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 사람이 등장한다. 어릴 적 피아노 영재였지만 교통사고 후 삶의 의미를 잃은 한국계 이주민 여성 피비, 독실한 기독교인이자 신학대생이었지만 믿음을 잃은 뒤 새로운 길을 찾는 윌, 그리고 ‘제자’라는 극단주의 기독교 종교집단을 이끄는 존 릴. 세 사람의 시선을 교차하면서 작가는 존재론적 허무에 빠져 있던 피비가 존 릴을 만나 점차 광신도의 길로 빠져드는 과정을 보여준다.

피비의 남자친구이자, ‘제자’라는 집단에 의구심을 갖는 윌의 존재가 이 소설을 특별하게 만든다. 윌은 한때 믿음을 가졌지만 결국 신앙을 부정하게 되었고, 덕분에 존 릴이 사이비 종교를 구축하는 과정을 냉철하게 바라볼 수 있다. 하지만 그 과정에서 윌은 피비에게 그릇된 집착을 갖게 되었고, 결국 피비에게 치유되기 어려운 상처를 남긴다. 독자들은 윌과 피비의 관계가 무너지는 것을 안타깝게 지켜보다가도 오히려 윌의 시선 덕분에 피비가 믿음에 빠져들게 되는 이유를 이해하게 된다. 윌의 존재는 신을 믿는 자와 그렇지 않은 자, 양극단의 경계에서 방황하는 존재다. 소설 속에서 윌은 냉정한 관찰자이지만, 동시에 믿음이 있던 시절을 사무치게 그리워하는 모습도 보여준다.

한국계 이주민 출신인 권오경 작가는 기독교적인 믿음에 가득 차 있던, 그러다 신앙을 잃으면서 고통스웠던 스스로를 투영해 이 소설을 썼다고 한다. 한 인터뷰에서 작가는 “신을 믿는다는 게 뭔지 아는 사람들과 아예 모르는 사람들, 그 사이의 균열을 넘고 싶었다. 양쪽 세계가 어떤 모습인지 모두에게 보여줄 수 있게”라고 말했다. 광기 어린 종교적 극단주의가 저지르는 폭력을 수긍할 필요는 없다. 그러나 믿음을 경험하지 못한 사람들에게 이 책은 아주 미약하게나마, 그 믿음이 구축되는 과정을 짐작하게 한다. 상실이 가져다주는 처연한 기억을 가진 독자일수록 이 소설이 단순한 광신도의 이야기에 그치지 않는다는 데에 동의하게 될 것이다.

기자명 김동인 기자 다른기사 보기 astoria@sisain.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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