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존감이 성공의 문을 열 수 있을까. 내게 닥친 어떤 일이든 더 낫게 설명하려는 긍정의 심리로 무장하면 내 삶이 개선될 수 있을까. 포기하지 않고 끈기 있게 덤벼드는 ‘그릿(grit, 한국식으로는 ‘노오력’)’을 함양하면 학업 성적이 오를까. 자존심도 긍정적 사고방식도 그릿도 귀찮다면 ‘파워 포즈(power pose)’를 길러보는 것은 또 어떨까. 이 이론(보다는 상식)에 따르면, 구부정한 자세보다 척추를 세우고 어깨를 활짝 편 자세는 나에게 더 많은 기회를 열어준다. 제시 싱걸은 ‘자기계발 심리학은 왜 당신의 문제를 해결하지 못하는가’라는 부제를 가진 〈손쉬운 해결책〉(메멘토, 2023)에서 이러한 심리적 강화가 아주 소용없다고 말하지는 않는다. 문제는 그것이 만능이라고 말하기 때문이다.

1980년대 말, 항우울제가 개발되자 심리학자들은 멸종 위기에 내몰렸다. 이때 마틴 셀리그먼이 긍정심리학을 창시했다. 1998년 미국 심리학회 회장이 된 그는 정신질환을 치료하는 심리학의 주요 임무에서 정신건강을 증진하는 쪽으로 심리학의 범위를 넓혔다. 이로써 심리치료사는 환자가 아닌 평범한 사람을 더 큰 행복과 개인적 성공으로 이끈다는 무궁무진한 시장을 개척할 수 있게 되었다. 셀리그먼이 극찬한 긍정심리학의 사도 소냐 류보머스키는 ‘행복은 50%의 유전과 10%의 환경, 그리고 40%의 개인 선택의 결과’라는 공식을 내놨는데, 이런 비율이 나오게 된 과학적 근거는 없다. 자기계발 기술자가 된 심리학자에게 중요한 건 행복해지는 노력에서 개인이 통제할 수 있는 분량이 5%인 것보다 40%인 것이 자신들의 돈벌이에 유리하다는 것이었지 과학적 엄밀성이 아니다.

ⓒ이지영 그림
ⓒ이지영 그림

지은이는 미미한 과학적 근거밖에 없는 긍정심리학을 ‘사카린 이론’ 또는 ‘좀비 이론’이라고 부르는 데 그치지 않고, 이런 유사 과학이 활개 치는 이유를 찾는다. 사회가 유사 과학을 받아들일 때는 “그 이야기가 그 사회가 듣고 싶어 하는 무언가, 또는 당시에 일어나고 있던 어떤 것을 설명해주는 듯한 무언가를 들려주기 때문일 때가 많다.” 국가가 사회문제를 개인에게 떠넘길 때 청년들은 긍정심리학과 자기계발이 제시하는 손쉬운 해결책에 넘어간다. 미국에서 자기계발서를 사는 부류는 최신 연구를 활용하여 자신의 성공과 성취 가능성을 더 높이려는 중산층 혹은 중상류층 노력가들인데, 빈곤층 성원이 똑같은 책이나 프로그램에 무관심한 것은 돈과 시간이 없거나(사실이다) 나태해서가 아니다. 그들은 사회적 성공이 심리적 강화에 달려 있지 않다는 현실을, 멍청한 혹은 알고도 모른 체하는 사기꾼들보다 경험으로 더 잘 알고 있기 때문이다.

강연을 하러 간 도시에서 튀르키예의 소설가 쥴퓌 리바넬리가 쓴 〈어부와 아들〉(호밀밭, 2023)을 얻었다. 호텔의 침대에 호젓이 누워(실은 뜨거운 물을 채운 욕조 안에서) 소설을 다 읽었다. 그리고 이번 글에 이 작품을 소개하고자 “한국에 처음 소개되는 튀르키예의 소설가…”라고 썼다가 혹시나 싶어 알라딘에서 작가 이름을 검색해보았다. 그의 대표작 〈세레나데〉(문학과지성사, 2023)와 튀르키예 대통령 에르도안의 독재를 비판한 것으로 화제가 됐다는 〈마지막 섬〉(호밀밭, 2022)도 나와 있었다(호밀밭은 자사에서 나온 이 책은 물론 국내에서 출간된 어떤 책도 작가 약력에 밝혀놓지 않았다). 그뿐만 아니다. 스크롤바를 내리니 가장 아랫단에 있는 〈살모사의 눈부심〉(문학세상, 2002)이 뜨는 게 아닌가. 아, 당신이라니! 탄성이 터졌다.

〈장정일의 독서일기 6〉(범우사, 2004)에 실려 있는 2002년 2월4일자 독서일기에, 클라우스 후이징의 〈책벌레〉(문학동네, 2002), 조세핀 하트의 〈질투〉(잎새, 1996), ‘쥴퓨 리반엘리’의 〈살모사의 눈부심〉(문학세상, 2002)을 읽고 쓴 독후감이 있다. “이 세 소설 가운데는 위대한 작품과 허접한 작품이 있다. 〈살모사의 눈부심〉은 위대한 걸작이다.” 〈책벌레〉에 나오는 어린 독서광 팔크는 책을 너무 많이 읽는 아들을 걱정하는 어머니에게 이렇게 말한다. “엄마도 내 성격 알잖아요? 현대적인 쓰레기들에는 털끝만큼도 관심이 없어요.”

〈살모사의 눈부심〉이 그랬듯 21년 만에 우연히 만난 〈어부와 아들〉도 걸작이다. 알라딘 검색으로 맞은 돌발 사태로 원래 쓰고자 했던 독후감은 다음 회로 넘긴다. 그 사이에 〈마지막 섬〉과 〈세레나데〉를 읽고 세 권을 함께 소개하겠다. 독자들도 한 권쯤 읽어보시기를 바란다.

신도와 하나님의 관계를 끊는 범죄

제시 싱걸 지음신해경 옮김메멘토 펴냄
〈손쉬운 해결책〉제시 싱걸 지음신해경 옮김메멘토 펴냄

캐롤린 홀더리드 헤겐의 〈기독교 가정과 교회에서의 성학대〉(대장간, 2023)는 교회 안에서 벌어지는 목회자의 여성 신도에 대한 성폭행과, 교회가 성폭행을 당한 여성에 대처하는 일반적인 관행을 드러낸다. 교회는 지난 한 세대 동안 ‘동성애의 죄’에 대한 포괄적 비난에 엄청난 시간과 돈 그리고 인적 자원을 투자해왔다. 지은이는 말한다. “그 대신에, 교회가 성학대의 죄악을 규명하고 이를 뒷받침하는 사회규범을 바꾸겠다고 다짐했다면 우리는 성학대와 폭력을 근절하려는 노력에 훨씬 큰 진전을 보였을 것이다.”

교회는 성학대 문제가 지나치게 부풀려졌다고 의심하면서 여성이 당한 성폭행을 최신 유행이 만든 이야깃거리나 대중 심리학이 겨냥한 새로운 비난 대상으로 여긴다. 이러한 사고에는 남성 가부장적이면서 여성에게는 무한한 헌신과 순결을 요구하는 중근동의 문화와 성서의 세계관이 반영되어 있다. 일부 목사들은 어린 시절에 원치 않는 부적절한 성경험(가정 내 성폭행)으로 고통을 받는 여성들에게 “문제를 이렇게 크게 키운다”라는 질타와 함께, 롯의 아내(뒤돌아보고 소금 기둥으로 변한 여인)의 성경 이야기를 들면서 “과거를 너무 많이 생각하는 ‘뒤돌아보기’가 합당하지 않다고 경고”하기까지 한다. 성서는 고통을 사소하게 여기며 미화하고, 오랫동안 용서를 하지 않는 행위를 오만의 죄로 규정한다. 이 때문에 성폭행을 입은 여신자는 신앙생활을 계속해야 하는지 갈등에 빠지게 된다.

목사는 다른 사람과 공유하지 않는 정보에 접근할 수 있으며, 신도의 영성을 지배한다. 목사는 이런 위치를 남용하여 여신도를 농락한다. 성폭행을 당한 여신도가 문제를 공론화할 때마다 그 신도는 “착한 사람을 파괴했다”라는 이유로 교회로부터 비난을 받는다. 성폭행은 형법상의 범죄이지만, 목회자의 여신도에 대한 성폭행은 여신도와 하나님과의 관계마저 끊는다는 점에서 훨씬 심각한 범죄다. 교회가 목회자의 성적 학대를 피학대자와 합의한 간통 사건으로 취급하는 것은 세속의 잣대로 영적 문제를 축소하는 것이며, 신자에게 도움이 되지 않는 개념적 틀이다.

기자명 장정일 (소설가) 다른기사 보기 editor@sisain.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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