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이돌 세계에서는 흔히 ‘배우상’이라는 말을 한다. 아이돌보다는 배우에 어울리는 얼굴이라는 뜻이다. 물론 아이돌이라는 직군에 다양한 얼굴이 있으니 한 가지로 묶어서 생각하기 어렵기는 하지만 우리가 흔히 기대하는 모습은 있게 마련이다. 비슷한 식으로 ‘배우 말투’라는 것이 있다면 수호에게서 찾아볼 수 있다.
그의 인터뷰를 보다 보면 어딘지 아이돌보다는 영화배우의 인터뷰 같은 인상을 받곤 한다. 씩씩하고 활달하게 예능감을 얹어 이야기하기보다는 부드럽고 반듯하게 이야기하는 자세 때문이다. 9년간 엑소의 리더로 활동하면서 멤버들을 대변하는 일을 자주 맡아 몸에 밴 것일지도, 혹은 그런 자세 때문에 리더로 자리매김하게 된 것일지도 모른다.
그의 얼굴은 매우 아이돌적이다. ‘귀티’ 어린 그의 말끔한 인상은 소속사인 SM엔터테인먼트가 지향하는 얼굴이다. 앞선 세대의 SM은 보다 직설적으로 매력적인 인간형을 제시하고자 했다. (세월이 흐르면서 다르게 보는 이들도 많아졌지만) 슈퍼주니어가 건실하고 유쾌한 청년들의 모습을, 소녀시대가 부족함 없이 자라 당당한 여성들의 모습을 각각 지향했던 것처럼 말이다. 그에 비해 2013년 데뷔한 엑소는 복잡한 서사 설정 위에서 출발해 어두운 면까지 끌어안고자 했다. 천진한 악동이나 매섭고 날카로운 인상을 더해 좀 더 입체적인 얼굴을 보여준다.
언젠가부터 엑소의 매력은 ‘까리함’으로 정의할 수 있게 되었다. 그 속에서 수호는 이 기획사가 전통적으로 보여주고자 했던, 반듯하고 선량하며 깨끗한 인상을 고수하는 얼굴로 중심을 지켜왔다. 보기에 따라서는 다소 보수적인 가치들이다. 이런 가치를 대표적으로 보여주는 몇몇 인물은 ‘모범생’ 같은 모습이기도 했다. 책임감 강하고 주어진 일에 충실한, ‘미친 자’라는 애정 어린 호칭을 듣는 다른 연예인들처럼 선을 넘나드는 일은 좀처럼 없는 사람 말이다(물론 대중이나 팬이 느끼는 재미는 다층적이라, ‘재미없는’ 사람도 충분히 ‘웃기는 사람’일 수 있다). 수호도 그중 하나다. 팬들도 멤버들도 그에 관해 (잘생겼다는 것 외에) 가장 먼저 하는 말은 다정다감한 엑소의 리더라는 것이다. 그 자신도 팬들에게 너무 반듯하게 대해온 것이 아닌가 한다는 말을 한 적이 있을 정도다.
최근 발매된 첫 솔로 미니앨범 〈자화상〉은 그런 수호의 인간형을 고스란히 느낄 만한 작품이다. 무게감 있는 사운드가 역설적으로 공간을 더 강조하는 록을 중심에 두고 그는 특유의 음색을 마음껏 활용한다. 안정감 있는 미성은 화려하게 감정을 휘두르기보다는 아주 약간의 달콤함이 끝맛으로 감도는 담백함을 지킨다. 그가 쓰고 노래하는 가사 역시, 순진할 정도로 상대에게 집중함으로써 정작 자신의 감정과 거리감을 유지한다.
여전히 그는 주어진 역할에 충실하다. 9년 만의 미니앨범 타이틀 곡 제목부터 그 자신이 제안해 엑소의 구호가 되었다는 ‘사랑하자’에서 비롯됐을 정도다. 유난히 뜨거운 팬덤과 다사다난하기 그지없던 팀 커리어를 겪으며 엑소를 떠받쳐 온 것은, 단지 그의 준수한 외모가 기획사의 전통에 부합하기 때문만은 아닌 듯하다. 그가 표현하는 반듯함은 건조함이 아니라 거리를 지키는 담백함이다. (방 정리를 안 한다고 알려진 것 이외에) 수호라는 인물이 입체감을 드러내는 방식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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