8월21일 서울 용산 대통령실 청사에서 열린 브리핑에 참석한 이관섭 정책기획수석, 임종득 국가안보실 2차장, 김은혜 홍보수석비서관(왼쪽부터).ⓒ연합뉴스

“문제는 대통령에게 있다.” 국정 운영 긍정 평가가 20%대로 내려앉으며 정치권 관찰자들 사이에 내려진, 합의에 가까운 결론이다. 위기 징후에 둔감하거나 문제 예측에 실패했거나 문제가 닥쳤는데도 대응하지 못하는 것은 대통령의 통치 기능에 이상이 있다는 신호다. 더 늦기 전에 달라져야 하고, 달라지겠다는 의지를 밝혀달라는 요구가 이어졌다. 윤석열 대통령 앞에 ‘쇄신’이라는 단어가 놓였다.

최근 윤석열 대통령은 대통령실 직제 개편 및 새 인사를 단행했다. 비서관급 이하 실무진에 대한 내부 감찰과 재검증 작업을 통해 내부 기강 잡기에도 나섰다. 대통령실 안팎을 맴돌던 쇄신 요구에 대한 윤 대통령의 답이다. 포장지를 뜯어보면 윤 대통령 특유의 고집이 드러난다. 권력 주도권을 둘러싼 대통령실과 ‘윤핵관(윤석열 대통령 핵심 관계자)’으로 대표되는 ‘여권 핵심 관계자’들의 충돌도 담겨 있다. 첫 쇄신 시도에 난맥상만 드러났다.

윤 대통령은 역대 청와대에서 각 부처 간 정책 컨트롤타워 역할을 해왔던 정책실장직을 폐지했다. 비서실장에게 일부 권한을 넘기고, ‘책임장관제’를 통해 개별 장관이 정책 추진을 주도하는 ‘보텀업(Bottom-up)’ 방식을 채택했다. 분산한 정책 조정 기능이 제대로 작동하지 않으면서 설익은 정책이 사전 조율 없이 나왔다. 만 5세 초등학교 입학, 주 52시간제 논란 등이 ‘장관 정책 발표→논란 확산→대통령실 번복’으로 이어지며 엇박자를 냈다. 이 혼선은 국정 지지율 하락의 한 요인으로 꼽혔다.

일부 대통령실과 여권 관계자들은 “그동안의 대통령실 인적 구성을 보면 예견된 일이었다”라고 말한다. 대통령실은 크게 3개 집단이 섞여 있다. 관료 출신과 검찰 출신 그리고 정치권 출신이다. 관료와 고시 출신들은 전문성이 검증됐다는 이유로 윤 대통령이 선호하는 인사들이다. 대통령실 각 부서에 두루 포진해 있다. 검찰 출신들은 숫자는 적지만 윤 대통령을 지근거리에서 보좌하거나 인사, 예산, 공직기강 등 핵심 업무를 맡고 있다. 정치권 인사들은 대선 전후로 합류했다. 역대 청와대와 비교해 정치권 인사가 적은 편이다.

3개 집단 가운데 어느 한 집단이 주도권을 쥐고 있지는 않다. 한쪽에 권력이 쏠리지 않으면 이상적인 조직으로 보일 수 있다. 각 조직과 부서가 업무 분야와 매뉴얼에 따라 움직이면 질서정연한 관료 조직도 될 수 있다. 윤 대통령이 원하고 강조해온 ‘일하는 대통령실’의 구상이다. 문제는 정무적 판단이 들어갈 공간이 좁아진다는 점이다. ‘군기반장’이 없으면 한번 혼선이 빚어질 경우 걷잡을 수 없이 번지는 단점도 있다.

정무·홍보 기능을 둘러싼 논란은 대통령실 조직과 인적 구성의 단점이 도드라지게 나타난 결과에 가깝다. 한 여권 관계자는 “일부 부처 장관들의 조급함이 눈에 보였다. 대통령실은 유연하게 대응하지 못했다. 비슷한 ‘사고’가 반복해서 터졌다. 적어도 업무 과정에서 안건의 옥석을 가리는 일과 다듬는 일, 홍보를 동시에 논의해야 한다는 내부 공감대가 생겼다”라고 말했다.

실제로 대통령실은 이번 개편의 방점을 정책·소통 기능 강화에 찍었다. 정책기획수석 자리를 새로 만들고, 대통령 집무실(2층)과 가장 가까운 3층에 배치했다. 정책기획수석 아래 국정과제비서관, 기획비서관 및 연설기록비서관을 두고 정책과 일정, 메시지를 한 공간에서 담당하도록 했다. 정책기획수석에는 이관섭 한국무역협회 상근부회장을 임명했다. 이 수석은 박근혜 정부 시절 산업통상자원부(산업부) 차관을 지낸 정통 관료다. 윤석열 정부 들어 산업부 장관 하마평에도 이름을 올렸다. 홍보수석비서관은 김은혜 전 국민의힘 의원으로 교체했다. 김 수석은 대선 당시 국민의힘 선거대책위원회 공보단장과 대통령직인수위원회 시절 당선자 대변인을 맡아 윤 대통령과 손발을 맞췄다. 김 수석 중심으로 홍보 라인 내 업무 조정이 이뤄지고 있다.

대통령실 개편은 ‘쇄신’보다는 ‘보강’에 가깝다. 개편의 폭은 좁고 경질은 없다. 대통령실은 “문책성 인사는 아니다”라고 선을 그었다. 이관섭·김은혜 수석은 기존 윤 대통령 인재풀에 포함돼 있었다. 개편과 함께 필요한 시점에 인력을 보충하는 ‘상시 쇄신’을 언급했지만 뚜렷한 방향성은 제시하지 않았다.

‘참모진 물갈이’에는 부정적

정치권에선 윤 대통령의 고집이 고스란히 드러난 개편이라고 평가한다. 앞서 윤 대통령은 8월17일 취임 100일 기자회견에서 “(인적 쇄신은) 국면 전환이라든가 지지율 반등이라고 하는 정치적 목적을 가지고 해서는 안 된다고 생각한다”라고 밝혔는데, 이 발언에 정확히 부합하는 개편이었다는 뜻이다.

지난 5월, 윤석열 대통령이 대통령실 청사 공직기강비서관실을 둘러보고 있다.ⓒ연합뉴스

윤 대통령은 지지율이 하락하고 쇄신 요구가 거세지는 과정에서도 ‘참모진 물갈이’에 대해 부정적 반응을 보였다. 대통령실과 여권 관계자들에 따르면, 여러 여론조사에서 국정 지지율이 계속 내려앉자, 김대기 비서실장은 윤 대통령을 찾아 자신과 참모들을 ‘바둑알’에 빗대며 거취 결정을 건의했다. 직접적으로 사퇴 의사를 전한 건 아니지만 그에 준하는 취지였던 것으로 알려졌다. 윤 대통령은 거절 의사를 내비쳤고, 이 시점 이후 대통령실에선 김 비서실장에게 힘이 실렸다는 분석이 나온다. 대통령실 사정을 잘 아는 여권의 한 관계자는 윤 대통령의 김 비서실장 재신임에 대해 “지지율보다는 업무 성과로 평가받자는 뜻이었다. 성과를 내면 파도(지지율 하락)를 충분히 넘을 수 있다고 판단한 것으로 보인다”라고 말했다.

이 때문에 대통령실과 여권에선 이번 개편 목적이 실제 쇄신이 아니었다는 해석도 나온다. 공교롭게도 새로 입성한 일부 인사들의 이력이 윤석열 정부의 핵심 국정 과제와 직간접적으로 연결돼 있는 만큼, 쇄신보다는 ‘업무 성과와 평가’ 기조에 초점이 맞춰졌다는 것이다.

원자력발전소(원전) 수출은 주요 국정 과제 가운데 하나다. 이관섭 정책기획수석은 한국수력원자력 사장직 재직 당시 줄곧 원전 수출을 강조했다. 대통령실 정책기획수석에 임명되기 직전인 8월18일에는 원전 수출을 위해 산업부 중심으로 꾸린 민관 합동 ‘원전수출전략 추진위원회(추진위)’ 위원으로 위촉되기도 했다. 추진위에는 민간 전문가와 함께 기재부, 외교부, 국토부 등 관계 부처 차관급 10명이 당연직 위원으로 참여한다. 현재 대통령실 장성민 정책조정기획관이 2030 부산세계박람회(엑스포) 유치와 같은 주요 국책사업을 전담하고 있듯, 이관섭 수석이 원전 수출사업을 맡을 수 있다는 관측이 나온다. 김대기 비서실장도 8월21일 브리핑에서 이관섭 수석을 두고 ‘정책실장의 부활이냐’는 기자들의 질문에 “정책실장은 밑에 경제수석과 사회수석 등 조직을 두고 총괄하는 개념이고, 정책기획수석은 수평적으로 국정 과제 등에 집중하는 역할이다”라고 말했다.

국가안보실 2차장으로 임명된 임종득 예비역 육군소장은 한국군 최초로 이탈리아에 위치한 북대서양조약기구(나토) 국방대학에 파견돼 국방정책을 연구한 이력이 있다. 윤석열 대통령은 8월17일 취임 100일 기자회견 모두 발언에서 “미국·러시아·프랑스에 이어 세계 4대 방산 수출국 진입으로 방위산업을 전략 산업화하고 방산 강국으로 도약시키겠다”라고 밝혔다. 나토 회원국들은 최근 수년 사이 방산 수요를 늘리고 있다. 지난 8월 한국 방산업체들은 나토 회원국인 폴란드와 K2 전차 등 5조원 규모의 본계약을 체결했다. 방산 수출 역시 윤석열 정부의 핵심 국정 과제 중 하나다.

대통령실의 실질적인 쇄신 작업은 이제부터 시작이라는 관측이 나온다. 대통령실 사정을 아는 다른 여권 관계자는 “인적 쇄신 논의 과정에서 대통령실과 여권 내부에 ‘자기 사람 꽂기’식의 석연치 않은 움직임이 있었다. 인사에 문제가 있다는 지적을 받는 가운데 자칫 비선 논란으로 번지면 돌이킬 수 없는 일이 될 수 있어, 대규모 개편은 이 문제부터 확인한 뒤 추진할 필요가 있었다”라고 말했다.

최근 대통령실 공직기강비서관실은 대통령실 소속 비서관 이하 일부 실무진에 대한 고강도 감찰 조사 및 업무평가에 나섰다. 현재 감찰 중이거나 대상에 올라 사직서를 낸 직원은 10여 명이다. 공직기강비서관실은 복수의 비서관과 행정관들이 대통령실과 정부 부처 인사에 개입한 정황을 파악한 것으로 알려졌다.

‘윤핵관’ 관련자들의 잇따른 의혹

감찰 대상에 오르거나 인사 개입 의혹을 받는 직원들은 대부분 이른바 ‘윤핵관’과 관련이 있는 인물이다. 시민사회수석실 소속 한 비서관은 윤핵관 측과 인사 관련해 부적절한 처신을 했다는 첩보가 입수돼 감찰 대상에 올랐다. 시민사회수석실 소속 다른 비서관급 관계자에게는 내부 문건 외부 유출에 대한 관리 책임을 묻고 있다. 문건을 유출한 당사자는 해당 비서관의 부하 직원인 행정요원이었는데, 그는 대통령실에 채용되기 전 윤핵관을 보좌했다. 행정요원은 감찰을 받게 되자 사표를 냈다.

인사기획관실에서 근무하던 한 행정관도 최근 사표를 냈다. 이 행정관도 윤핵관 의원실에서 일하다 대통령실에 들어왔다. 민원을 전달하는 방식으로 대통령실과 장관 정책보좌관 인사 등에 개입했다는 의혹을 받는다. 감찰 대상에 오르기 직전 자진 사표를 냈다. 공교롭게도 비슷한 시기 사직서를 제출하고 대통령실을 떠난 또 다른 행정관도 같은 윤핵관 의원실 출신이다. 공직기강비서관실은 다른 비서관, 행정관, 행정요원들의 업무평가에도 착수했다. 저조한 점수를 낸 직원들의 입직 경로 등을 살펴볼 방침이다. 윤 대통령과 김건희 여사 측 인사로 분류된 직원들도 일부 포함된 것으로 알려졌다.

복수의 대통령실 관계자들은 이명박 전 대통령 특별사면 문제에서도 참모들과 윤핵관 측 인사들의 충돌이 있었다고 말한다. 대통령실 인사와 정책, 조직 개편안까지 용산(대통령실)이 아닌 여의도(국회, 정치권)를 통해 언론에 알려지는 것을 두고도 내부 불만이 들끓었다. 이시원 공직기강비서관이 감찰을 주도하는 것을 두고, 검찰 출신 참모들이 사정을 통해 윤핵관 측 견제에 나서며 ‘파워 게임’이 시작됐다는 분석이 나오는 이유다. 윤핵관 측 인사들에 대한 첩보가 공직기강비서관실에 잇따라 접수되는 것이, 2024년 총선 공천권을 둘러싸고 계산기를 두드리는 여권 내부의 주도권 다툼이라는 관측도 있다.

대통령실 내부 목소리는 엇갈린다. 윤핵관 측을 겨냥해 “실제 책임져야 할 쪽은 따로 있다”라는 지적이 우선 나온다. 낙마한 장관들의 인사 개입 여부를 특정 집단과 연결하는 움직임이 “지지율 하락의 돌파구 마련을 위한 희생양 찾기”라는 불만도 있다. 대통령실 관계자는 “합당한 이유가 있는 직원들이 감찰 대상에 올랐다. 견제, 충돌, 갈등으로 보는 건 억측이다”라고 말했다. 국민의힘 한 중진 의원은 “실질적인 쇄신은 대통령이 난맥상을 풀어냈을 때 본격적으로 시작될 것이다”라고 전망했다.

기자명 문상현 기자 다른기사 보기 moon@sisain.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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