로 열렸다. ⓒ시사IN 신선영
3월20일 미국 프로야구 메이저리그(MLB) 정규 경기가 서울 구로구 고척스카이돔에서 쿠팡플레이 주관으로 열렸다. ⓒ시사IN 신선영

3월20일 오후 5시, 평일 낮임에도 서울 구로구 고척스카이돔 앞은 야구팬들로 인산인해를 이뤘다. 미국 프로야구 메이저리그(MLB) 소속 구단인 LA 다저스와 샌디에이고 파드리스의 2024 시즌 개막 경기를 보러 온 인파였다. 주한미군부터 일본인 관광객까지 관람객의 국적도 다양했다. 최소 12만원이라는 높은 티켓 가격에도 불구하고 예매 시작과 동시에 전석이 매진될 정도로 크게 주목을 끈 경기였다.

‘한국에서 열린 최초의 MLB 정규 시즌 경기’라는 상징적 이벤트를 주관한 곳은 쿠팡의 OTT인 쿠팡플레이였다. 쿠팡플레이는 2022년 토트넘 홋스퍼, 2023년 맨체스터 시티 방한 경기 등 굵직한 스포츠 이벤트를 주관해왔다. 티켓 예매부터 실시간 경기 시청까지 경기에 관련한 모든 서비스는 쿠팡 유료 멤버십 구독 회원에게만 독점 제공됐다. 쿠팡플레이 측은 이번 경기가 “쿠팡 와우회원을 위한 특별한 혜택”이라고 설명했다.

스포츠에 ‘진심’인 OTT는 쿠팡플레이만이 아니다. CJ ENM 자회사인 티빙(TVING) 역시 최근 스포츠 영역으로 발을 넓히고 있다. 올해부터 3년간 한국 프로야구(KBO) 온라인 중계권을 독점 계약한 것이 대표적 사례다. CJ ENM은 KBO 중계권 계약에 총 1350억원을 투자했다. 연평균 450억원으로, 네이버 등 기업들이 컨소시엄을 맺어 공동계약한 지난 계약보다 두 배 이상의 비용을 지불했다.

해외 OTT 역시 마찬가지다. 넷플릭스는 2025년부터 WWE 프로레슬링 로(RAW)를 10년간 독점 중계하는 데 6조7000억원가량을 투자했다. 경쟁자인 아마존 프라임비디오가 미국 프로풋볼(NFL) 목요일 경기를 독점 중계하는 등 스포츠를 통해 영향력을 넓혀가자 이를 견제하기 위해서다. 그 밖에도 애플TV가 미국 프로축구(MLS) 10년 독점 중계권에 약 3조2000억원을 투자하는 등, 글로벌 OTT 사이에서도 스포츠 중계권 경쟁이 점차 치열해지고 있다.

OTT들이 스포츠 중계권 확보에 열을 올리는 이유는 크게 두 가지다. 우선 OTT 입장에서 스포츠는 ‘가성비’ 콘텐츠, 즉 비용 대비 효율이 좋은 콘텐츠다. 넷플릭스의 〈오징어 게임〉 등 OTT가 직접 제작해 독점 공급하는 오리지널 콘텐츠는 코로나19 팬데믹 시기 OTT의 핵심 성장동력 역할을 했다. ‘킬러 콘텐츠’ 하나를 내놓으면 대중은 그 콘텐츠를 보기 위해 OTT에 가입했다. OTT 기업들은 구독자를 끌어모으기 위해 오리지널 콘텐츠에 투자를 아끼지 않았다.

문제는 OTT 시장에 참여하는 기업이 많아질수록 품질 경쟁이 더욱 심해지고, 그에 따라 제작비용도 급격히 증가했다는 사실이다. 2011년 평균 1억원 수준이던 드라마 한 회당 제작비용은 2023년 10억원으로 증가했다. OTT의 역량을 집중한 ‘대작’ 콘텐츠에는 수백억 원을 호가하는 제작비용이 투입되기도 했다.

3월12일 티빙(TVING) 최주희 대표가 KBO 리그 중계 서비스에 대해 설명하고 있다.  ⓒ티빙 제공
3월12일 티빙(TVING) 최주희 대표가 KBO 리그 중계 서비스에 대해 설명하고 있다. ⓒ티빙 제공

비일상에서 일상으로의 전환

더군다나 폭발적인 성장기가 끝나가자 OTT 기업들은 수익 창출 능력을 증명하라고 요구받기 시작했다. 그동안 모은 사람들의 관심을 수익으로 전환해야 하는 과제가 주어진 것이다. OTT 기업들은 구독 계정 공유를 제한하고, 구독 가격을 올리는 등 수익성을 개선하려 했지만 이는 한계가 있었다. 비용이 높아진 만큼 이탈하는 구독자도 늘었기 때문이다. 결국 OTT 기업들은 비용 절감을 도모할 수밖에 없었다. 높은 비용이 수반되는 오리지널 콘텐츠를 일부 대체할 만한 가성비 콘텐츠의 필요성이 점차 커진 것이다.

이러한 상황에서 스포츠는 OTT 기업에게 매력적인 선택지다. 투자 금액으로만 보면 상당한 액수가 들어가는 듯하지만, 비교적 오랜 기간 관심을 묶어둘 수 있는 프로스포츠 특성상 비용 대비 효과가 뛰어나다. 일례로 티빙의 KBO 중계권 가격은 연평균 450억원이나 되지만, 봄부터 가을까지 시청자를 꾸준히 확보할 것으로 기대되기에 합리적 투자라고 여겨진다. 티빙의 기존 오리지널 콘텐츠는 제작 비용이 300억~400억원을 호가한 반면 콘텐츠에 대한 관심은 길어야 한두 달을 넘기지 못했기 때문이다.

또한 스포츠 중계는 비교적 결과 예측이 확실하다는 장점도 있다. 높은 비용을 들여 오리지널 콘텐츠를 제작하더라도, 해당 콘텐츠가 대중의 관심을 끌 수 있을지는 불확실하다. 기대작으로 여겨졌다가도 대중에게 외면받는 경우는 많다. 하지만 프로스포츠는 팬들의 충성도가 매우 높아 수요예측이 용이하다. 작년에 프로스포츠를 열심히 본 팬이라면, 올해도 열성 시청자가 될 확률이 매우 높다. 따라서 투자를 앞둔 기업 처지에서 비용과 효과를 면밀히 계산해 결정하는 것이 가능하다.

스포츠에 대한 OTT의 투자를 비교적 더 큰 흐름 속에서 보는 시각도 있다. 이성민 한국방송통신대학교 미디어영상학과 교수는 “비일상에서 일상으로의 전환”이라는 관점으로 이를 설명한다. 그동안 OTT는 ‘비일상적 시간’에서 대중을 공략했다. 매일 콘텐츠를 챙겨 보는 것이 아니라, 보고 싶은 콘텐츠가 생기면 날을 잡아 몰아서 보는 방식이다. 이러한 전략에서 OTT가 경쟁하는 상대는 영화였다. 영화관에 찾아가 밀도 있게 콘텐츠를 소비하던 대중이 자기가 편한 공간에서 OTT를 소비하는 구독자로 변모한 것이다.

그런데 시간이 지나며 이 전략은 한계를 노출했다. 자신의 시간을 집중 투입할 만한 매력적인 콘텐츠가 없다고 느끼면 구독자는 언제든 구독을 취소해버렸다. 특히 일단 사람을 많이 모아두고, 그에 기반해 수익 창출 방법을 찾아야 하는 플랫폼 사업의 특성상 비일상 공략만으로는 지속가능성에 의문이 생겼다. 따라서 OTT는 전략을 바꿔 대중의 ‘일상적 시간’을 공략하기 시작했다. 한 번에 몰아서 보는 콘텐츠보다는, 오랜 기간 지속적으로 시청자를 모으는 방식을 택한 것이다. 경쟁 측면에서 보자면 이제껏 TV가 담당하던 영역에 본격적으로 진출하고 있다고 볼 수도 있다.

시청자의 일상을 공략한다는 전략하에서 스포츠는 매우 매력적인 상품이다. 최소 매주 한 번씩 돌아오는 스포츠 중계는 오랜 기간 지속적으로 시청자를 확보하는 수단이 되어준다. 물론 시청자의 일상을 공략하기 위한 방법이 스포츠뿐만은 아니다. 매주 새로 공개되는 예능 프로그램, 광고를 시청하는 대신 무료로 여러 TV 채널을 실시간 시청할 수 있는 패스트(FAST·Free, Ad-supported Streaming TV) 서비스 역시 OTT 기업들의 새로운 전략으로 채택되고 있다. 콘텐츠 유형은 다르지만 시청자들이 OTT를 일상적으로 찾아오게끔 만든다는 점에서는 같다. 이성민 교수는 “OTT 경쟁에서 격변의 시기는 이미 마무리됐다. 이제는 남은 영역을 조금씩 잠식해나가는 진지전이라고 할 수 있다. 일상적 리듬에 누가 더 효과적으로 녹아들어갈 것인지, 진짜 싸움이 시작된 셈이다”라고 말했다.

기자명 주하은 기자 다른기사 보기 kil@sisain.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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