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BS 다큐멘터리 〈초저출생〉에 출연한 조앤 윌리엄스 미국 캘리포니아 법대 명예교수가 한국 합계출산율을 듣고 놀라고 있다. ⓒEBS 다큐멘터리 화면 캡처
EBS 다큐멘터리 〈초저출생〉에 출연한 조앤 윌리엄스 미국 캘리포니아 법과대학 명예교수가 한국 합계출산율을 듣고 놀라고 있다. ⓒEBS 다큐멘터리 화면 캡처

2024년 합계출산율은 0.68명을 기록할 전망이다. 2022년 0.78명으로 처음 0.7명대에 진입했고 2023년 0.72명으로 낮아진 데 이어 이제 0.7명대 밑으로 떨어졌다. 한국 출산율을 두고 로스 다우섯 〈뉴욕타임스〉 칼럼니스트는 “14세기에 유럽을 덮친 흑사병이 몰고 온 인구 감소를 능가하는 결과”라고 평했다. 최근 일본 경제지 〈머니1〉이 한국 경제의 저성장 추세를 언급하며 ‘한국은 끝났다’라는 제목의 기사를 내기도 했다. 한국 출산율을 들은 미국 대학 교수가 “대한민국 완전히 망했네요. 와!”라며 양손으로 머리를 부여잡는 EBS 다큐멘터리의 한 장면은 인터넷 ‘밈’이 된 지 오래다. 그리하여, 한국은 정말 끝났는가.

이 질문에 답하려면 합계출산율 0.7명의 의미를 알아야 한다. 임신할 수 있는 여성 한 명이 평생 낳을 것으로 기대되는 아이의 수가 0.7명이란 뜻이다. 가임여성 100명이 있다면 이들이 아이를 70명 낳으리라고 예측된다. 태어난 아이 중 여성은 절반인 35명쯤 될 것이다. 이 35명이 다음 세대에 아이를 낳는다면, 그 수는 25명이 채 안 된다(35×0.7=24.5). 그런데 여성이 아이를 낳으려면 남성이 필요하다. 즉, 애초의 인구는 100명이 아니라 200명이다. 합계출산율이 0.7명 이하라는 건, 불과 두 세대 만에 200명이 25명 이하로 줄어든다는 의미다.

한국의 인구는 이미 2020년 5184만명으로 정점을 찍고 감소 중이다. 통계청은 한국 인구가 약 50년 뒤인 2072년에는 70% 수준인 3622만명으로 쪼그라들 거라고 본다. 그나마도 합계출산율이 2030년 0.82명, 2050년 1.08명으로 반등한다는 가정하에서다. 물론 몇 년 안에 출산율이 솟아오른다고 볼 근거는 희박하다. 2022년 서울의 합계출산율은 0.59명이었다.

이에 대해 ‘인구가 줄어드는 게 꼭 문제는 아니다’라는 시각도 존재한다. 기후위기의 심각성을 고려하면 차라리 인간이 덜 태어나는 게 낫지 않으냐는 논리다. 가뜩이나 좁은 땅덩어리에서 한정된 일자리와 주택을 놓고 경쟁하는 만큼, 인구가 감소하면 오히려 모두의 ‘숨통’이 트일지도 모른다. 줄어든 노동자들은 회사와 임금협상을 할 때도 우위를 점할 수 있을 것이다.

“큰 착각이다.” 인구학자인 이상림 한국보건사회연구원 인구모니터링센터장이 고개를 저었다. “의외로 많은 분들이 지금의 한국 사회 그대로 ‘사람 수’만 줄어드는 게 인구 감소라고 생각한다. 그래서 인구 감소가 나쁘지 않거나 적어도 자기 삶에 별 영향을 주지 않으리라 여긴다. 그러나 저출생과 고령화는 하나의 사건이다. 젊은 사람이 줄고 늙은 사람이 늘어나면서 인구가 줄어들기 때문에 문제가 되는 것이다.” 통계청 장래인구추계를 보면, 2022년 3674만명이던 생산연령인구(15~64세)는 50년 뒤인 2072년 1658만명으로 줄어든다. 반면 같은 기간 65세 이상 고령인구는 898만명에서 1727만명으로 늘어나 생산연령인구를 추월한다. 인구수가 줄어들 뿐만 아니라 구성 자체가 질적으로 달라진다(〈그림 1〉 참조).

이러면 무슨 일이 일어날까. “단적 예시를 하나 들면, 피가 모자라진다. 고령화에 따라 혈액 수요는 느는데 헌혈할 사람이 없어서다. 그뿐인가. 한국 군대는 아이들이 한 해 70만~80만명 태어날 때를 기준으로 만들어졌다. 지금 태어나는 아이들이 1년에 25만명이 안 된다. 수도권 대학과 지방 국립대 정원이 26만명인데. 이미 2020년부터 지방대 미달 사태가 시작됐다. 사회 전체적으로 고통스러운 적응이 필요하고 그 과정은 엄청난 갈등을 수반할 수밖에 없다. 자칫하면 공동체가 붕괴될 수도 있다(이상림 센터장).”

2023년 12월19일 서울 탑골공원 인근 무료 급식소 주변에서 기다리는 노인들. ⓒ시사IN 신선영
2023년 12월19일 서울 탑골공원 인근 무료 급식소 주변에서 기다리는 노인들. ⓒ시사IN 신선영

저출생이 한국만의 현상은 아니다. 아프리카 국가들이나 인도는 아이를 많이 낳지만, 선진국으로 갈수록 저출생 고령화를 겪는다. 한국도 선진국에 진입했으니 어쩔 수 없는 현상 아닌가? 이에 대해 이상림 센터장은 “저출생을 겪는다는 선진국들의 합계출산율이 1.3~1.5명이다. 한국 수준의 출산율은 독일 통일 직후 동독에서 잠깐 나타난 적 있을 뿐 세계적으로 거의 유례가 없다(2021년 0.77명을 기록한 홍콩을 제외하면 한국이 세계 최저다. 홍콩은 인구가 1000만이 안 된다). 무엇보다 속도 면에서 질적으로 다르다. 이 정도 수치면 ‘멸종위기’라 보고, 아이가 조금이라도 더 태어나도록 지금 할 수 있는 일을 해야 한다. 그래야 미래세대가 산다”라고 말했다.

한국은행이 밝힌 한국 저출생의 원인

낮아지면서도 매해 등락을 거듭하던 한국의 출산율은 2015년 1.24명을 기점으로 급전직하 중이다. 도대체 지난 10여 년간 한국에서 무슨 일이 있었던 걸까? 결혼과 출산에 관해 연구자들이 제시한 가설이 몇 있다. 예컨대 미국의 경제학자 리처드 이스털린에 따르면, 부모 세대보다 상대적으로 풍요로움을 누리는 청년세대는 자녀를 많이 가지며, 그렇지 못하면 결혼과 출산을 미루거나 기피한다. 특히 일자리 경쟁이 심해지면 그렇게 한다.

2023년 11월 한국은행이 펴낸 〈경제전망 보고서〉는 위 가설이 한국의 저출생을 상당 부분 설명함을 입증했다. 먼저 한국 청년층(15~29세)의 비정규직 비중은 2003년 31.8%에서 2022년 41.4%로 증가했다. 비정규직 대비 정규직의 월평균 임금수준은 2004년 1.5배에서 2023년 1.9배로 늘었고, 대기업-중소기업 간 임금격차(제조업)도 2000년 1.5배에서 2022년 1.9배로 확대됐다. 비정규직으로 입사했다가 1년 뒤 정규직이 되었다고 응답한 비율은 2006년에는 11.7%였으나 2021년에는 3.7%로 급감했다. 중소기업 입사 1년 뒤 대기업으로 ‘점프’한 비율도 2006년 5.3%에서 2021년 3.3%로 하락했다. 지난 20년간 비정규직의 비중은 늘고 정규직-비정규직, 대기업-중소기업 간 격차가 확대됐으며 이동성은 낮아졌다는 얘기다. 그 결과 대기업 정규직 같은 ‘양질의 일자리’를 둘러싼 경쟁이 심화됐다.

노동시장의 이 같은 변화는 결혼과 출산에 직접적 영향을 미친 것으로 보인다. 한국은행이 한국갤럽에 의뢰해 청년층 2000명을 대상으로 2022년 9월 실시한 설문조사 결과, ‘장래에 결혼할 의향이 있다’는 응답은 취업자(49.4%)가 비취업자(38.4%)보다 높았다. 취업을 했더라도 비정규직인 경우에는 결혼 의향이 있는 비율이 36.6%로 비취업자보다도 오히려 더 낮게 나타났다. 반면 공공기관 직원 또는 공무원의 결혼 의향은 58.5%로 높았다(〈그림 2〉 참조). 한국은행이 2020년 '한국노동패널조사' 원자료를 분석한 결과, 20~30대 남성의 경우 소득이 낮을수록 미혼율이 높아지는 경향이 뚜렷했다(〈그림 3〉 참조). 여기서 남녀 차이가 나는 이유는 해당 출생연도의 성비상 남성이 더 많기 때문으로 보인다.

“물론 나이가 어린 사람이 소득이 낮아서 결혼을 하지 않았을 수도 있지만, 다른 연구를 보면 그런 효과를 고려하더라도 남성은 소득이 낮을수록 결혼 확률이 떨어진다.” 보고서 중 인구 파트를 총괄한 황인도 한국은행 경제연구원 거시경제연구실장(경제학 박사)이 설명했다. “결혼이라는 게 예전에는 생애주기의 당연한 한 과정이었다면 지금은 하나의 큰 장벽이 됐다는 의미다. 자신의 취업 상태나 고용 신분에 따라, 어떤 청년들에게는 출산 이전에 결혼조차도 가질 수 없는 꿈이 되어버린 것이다.” 황인도 실장은 이 말을 하며 잠시 눈물을 보이기도 했다.

한국에선 대부분의 출산이 결혼을 통해 이뤄진다. 혼인 외 출생아 비중이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평균은 42%(2020년)에 달하는 데 비해 한국은 3.9%(2022년)에 불과하다. 혼인 감소가 저출생으로 직결되는 이유다. 결혼과 출산을 결정하는 핵심 요인은 경쟁 압력이다. 앞서의 한국갤럽 조사에서 ‘남들보다 뒤처질까 봐 불안한 마음이 든다’ 등 경쟁 압력을 강하게 체감한다고 응답한 청년일수록 희망하는 자녀 수가 유의미하게 적었다. 경쟁 압력과 밀접한 관련이 있는 또 하나의 변수가 인구밀도다. 미국 심리학자 올리버 승이 동료들과 한 연구를 보면, 인구밀도가 높은 국가 또는 지역에 거주할수록 결혼을 늦게 하고 아이도 적게 낳았다. 한국 16개 시·도별 패널자료 분석 결과 인구밀도가 높고, 아파트 전세 가격이 비싼 지역일수록 합계출산율이 낮아지는 관계가 유의하게 관찰되었다. 한국은행 보고서는 이를 바탕으로 한국 저출생의 원인이 높은 ‘경쟁 압력’과 고용·주거·양육 측면의 ‘불안’이라고 짚었다.

남산 전망대에서 바라본 서울의 아파트 풍경. ⓒ시사IN 신선영
남산 전망대에서 바라본 서울의 아파트 풍경. ⓒ시사IN 신선영

하루이틀 제기된 문제는 아니다. 이를 해결하기 위해 그동안 저출생 관련 예산도 많이 쏟아부었다고 알려진다. 그런데 데이터를 보면 이는 사실이 아니다. 한국의 GDP 대비 가족 관련 정부지출 규모는 1.4%로 OECD 34개국 평균(2.2%)에 크게 못 미친다. 한국의 법정 육아휴직 기간은 52주로 OECD 평균(69.4주)보다 크게 짧지는 않지만, 신생아 한 명당 이용률이 19.8%로 OECD 평균(88.4%)보다 형편없이 낮다. 육아휴직을 쓸 수 있는 부모 중 실제로 이용하는 이들의 비율은 2021년 기준 여성이 65.2%, 남성이 4.1%에 불과하다. 300인 이상 대기업에서 출산한 여성의 76.6%가 육아휴직을 이용하는 반면 5인 미만 기업에선 1.3%로 이용률이 미미하다. 결과적으로 한국의 실제 육아휴직 이용 기간은 OECD 평균(61.4주)의 6분의 1인 10.3주에 그친다.

‘이탈리아로 가는 길’ 위에 서다

한국은행 분석에 따르면, 만약 한국이 GDP 대비 가족 관련 정부지출을 OECD 평균 수준으로 늘릴 경우 출산율이 0.055명 증가한다. 대체인력을 구하기 어려운 중소기업을 지원하거나 남성 육아휴직을 장려하는 등의 방법으로 육아휴직 실이용 기간을 OECD 평균 수준으로 늘리면, 출산율은 0.096명만큼 높아진다. 노동시장 격차가 완화되어 한국 청년층 고용률(15~39세, 58.0%)이 OECD 평균(66.6%) 수준으로 올라서면, 출산율은 0.119명 상승한다. 비혼 가정에서 태어난 아이도 차별 없이 지원하는 등으로 한국 혼외 출산 비중을 OECD 평균 수준으로 높이면 출산율은 0.159명 추가 상승할 것으로 전망된다. 한국 인구밀도는 OECD 평균의 4배 수준이고, 도시에 사는 인구 비중이 81%로 매우 높다. 만약 한국의 도시인구 집중도가 OECD 평균 수준으로 하락하면, 출산율은 무려 0.414명 더 높아진다.

꿈같은 얘기일까. “방법이 없는 게 아니다”라고 도시계획학자 마강래 중앙대 교수는 말한다. 그가 주목하는 건 한국 인구의 약 3분의 1인 1700만명에 달하는 ‘1·2차 베이비부머 세대(1955~1974년생)’다. “수도권에 거주하는 베이비부머가 805만명이다. 이 가운데 440만명 정도(약 55%)가 지방에서 태어났다. 이 중 10%인 44만명만 고향으로 내려가도 굉장히 많은 게 달라진다. 베이비부머 세대는 주택 소유 비율이 60% 안팎으로 높다. 이들이 지방으로 내려갈 때 일부는 집을 팔고 일부는 세를 놓을 텐데, 이러면 수도권 외곽에 주택을 공급하는 것보다 오히려 수도권의 인구밀도와 집값 상승 압력을 줄여줄 수 있다. 그뿐 아니다. 소멸 위기에 처한 지방정부는 인프라를 유지하기 위해 필요한 최소한의 인구를 확보할 수 있다. 귀향한 베이비부머를 잘 활용하면 지방 중소기업의 인력난도 완화된다. 한국 사회에서 ‘잉여적 존재’가 될 가능성이 높은 3자(베이비부머, 지방 소도시, 지방 중소기업)가 ‘윈윈’할 수 있다. 나아가 베이비부머와 청년이 갈등을 넘어 상생할 수 있는 모델이다. 물론 이를 위해선 중앙·지방정부가 전폭적으로 지원해야 한다.” 그가 이런 문제의식을 담아 2019년 펴낸 책의 제목은 〈베이비부머가 떠나야 모두가 산다〉이다.

서울의 한 대학 캠퍼스 안에 기업들이 내건 신입사원 채용 현수막. ⓒ시사IN 신선영
서울의 한 대학 캠퍼스 안에 기업들이 내건 신입사원 채용 현수막. ⓒ시사IN 신선영

“인구문제는 그 어떤 사회문제보다도 더 심각한 문제다.” 2024년 한국에서 쓰인 문장이 아니다. 지금으로부터 1세기 가까이 전인 1934년, 스웨덴의 경제학자 군나르 뮈르달과 그의 아내인 사회학자 알바 뮈르달이 함께 쓴 〈인구 위기〉에 나오는 말이다. 당시 스웨덴 출산율은 1.74명(1935년)으로 유럽 최저 수준이었다. 보수는 피임 제한을 주장하고 진보는 인구 위기의 심각성을 인정하지 않던 사회 분위기에서, 뮈르달 부부는 스웨덴 민중의 생활 실태부터 분석한다. 스웨덴 시민들이 과밀하고 열악한 주거 환경과 높은 실업률로 고통받고 있으며, 생활수준을 높이기 위해 자발적으로 무자녀를 선택한다는 것이다. “출산율의 감소가 생활수준의 향상을 위한 욕구를 충족시키기 위한 것이라면, 우리 국민들에게 생활수준의 향상을 포기하고 출산율을 높이거나 아니면 현상 유지만이라도 하라고 설득하는 것은 불가능하다.”

뮈르달 부부의 결론은 출산 강제가 아니었다. “자녀를 가짐으로써 드는 비용을 줄여야만 한다. 이는 가족의 지속적인 생활 향상을 위한 노력에 자녀가 방해가 되기 때문이다.” 특히 “여성들이 사회생활을 하는 데 자녀가 방해 요인이 되지 않도록 해야 한다.” 아동수당, 무상교육, 유급 출산휴가 등 지금은 당연하게 여겨지는 복지 정책들은 뮈르달 부부의 제안에 크게 영향을 받은 것으로 알려진다. 이후 스웨덴 출산율은 반등했고 2명 안팎 수준을 2010년까지 유지했다. 최근엔 떨어지긴 했지만 2021년 1.67명으로 여전히 한국 출산율의 두 배가 넘는다. 1993년 출산율 1.65명으로 저점을 찍은 프랑스의 경우 공공 보육서비스뿐 아니라 혼외 출생아를 포괄하는 가족복지 정책으로 잘 알려져 있다. 2021년 출산율이 1.80명으로 유럽 국가 중 가장 높은 프랑스의 혼외 출생아 비율은 60%를 넘는다.

“각 나라들은 어떤 식으로든 대응했다. 스웨덴은 노사정 대타협으로 노동시장 제도를 뜯어고쳤고, 프랑스는 국가가 전면에 나서서 다양한 가족 형태를 장려했다. 아예 미국처럼 이민을 받아 인구 위기를 해결하는 나라도 있다. 가장 최악은 아무것도 하지 않는 것이다. 한국은 어떤가. 뭔가 바뀌어야 된다고는 다들 생각하지만, 어느덧 ‘체제 전환을 위한 의사결정을 내릴 수 없는 사회’가 됐다. 연금, 건강보험, 재정 등 거의 모든 의제에서 그러하다. ‘부작위의 위기’다.” 책 〈이탈리아로 가는 길〉을 쓴 조귀동 작가의 말이다.

2022년 9월23일 스웨덴의 한 초등학교. 학교 놀이터에서 어린이들이 놀고 있다. ⓒ시사IN 김연희
2022년 9월23일 스웨덴의 한 초등학교. 학교 놀이터에서 어린이들이 놀고 있다. ⓒ시사IN 김연희

그래서 한국은 어디로 가고 있는가? 앞선 책이 내린 진단은 다음과 같다. “오랫동안 한국 사회의 바람직한 모델은 미국 또는 스웨덴이었다. 보수는 미국식 시장경제를 본받아야 할 모델로 삼아왔고, 진보는 북유럽 사민주의의 요소를 도입해야 한다고 주장해왔다. 그 가운데 현실적인 타협안으로서의 모델은 독일 정도에 가까웠다. 하지만 이탈리아의 길을 따라갈 가능성이 현재로서는 가장 높아 보인다.”

이탈리아의 출산율은 2021년 1.25명으로 유럽 최하위권이다. 책에 따르면, 이탈리아는 한국처럼 제조업 비율이 높으면서 대-중소기업, 정규-비정규직 격차가 큰 노동시장 이중구조를 갖고 있으며, 이것이 복지 혜택의 격차로도 이어진다. 여성의 노동시장 참여율이 낮은 것도 한국과 비슷하다. 부유한 북부와 가난한 남부 간 갈등의 골도 깊다. 사회경제적 변화에 대응해 집단적 의사결정을 내려야 할 기존 정당들은 지지부진하며 별다른 정책을 내놓지 못하다가, 1994년 검찰의 대규모 정치권 수사로 무너졌다. 그 빈자리를 우파 포퓰리즘 정당들이 대체했다.

조귀동 작가는 이것이 한국의 미래 시나리오가 될 수도 있다고 말한다. 정치가 먹고사는 문제를 해결하지 못하고 겉도는 가운데, 포퓰리스트 정치인이 나타나 기존 정당을 대체할 가능성이 있다는 것이다. 이는 부분적으로는 한국이 선진국에 진입한 결과이기도 하다. 예컨대 더불어민주당의 지지 연합은 대도시 상위 중산층과 호남 출신 저소득층으로 이뤄져 있는데, 경제가 발전하고 불평등이 심화하면서 이 둘의 이해관계가 더 이상 일치하기 어려워졌다고 조귀동 작가는 본다. 반면 보수는 산업화 담론 이후 인물과 조직, 이데올로기의 진공상태에 빠져 있다.

14세기 흑사병이 유럽을 덮친 결과 인구 3분의 1이 줄었다. 분명 비극이었지만 결과적으로 노동력이 줄면서 농노의 협상력이 올라갔고, 봉건질서가 해체되는 방향으로 역사가 움직였다. 살아남은 인구의 삶의 질도 개선됐다. 지금의 인구감소가 그런 결말로 귀결될지는 불분명하다. 한국은행은 저출생 고령화에 대한 효과적인 대응이 없을 경우 한국의 경제성장률이 2050년대에 0% 이하를 보일 확률이 68%라고 예측했다.

대응은 가능하다, 뭔가를 제대로 한다면

흑사병이 외부로부터 주어진 일종의 자연재난이었다면, 지금의 초저출생은 그렇지 않다. 한국의 경우 여성 고용률을 높일 여지가 크다. 앞으로의 노인은 더 건강하고 학력도 높을 것이다. 기존 장래인구추계가 외국인 순유입 규모를 과소평가하는 측면도 있다. 기술 발전이 필요 노동력 규모를 줄이리라는 전망도 나온다. 이를 고려하면 앞으로 15~20년 정도는 지금 노동력의 90~95% 이상은 유지할 수 있고, 따라서 아직 대응할 시간이 있다고 인구경제학자 이철희 서울대 교수는 말한다. 물론 뭔가를 한다는 전제하에서다. 그의 말이다.

“아이를 낳았을 때 비용 대부분을 부모가 부담하지만, 그 아이가 자라나서 사회 구성원으로서 일하고 세금을 내며 사회보험 재정과 경제성장을 유지시킨다. 출산과 육아의 편익은 부모가 온전히 가져가지 않고 그 공동체가 누린다. 그래서 출산은 그냥 놔두면 사회적으로 적게 공급될 우려가 있는 일종의 공공재다. 사회가 최소한의 자원을 투입할 필요가 있다. 지금까지는 직접적 육아휴직 확대 등 당장 성과가 날 만한 일에 집중해왔고 그마저 중소기업이나 비정규직에게는 효과가 미치지 못했다. 새해에는 노동시장 격차 축소 같은, 어렵고 오래 걸리지만 중장기적으로 성과가 나올 수 있는 일에 대해 청사진을 내놓고 한 걸음을 내딛는 원년이 되길 바란다.”

기자명 전혜원 기자 다른기사 보기 woni@sisain.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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