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연합뉴스유은혜 교육부 장관(가운데)이 ‘고교서열화 해소 및 일반고 교육역량 강화 방안’을 발표하고 있다.

2025년이 되면 고등학교 체제가 단순해진다. 자사고·외고·국제고가 모두 일반고로 전환된다. 전국 단위로 학생을 모집하는 일반고(49개)의 모집 특례도 폐지된다. 교육부는 11월7일 ‘고교 서열화 해소 및 일반고 교육역량 강화 방안’을 발표했다.

자사고·외고·국제고 폐지는 문재인 대통령의 교육 공약이었다. 이제까지는 단계별로 추진돼왔다. 시도교육청 단위에서 학교 운영성과 평가를 통해 재지정을 취소하는 방식이었다. 한 학교가 취소될 때마다 사회적으로 크게 갈등이 불거졌다. 정부는 방식을 바꾸었다. 이제부터 5년간 학교 운영성과 평가는 하지 않는다. 교육과정 운영 및 사회통합전형 선발, 법정부담금 납입 등 책무 사항만 지도·감독한다. 안정적인 전환을 위한 준비 기간을 거쳐, 2025년 모든 자사고·외고·특목고를 한꺼번에 일반고로 바꾼다. 지금의 초등학교 4학년 학생들이 고등학교에 입학할 때의 일이다.

현재(2019년 4월 기준) 고등학교 유형은 크게 네 갈래로 나뉜다. 일반고(1555개)가 가장 많고, 그다음 특성화고(490개), 특수목적고(157개), 자율고(154개) 순서로 이어진다. 특수목적고는 외국어고·국제고·과학고(영재학교 포함)·예술고·체육고·마이스터고로, 자율고는 자공고(자율형 공립고)와 자사고(자율형 사립고)로 또다시 갈린다. 이 가운데 2025년 일괄전환 대상이 된 학교는 총 79개교, 학생 수로는 전체의 4.2%에 해당하는 외고(30개), 자사고(42개), 국제고(7개)이다. 절반 이상이 2008년 이명박 정부 출범 이후 ‘고교 다양화 프로젝트’의 일환으로 신설된 학교들이다. 학교 선택권을 넓히고 고등학교 교육의 다양성을 추구한다는 취지였다. 10년 뒤 결과적으로 그 정책은 ‘고교 서열화 프로젝트’가 되어버렸다.

교육 다양성이라는 취지는 일찌감치 무색해졌다. ‘국·영·수’ 중심의 입시 교육에서 벗어나 특성화된 교육 프로그램을 제공하겠다며 설립된 자사고의 63%가 권장 기준 이상으로 국·영·수 교과를 편성했다. 2015년 전국 자사고 국·영·수 교과 편성 현황을 보면 일반고 학생들에 비해 자사고 인문계열 학생들은 42.5시간, 자연계열 학생들은 122.4시간 더 길게 국·영·수 수업을 받았다(시도교육청 수합 교육부 발표 자료). 외국어 분야 전문인력 양성의 목적으로 설립된 외고·국제고 학생 가운데 대학 어문계열 학과로 진학하는 비율은 각각 40%, 19%에 불과했다. 96.8%가 이공계열 학과로 진학하는 과학고와 대비된다(2019학년도 기준, 시도교육청 수합 교육부 발표 자료).

자사고·외고·국제고를 지탱해온 경쟁력은 다양성이 아닌 ‘격차’였다. 중학교 때까지 누적돼온 학생들 간 교육 격차는 이들 고등학교 3년 생활을 거치면서 한층 더 강화됐다. 애초 잘사는 집 아이들이 특목고·자사고에 들어간다(오른쪽 〈그림 1〉 참조) 들어가기 위해서도 더 많은 사교육을 받고(〈그림 2〉), 들어가고 나서도 더 많은 사교육을 받는다(〈그림 3〉). 일반고에 비해 학부모는 훨씬 더 많은 돈을 학교에 부담한다(〈그림 4〉).

자사고·외고·국제고가 강화해온 격차의 아랫단에 일반고가 있다. 일반고의 ‘일반’이 어느새 ‘비특별’ 혹은 ‘뛰어나지 않은’의 의미로 떨어져버렸다. “아이들이 올 때부터 이미 패배감 같은 거를 느끼면서 와요. 자사고·특목고가 당연히 제일 좋고, 그다음에 일반고 중에서는 사립고, 그다음에 공립고. 그러니까 일반계 공립고 같은 경우에는 아이들이 딱 올 때부터, 이 학교는 ‘똥통 학교’, 이런 식으로 오니까 좀 좌절감을 안고 오는 아이들?” “특목고랑 자사고에 잘하는 애들이 싹 다 빠져나가 버리니까, 일반고 애들이 너무 힘 빠지는 거 같아. 스스로를 생각했을 때 나는 그냥 다른 데 못 가서 여기 온 애. 공부 좀 잘하는 애들도, 나는 못 갔다. 떨어졌다(서울특별시교육연구정보원, 〈초·중등교육 정상화를 위한 고교체제 개편방안 연구〉에서 일반고 학부모·교사 인터뷰 발췌).”

실제 조사 결과에서도 일반고 학생들의 낮아진 자존감이 포착된다. 스스로 평가하는 긍정적 자아의식, 자기주도성 등 자기관리 역량 점수가 특목고 71.82점, 자율고 67.83점, 일반고 65.58점으로 나타났다(〈미래인재 양성을 위한 학생의 핵심역량 측정 및 과제〉 한국교육개발원, 2019).

 

 

과목 선택권 보장, 공동교육 클러스터 운영

교육부의 이번 정책은 바로 이 문제를 심각하게 바라본 데에서 출발했다. 그래서 ‘고교 서열화 해소’와 동시에 ‘일반고 교육역량 강화’를 다른 한 축으로 설정했다. 고교 체제에서 다양성을 추구하는 대신 학생 한 사람 한 사람이 받는 교육 내용 안에서 질적 다양성을 확보하겠다는 목표를 세웠다. 학생 맞춤형 교육과정 설계 및 진로 진학지도 전문교원을 양성하고 필수이수 단위 유연화, 대체이수 허용, 수업량 유연화 등으로 학생들의 과목 선택권을 보장한다. 개별 학교를 교과 특성화학교로 키우고 그 학교와 인근 대학, 지역사회 등을 묶어 ‘공동교육 클러스터’도 운영한다. 일반고 내 예체능 심화교육, 직업교육도 확대하며 열악한 학교 시설을 미래형 교육이 가능한 공간으로 신·개축한다. 5년간 진행되는 이런 일반고 교육역량 강화 정책의 소요 예산으로 교육부는 2조1800억원을 잡아놓았다.

자사고·외고·국제고의 일반고 전환은 크게 두 가지 부작용이 거론된다. ‘고교 하향평준화’와 ‘강남 8학군 부활’이다. 유은혜 교육부 장관은 11월7일 JTBC 인터뷰에서 하향평준화 우려에 대해 이렇게 말했다. “지금까지는 일정 학교가 우수한 학생을 선점해 특화된 교육과정을 운영해왔다면 앞으로 미래 교육에서는 모든 한명 한명이 모두 소중하기 때문에 일반고에서도 지금의 이런 특목고처럼 교육과정을 운영하겠다.” 격차의 상단을 끌어내리기보다 격차의 하단을 끌어올리는 데 초점을 맞추겠다는 것이다.

‘강남 8학군 부활’ 우려에 대해 유 장관은 이렇게 말했다. “2017년 대선 이후에 고교 체제 단순화 발표를 했을 때에도 실제로 초등학생들이 강남 3구로 전입하는 비율은 2016년도 6.8%에서 2018년도에 6.0%로 오히려 좀 줄었다. 또 지금 일반고 고교학점제를 추진하면서 고교학점제 선도지구를 운영할 계획이다. 외고나 국제고가 운영하고 있는 다양한 교육과정이 일반 고등학교에서 그대로 필요한 특성화된 영역별로 운영이 된다. 그러면 굳이 강남 3구나 특목고를 가지 않아도 일반 고등학교에서 자기가 원하는 교육과정, 다양한 선택의 기회가 더 넓어질 수 있다.”

일반고에서도 학생 한명 한명에게 집중하는, 다양한 선택의 기회를 제공하는, 그래서 학생과 학부모 입장에서도 강남 8학군이나 자사고·외고·국제고가 아쉽지 않은 그런 교육이 이뤄질 수 있을까? 당장 올해 하반기 초·중등교육법 시행령 개정을 시작으로 내년 상반기 과학고·영재학교 학생 선발방식 개선방안 마련, 고교학점제 기반조성 사업 기본계획 발표 등 5년간의 로드맵이 촘촘히 짜여 있다. 관건은 로드맵의 종착점인 2025년 진짜 자사고·외고·국제고가 역사 속으로 사라질지가 아니다. 그간 이루어질 일반고의 실질적인 변화에 이번 정책의 성패가 오롯이 달려 있다.

기자명 변진경 기자 다른기사 보기 alm242@sisain.co.kr
저작권자 © 시사IN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
이 기사를 공유합니다
관련 기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