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성원 그림

조지 오웰은 작가가 글을 쓰는 첫째 동기는 사람들의 인정과 주목을 받고 싶은 ‘순전한 이기심’이라 했다. 이기심이라니 한심하다 싶겠지만 따지고 보면 문학뿐 아니라 모든 예술이, 아니 정치·경제·문화 등 모든 분야에서의 성취란 것이 자신을 표현하고 싶은 자부와 욕망에서 나온다 할 수 있다. 자부심에 가득한 자아는 오웰이 말했듯 “사후에도 기억되고 싶은 욕구”로 쓸 것이며, 상처 입은 자아는 “실패를 앙갚음할 수 있게 해주는 자기만의 세상”을 만들기 위해 쓰리라. 자랑이든 항변이든 그들의 동기는 하나다. 존재 증명. 내가 여기 있다, 내 목소리를 들어라.

천부인권을 주창한 근대는 누구나 목소리를 내도 좋은 시대, 제 이야기를 하려는 열망이 들끓던 시대였다. 이광수, 김유정, 염상섭, 이상 등 여러 다른 목소리들이 한국 근대문학을 이끌며 각축한 것은 이를 반영한다. 하지만 이 목소리들은 다른 듯 닮아 있다. 여기엔 음색도 어조도 전혀 다른 여성의 목소리가 없다. 당시의 여성에겐 스스로 목소리를 낼 만한 능력도 자신도 없었던 걸까? 아니면 소리를 내긴 냈으나 너무 거칠고 조야해서 문학사에 이름을 올리지 못했던 것일까? 아무리 성평등이 중요하다 해도 여성이란 이유만으로 문학사의 절반을 요구할 수는 없는 법. 배제인지 탈락인지 공백의 이유를 알려면 직접 목소리를 들어보는 게 수다.

김명순 외 지음, 문학과지성사 펴냄

국문학자 이상경이 편집한 〈근대여성작가선〉과, ‘한국 근대 페미니즘 문학 작품선’이라는 부제를 단 〈신여성, 운명과 선택〉이 눈에 띈다. 〈근대여성작가선〉에는 20세기 초에 등장한 1세대 작가 김명순·김일엽·나혜석과 1930년대 이후 활동한 이선희·임순득 5인의 단편 15편이 수록돼 있고, 〈신여성, 운명과 선택〉에는 이들 외에 1920, 1940년대를 대표하는 강경애·백신애·지하련 등 7인의 작품이 한 편씩 실려 있다. 나혜석·김명순·이선희·임순득의 작품이 겹치긴 하지만 짧은 시간에 대강의 흐름을 파악할 수 있다.

그나저나 두 책에 실린 18편 중 내가 읽어본 건 김명순·나혜석·지하련의 소설 너덧 편뿐, 나머지는 전부 처음 보는 작품이다. 이름도 생소한 백신애·이선희·임순득은 말할 나위 없고 신여성으로 유명한 김일엽의 소설도 읽기는 처음이다. 김일엽의 문장은 구태의연한 느낌인 반면 동갑내기 나혜석의 후기작 ‘현숙’은 기대 이상이다. 소설이 발표된 1936년은 그가 이혼 사건과 최린을 상대로 한 위자료 청구소송으로 온갖 비난을 받으며 전락의 길을 걷던 때다. 화가로나 작가로나 예술적 역량이 쇠진했다는 평이 지배적이어서 그런 줄 알았다. 하지만 성근 부분은 있어도 혹평할 정도는 아니다. 오히려 이제 막 사랑을 확인한 연인의 “쓸쓸한 환희”를 포착한 데서 보이듯, 인간과 사회를 보는 그의 시선은 이전보다 깊고 예리하다.

예리한 시선으로 말하면 최초의 근대 여성 작가로 알려진 김명순을 빼놓을 수 없다. ‘기생첩’의 딸로 태어나 평생 질시와 구설에 시달린 김명순에게 글쓰기는 욕망을 넘어선 생의 의지였다. 일본 유학 중 숙부가 소개한 군인 이응준(훗날 대한민국 초대 육군참모총장)에게 성폭행을 당하고 쫓기듯 돌아온 고국에서 그는 첫 소설 ‘의심의 소녀’를 썼다. 작품은 이광수의 찬사를 받으며 〈청춘〉지의 현상 공모에 입상했고 그는 당당히 최초의 등단 작가가 되었다. 사마천이 자신의 언어에 기대 궁형의 모욕을 견뎠듯이 그는 일본어·영어·독일어에 능통한 언어적 재능을 바탕으로 시와 소설에서 자신의 언어를 구축했고, 에드거 앨런 포를 국내에 소개하고 보들레르의 〈악의 꽃〉을 번역했으며, 그리스 신화와 니카라과 국민 시인 루벤 다리오의 시를 인용해 조선 문단을 자극했다. 그리고 1925년 작품집 〈생명의 과실〉을 출간했다. 여성 작가로는 최초였고 남성 작가들에게도 드문 일이었다.

‘어머니와 딸’ 주제로 한 세 작품

그러나 이 드문 성취에 대한 응답은 지독히 악의적이었다. 김기진·김동인· 방정환 등이 문학의 이름으로 퍼부은 언어의 저열함은 놀랍기 그지없다. 하지만 집요한 돌팔매질에도 그는 침묵하지 않았다. 거짓 소문에 맞서 직접 자기 삶을 이야기한 ‘탄실이와 주영이’(1924)를 썼다. 여성 스스로 성폭행을 공론화한 최초의 사례였다. 더 놀라운 것은 인간의 내면과 세상의 이면을 보는 예리함이다. 20년대 초에 그는 이미 애국과 기독교를 내세운 지식인들의 허구성을 간파하고 비판했다.

백신애 외 지음, 에오스 펴냄

계급, 지위, 민족, 이념 따위에 얽매이지 않고 진상을 파악하는 힘은 후배 작가 백신애와 지하련에게서 한층 깊어진다. 백신애는 먹고살기 위해 소비에트 러시아로 떠난 조선인들의 비참함을 그린 ‘꺼래이’(1934)에서, 주인공 순이의 눈을 통해 사회주의 독립운동을 하겠다면서 중국인 노동자를 차별하는 청년들의 허위를 고발한다. 하지만 이들의 이중성에 냉소하거나 낙담하진 않는다. 대신 차별에 저항하고 아픔에 공감하는 순이에게 중국인 쿨리와 러시아 군인이 내미는 다스한 손길을 보여줌으로써 참된 민중 연대의 가능성을 그린다.

지하련의 ‘산길’(1942)은 남편과 친구의 연애 사실을 알게 된 순재의 시선으로 지식인의 허위를 드러낸다. 순재는 큰 충격을 받지만, 사랑 앞에 당당한 친구를 보며 아내라는 이름으로 무조건 비난할 수만은 없음을 쓸쓸히 인정한다. 오히려 그는 불륜을 한때의 ‘실수’로 치부하며 “어른들이란 (연애보다) 다른 것들에 더 분주”한 법이라고 웃어넘기는 남편의 태도에 경악한다. 임화의 아내로 유명한 지하련은 이 소설에서, 큰일을 한다며 거짓된 행실을 합리화하는 남자를 통해 공사 구분으로 가부장적 구조를 온존해온 남성들을 비판하고 여성 연대의 가능성을 보여준다.

두 소설집을 읽다가 흥미로운 점을 발견했다. ‘어머니와 딸’을 주제로 한 작품이 세 편이나 있다. 근대의 딸들이 봉건의 어머니를 그저 부정하지만은 않았다는 증거다. 애증 대상인 어머니의 존재를 적극적으로 고민한 문장들을 보며 새삼 역사와 연대에 대해 생각한다. 작고 사소한 것의 무거움을 기억하는 일, 그것이 역사의 시작임을 언니들에게서 배운다.

기자명 김이경(작가) 다른기사 보기 editor@sisain.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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