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기도 성남시 가천대학교 글로벌 캠퍼스에 위치한 ‘신변종 감염병 mRNA 백신 사업단(KmVAC)’.  ⓒ시사IN 박미소
경기도 성남시 가천대학교 글로벌 캠퍼스에 위치한 ‘신변종 감염병 mRNA 백신 사업단(KmVAC)’. ⓒ시사IN 박미소

‘신·변종 감염병 mRNA 백신 사업단’이 조기 해산된다. mRNA 백신은 코로나19 유행에서 인류를 지킨 가장 큰 혁신 기술이다. 빠른 속도로 개발이 완료돼 전 세계로 보급된 모더나와 화이자의 코로나19 백신 모두 mRNA 백신이었다.

팬데믹을 거치며 mRNA 백신 기술의 중요성이 대두되자 정부는 민관 협력으로 ‘신·변종 감염병 mRNA 백신 사업단(이하 mRNA 사업단)’을 꾸렸다. 2022년 1월 출범해 2023년까지 2년간 1단계, 2024년부터 2025년까지 2년간 2단계 연구를 진행하는 구조로 사업단 계획이 세워졌다. 국고에서 총 688억원, 민간에서 212억원을 투자해 신종·변종 감염병 발생 시 신속하게 대응할 수 있는 mRNA 백신 플랫폼을 확보하는 것이 목표였다.

〈시사IN〉 취재 결과, mRNA 사업단은 당초 계획과 달리 2단계 사업에 착수하지 않고 1단계에서 조기 종료되는 것으로 확인됐다. 2024년도 정부 예산이 책정되지 않았기 때문이다. 보건복지부는 〈시사IN〉의 문의에 “올해 후속 작업으로 2기 사업을 준비하였지만 과기부(과학기술정보통신부) 및 기재부(기획재정부) 예산 심의 단계에서 받아들여지지 않아 2023년을 끝으로 종료되었다”라고 그 이유를 밝혔다.

진행 과정을 알고 있는 한 인사는 저간의 사정을 이렇게 전했다. “일단 종료되는 사업들은 그게 최종 완료이건 단계별 진행이건 다 정리하라는 지침이 기재부에서 내려왔다고 한다. 그 와중에 mRNA 사업도 떠내려간 것이다. 복지부에서는 2단계까지 해야 한다고 의견을 냈는데 기재부에서 ‘노(No)’ 했다고 들었다.”

2024년도 정부 연구·개발(R&D) 예산은 2023년도와 비교해 무려 16.7%가 삭감돼 파장을 불러왔다. 국가 R&D 예산이 줄어든 건 1991년 이후 처음이다. ‘mRNA 사업단’과 비슷한 시기에 출범한 ‘글로벌백신기술선도사업단’도 예산이 큰 폭으로 깎였다. 올해 약 277억원이었던 예산은 80%(약 226억원)가 삭감돼 51억900만원으로 편성되었다. 사실상 사업을 이어가기 어려운 수준이다.

mRNA 백신은 코로나19 유행에서 인류를 지킨 가장 큰 혁신 기술이다. ⓒ시사IN 이명익
mRNA 백신은 코로나19 유행에서 인류를 지킨 가장 큰 혁신 기술이다. ⓒ시사IN 이명익

국내 mRNA 백신 연구와 업계에도 혼란이 뒤따를 것으로 예상된다. 한국의 mRNA 백신 기술은 토양이 그리 두텁지 못하다. 코로나19 이전까지 mRNA 백신을 연구하던 국내 전문가는 손에 꼽혔다. mRNA 사업단은 바이오 벤처, 제약사, 대학 연구팀 등 26개 팀과 9개 프로젝트를 진행해왔다. 사업이 1단계에서 종료된다면 자리를 잡기 시작한 프로젝트 상당수가 미완에 그치게 된다.

mRNA 백신 기술은 첨단 바이오 키워드 1번으로 꼽힌다. 올해 노벨 생리의학상은 이 분야 연구자들에게 돌아갔다. 커털린 커리코 박사는 화이자의 투자를 받아 mRNA 백신 기술로 코로나19 백신 개발을 성공시킨 독일 기업 바이오엔테크의 수석 부사장이다. 드루 와이스먼 미국 펜실베이니아 대학 의대 교수는 1997년부터 커리코 박사와 함께 mRNA 백신을 연구해왔다. 노벨위원회는 “현대 인류 건강에 가장 큰 위협 중 하나가 닥친 시기에 전례 없는 백신 개발 속도를 보여 코로나19 팬데믹을 종결하는 데 크게 기여했다”라고 선정 이유를 밝혔다.

중국·일본도 mRNA 백신 완성

그동안 백신 개발은 통상 8~10년, 빨라도 5년이 걸렸다. mRNA 백신은 이 기간을 비약적으로 단축했다. 모더나와 화이자는 개발에 착수한 후 300여 일 만에 코로나19 백신을 완성했다. mRNA 백신은 이름 그대로 ‘메신저 RNA(mRNA)’라는 유전물질을 기반으로 한다. 전통적인 백신 기술보다 신속한 개발과 대량생산에 훨씬 더 용이하다. 미래 팬데믹 대비를 위해 각국이 mRNA 백신 개발에 뛰어드는 이유다.

미국과 독일 이외에도 mRNA 백신 기술을 확보한 나라가 속속 등장하고 있다. 중국은 스야오 그룹이 개발한 mRNA 백신이 지난 3월 긴급 승인을 받았다. 일본은 자국 제약사 다이이치산쿄가 개발한 mRNA 백신으로 12월부터 코로나19 예방접종을 시행한다. 한 생명공학 분야 전문가는 mRNA 사업단 종료를 두고 답답한 심정을 토로했다. “기술구조, 공급망 등에서 mRNA 백신 시장이 빠르게 재편되고 있다. 후발 주자가 진입할 수 있는 시간은 길어야 향후 3~4년으로 보인다.”

mRNA 백신 기술은 암이나 만성병 치료제 개발 분야에서도 기대를 모은다. mRNA 백신은 몸속에 들어가서 유전물질(mRNA)의 설계도대로 원하는 단백질을 만들어낼 수 있다. mRNA 백신을 이용해 암세포를 차단하는 단백질을 발현시켜 암을 치료하는 식으로, 다양한 질병을 정복하는 데에 이 기술이 활용될 수 있다.

mRNA 백신 기술로 개발된 화이자의 코로나19 백신. ⓒ시사IN 이명익
mRNA 백신 기술로 개발된 화이자의 코로나19 백신. ⓒ시사IN 이명익

지영미 질병관리청장은 11월20일부터 11월21일까지 서울에서 개최된 ‘2023 세계 바이오 서밋’에 참석해 언론 인터뷰에서 “한국형 mRNA 백신 개발을 통해 팬데믹 발생 시 최대 200일 안에 백신을 만들 수 있도록 하겠다”라고 밝혔다. 이는 2024년 신규 편성된 ‘한국형 아르파-H 사업’을 염두에 둔 발언으로 풀이된다. 미국 정부의 보건의료 분야 R&D인 ‘아르파(ARPA)-H’를 벤치마킹한 이 사업은 윤석열 정부의 국정과제로 선정된 바 있다. 2024년도 국가 R&D 예산이 줄줄이 삭감되는 가운데 ‘한국형 아르파-H 사업’은 495억원 규모의 프로젝트로 신설되었다.

이 사업의 5대 임무 중 하나는 ‘보건안보 확립’으로 ‘100일 내 백신 개발·생산’이 목표다. mRNA 백신 연구·개발을 ‘한국형 아르파-H 사업’에서 이어갈 수 있다는 얘기가 나온다. 그러나 한 백신 연구자는 “군불에 손 녹이는 격”이라고 말했다. “아르파-H는 mRNA 백신 개발을 특정하는 사업이 아니다. 방대한 분야의 연구 가운데 하나이며, 연구비 규모도 축소된다. 정부에서 mRNA 백신 업계의 동향을 너무 여유롭게 보는 것 같다. 격차는 나날이 벌어지고 있다. 이런 식으로 시간을 흘려보낸 뒤에 과연 누가 책임을 질 건가?”

기자명 김연희 기자 다른기사 보기 uni@sisain.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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