꽤 오래전, 마트에서 물건을 정리하던 직원이 나를 빤히 쳐다보며 말했다. “혹시 텔레비전에 나오시는 분인가요? 너무 낯이 익는데.” “아··· 제가 세월호 참사 관련 일을 하는 변호사라··· 정말 아주 가끔···.” 그 직원은 내 말에 정말 반가워했다. “어머, 저희 같은 사람들은 법이 보호를 안 해주는데 어떻게 이런 변호사가 있어요.”
집으로 돌아오는 내내 나는 그 말이 가시처럼 걸려 내려가지 않았다. 법의 보호를 받는 사람과 그렇지 못한 사람들이 있다고 느끼고, 자신은 법의 보호를 받지 못하며, 내가 그들을 위해 일한다고 느끼는구나. 그 마음은 어디에서 비롯되었을까.
안 아무개씨가 저지른 진주방화살인 사건의 유가족들이 제기한 국가배상청구 소송에서 국가가 40% 책임이 있다고 인정되었다. 사건 이전 몇 개월 사이 아파트 주민 등이 안씨의 이상행동에 대해 8~9차례나 경찰에 신고했다. 경찰은 자해나 다른 사람을 해하려는 정신질환 의심자를 발견한 경우, 정신건강복지법상 행정입원 등을 검토하기 위한 과거 신고 이력을 조회하거나 그 가족에 대한 문의를 해야 하지만 단 한 번도 그러한 조처를 하지 않았다.
국가의 부작위에 책임을 묻다
재판부는 이런 국가의 부작위가 방화살인 사건을 가능케 했다고 판단했다. 법원은 통상 국가 책임을 쉽게 인정하지 않는 데다, 범죄를 저지른 개인이 있는 경우 그 개인에게 기본적 책임을 묻는다. 진주방화살인 사건에서 재판부가 국가의 책임 비율을 손해의 40%로 판단한 것은 정부 책임을 무겁게 인정한 것이다.
나는 의뢰인인 유가족에게 승소 소식을 전하다 눈물이 터지고 말았다. 사건을 맡은 지 2년여 만에 처음으로 그 유가족이 진심으로 기뻐한다는 것을 느낄 수 있었다. “진짜 솔직히 큰 기대 안 했다 아임니꺼. 아무리 신고를 해도 경찰이 나 몰라라 해서 이런 사건이 터졌을 때 우리들은 법의 테두리 밖에 있다 그렇게 생각할 수밖에 없었지예. 그런데 판사님들 중에 그래도 좋은 분들이 계시네예. 언론에 나오는 판사님들, 피해자들은 생각조차 안 하는 사람들이 전부인 줄로만 알았는데, 제가 잘못 알았네예. 이제사 우리들이 법의 보호를 받는 사람들이 맞구나 싶네예. 너무 늦긴 했지만.”
법은 질서이자 권위다. 그런데 국민을 보호하는 것 역시 법이어서 법은 냉정하면서도 온기를 잃지 말아야 하고, 국가는 그 온기가 실제 구석구석 전달될 수 있도록 시스템을 갖추고 기존 시스템과 교육훈련의 문제점을 개선해야 한다. 이번 판결이 끝이 아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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