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지영 그림
ⓒ이지영 그림

쥴퓌 리바넬리는 이십 대 중반이던 1971년, 군사 쿠데타에 반대해 세 차례나 구속되어 군 형무소에 수감되었다가 풀려난 다음, 해외에서 11년간 망명 생활을 했다. 그동안 그는 꾸준히 음반을 발표하고 영화음악을 맡았다. 일마즈 귀니의 1982년 칸 영화제 황금종려상 수상작 〈욜〉이 그가 음악을 맡은 영화다. 자작곡 약 300곡과 30편의 영화음악을 만든 음악가인 그는 영화 시나리오를 여러 편 쓰고 연출도 했다.

1978년부터 단편소설을 발표하기 시작한 그는 시·만화·사회평론 등 장르를 가리지 않았다. 그 가운데 야사르 케말에 대한 연구서가 눈에 띈다. 한국에서 가장 유명한 튀르키예 작가라면 2006년 노벨 문학상을 수상한 오르한 파묵이지만, 예전에는 〈메메드〉(주우, 1982)를 쓴 야사르 케말이 유일했다. 오랫동안 이 작품 하나로 알려졌던 그는 〈독사를 죽였어야 했는데〉(문학과지성사, 2005)가 소개되면서 위용을 드러냈다. 여성을 강제로 납치해도 결혼으로 인정받는 납치혼 풍습과 명예살인을 하나의 플롯으로 묶은 이 작품은 한 사회를 구성하는 관습의 힘이 얼마나 비극적인가를 폭로한다는 점에서 가브리엘 가르시아 마르케스의 〈예고된 죽음의 연대기〉(민음사, 2008)와 함께 논의할 만하다.

1994년 중도좌파인 공화국민당 소속으로 이스탄불 시장에 출마하여 낙선한 적이 있는 리바넬리는 2002년 공화국민당 소속으로 국회의원에 당선되었으나 변화도 없고 발전도 없는 지도부에 실망해 탈당했다. 그는 ‘정치는 본인의 진심과 다른 말을 하도록 강요하지만, 예술은 오로지 진실만을 말하도록 강요한다’라는 요지의 인터뷰를 하고 정계를 은퇴했다. 그는 이슬람주의를 표방한 레제프 타이이프 에르도안 정권에 반대하는 세속주의와 진보 진영을 대표하는 지식인으로 존경받고 있다.

리바넬리가 소설가로 처음 이름을 떨친 작품은 1996년 작 〈살모사의 눈부심〉(문학세상, 2002)이다. 광기와 폭력이 아니면 유지될 수 없는 권력의 뒷면이 사실은 우둔함에 가득 차 있다는 사실을 새삼 폭로한 이 작품은 튀르키예 문학계에 커다란 반향을 불러일으켰을 뿐 아니라, 국제적인 찬사를 받으며 스페인·그리스·독일에서 베스트셀러가 되었다. 작가는 오스만제국 황실을 무대로 한 이 작품에서 권력의 우둔한 욕망을 파헤쳤는데, 그는 이 작품 이후로도 권력의 정체를 자주 핵심 주제로 삼았다.

2008년 작 〈마지막 섬〉(호밀밭, 2022)은 40가구가 사는 외딴섬에 전직 대통령 부부와 손녀가 당도하면서 평온한 섬이 전체주의 사회로 변하는 악몽을 그렸다. 토마소 캄파넬라의 〈태양의 나라〉에서부터 윌리엄 골딩의 〈파리대왕〉에 이르기까지 섬은 언제나 정치 실험의 장소였다. 작자미상이라는 설도 있는 〈홍길동전〉의 율도국도 그랬다.

유대인 실어 나른 스트루마호(號)의 진실

장기간 지속된 철권통치로 국민에게 외면당하고 쿠데타 동지들로 이루어진 혁명의회로부터도 밀려난 전직 대통령은 자신의 손녀를 공격해 부상을 입혔다는 이유로 섬을 서식지로 삼고 있는 갈매기를 모두 죽이거나 섬에서 쫓아내려 한다. 전직 대통령은 주저하는 섬 주민을 두 가지 수단으로 길들인다. 하나는 섬을 관광특구로 개발해 부자로 만들어주겠다는 것이고, 하나는 조작된 민주주의다. 독재자는 ‘민주주의’라는 형식 뒤에 숨어서 대중을 조종하며, 이때 다수결은 민주주의를 장식하는 포악한 연극에 불과하다. 민주주의는 다수주의가 아니라 다원주의다.

2011년 작 〈세레나데〉(문학과지성사, 2023)는 굵직한 두 축으로 구성되었다. 하나는 선거를 통해 집권한 히틀러가 유대인을 박해하기 시작한 1934년 무렵, 20세 나이로 법학과 조교수가 된 독일 청년 막시밀리언 바그너와 유대인 여학생 나디아의 순애보. 다른 하나는 튀르키예와 영국 정부가 은폐해온 스트루마호(號)에 대한 진실(비중 있게 다뤄진 이 사건에 비해 마야의 가족사를 둘러싼 아르메니아인 학살과 ‘푸른연대’ 이야기는 곁가지나 들러리처럼 느껴졌다).

1941년 루마니아의 파시스트들이 동부 지역 이아시에서 유대인을 학살하자, 루마니아의 모든 유대인이 탈출할 방법을 찾았다. 그즈음 유대인을 팔레스타인까지 실어 보내준다는 이민선 광고가 신문에 났다. 가축 운반선에 지붕을 씌운 스트루마호의 승선권은 1인당 1000달러였는데, 최대 250명이 정원인 배에 769명이나 탔다. 이 배는 항해 중에 여러 차례 고장을 일으키다가 이스탄불 근해에서 엔진이 완전히 멈췄다. 튀르키예 정부는 이 배를 이스탄불까지 예인했으나 승객의 하선은 허락하지 않았다. 튀르키예 정부는 유대인들이 이스탄불을 최종 목적지로 삼았을 것이라 의심했고, 영국 정부는 아랍과의 관계를 의식해 이 배가 팔레스타인으로 오는 것을 원치 않았다.

두 정부가 이 배를 루마니아로 돌려보내기로 결정할 때까지, 스트루마호의 승객은 외부와 접촉이 제한된 채 70일 동안 배에 갇혀 있었다. 선실에는 쉴 곳도 잠을 잘 수 있는 충분한 공간도 없었다. 샤워장도 없고 빨래를 할 수도 없었다. 769명이 쓰는 단 하나 화장실이 막히자 갑판 전체가 대소변으로 가득 차서 미끄러웠고 전염병이 돌았다. 그 배는 “더 이상 배가 아니라 떠다니는 관이나 다름없는 상태였다”. 이스라엘의 파시스트들이 가자지구에서 팔레스타인인들에게 하고 있는 짓이 이와 같다. 스트루마호는 예인선에 이끌려 쉴레 근처 욤곳까지 옮겨진 후, 원인 모를 폭발로 청년 한 명을 제외한 전원이 사망했다. 1942년 2월24일 새벽 4시였다.

2021년 작 〈어부와 아들〉(호밀밭, 2023)은 튀르키예의 보드룸 해수욕장 근처에서 익사체로 발견된 세 살짜리 시리아 난민 아일란 쿠르디에 대한 애도를 담고 있다. 에게해에서 고기를 잡는 어부인 무스타파는 어느 날 일곱 살 난 외동아들 데니즈를 데리고 바다로 나갔다가 파도에 배가 뒤집혀 아들을 잃었다. 이후, 무스타파는 혼이 나간 사람처럼 살게 되고, 아내 메수데와도 사이가 멀어진다. 그러던 어느 날, 무스타파는 난민을 태운 보트가 난파하여 주검이 떠도는 바다에서, 어린이용 구명보트에 실려 있는 생후 2개월 된 아이를 건지게 된다. 무스타파와 메수데는 이 아기를 자신들의 아이로 삼고자 한다. 중고등학교 때부터 어니스트 헤밍웨이의 소설을 탐독한 리바넬리는 〈노인과 바다〉의 모티브를 가져와 전혀 다른 작품을 썼다. 노인이 자신이 낚은 커다란 청새치를 상어로부터 지키기 위해 고투했던 반면, 무스타파와 메수데는 뒤늦게 나타난 아기의 엄마에게 아기를 넘겨주기로 마음먹는다. 인간애와 생태주의에 대한 작가의 관심이 온기처럼 퍼지는 작품이다.

기자명 장정일 (소설가) 다른기사 보기 editor@sisain.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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