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사IN 양한모

레드벨벳은 지금 케이팝에서 가장 보컬 밸런스가 좋은 팀 중 하나다. 처음에는 ‘레드와 벨벳’으로 나뉜다는 팀의 콘셉트가 당최 무슨 의미인지 모르겠다는 불만도 있었다. 지금도 가만히 생각해보면 알쏭달쏭한 끝맛이 남으면서도 어쨌든 강제로 납득해버리기에 이르렀다. 결국 그것은 어느덧 5년 넘게 종횡무진하며 탁월한 존재감을 발휘한 멤버들의 매력과 목소리였다. 이 5인조 그룹에 충실한 기량과 함께 각기 성격과 매력이 뚜렷한 음색을 지닌 멤버들이 포진해 있다면, 이를 이끄는 것은 슬기의 목소리다. 그리고 이 음색의 조합을 매끄럽게 연결 짓는 것은 바로 웬디다.

웬디는 유달리 폭넓은 음색의 팔레트를 바탕으로 풍부한 표현력을 발휘하는 멤버다. 데뷔곡 ‘행복(Happiness)’에서 공간을 찢어놓을 듯 강렬한 고음으로 “샤인 온 미(Shine on me)”를 뿜어내고, 귀엽고 상큼한 듯 장엄하게 기세를 펼쳐나가는 ‘빨간 맛’에서 가장 위풍당당한 브리지의 “그러니 말해”와, 포근하고 사랑스러운 마지막 “내가 제일 좋아하는 건 여름의 너”를 담당한 것도 웬디다.

시작하자마자 가슴이 철렁해지는 ‘7월7일’에서는 “난 서둘러 잊지 못해”라며 자신의 성격을 선언함과 동시에 까마득하게 안타까운 곡의 감성을 정확히 연결해내는 표현력을 보여준다. ‘피카부’의 후렴으로 이어지는 대목 “아임 파인 파인 파인(I’m fine, fine, fine”에서는 ‘난 멀쩡하다’고 항변하는 고집스러움이 엿보이는가 하면, ‘루키(Rookie)’에서는 노래와 말을 오가는 창법에 (귀여운 느낌의) 해학을 듬뿍 담아낸다. 그런 입체적인 표현력은 가장 최신곡인 ‘사이코(Psycho)’에서도 잘 드러나는데, 늘 싸우면서도 애착이 깊은 연인 관계에 대한 아이러니와 페이소스를 주인공의 입을 맡은 듯이 그려낸다.

그러나 그에게 ‘천의 얼굴을 가진 보컬리스트’라는 말은 어쩐지 어색하다. 워낙 색채가 다양한 레드벨벳의 곡들이 코러스의 상당 부분을 웬디의 목소리로 채워 넣다시피 한다는 점을 생각하면, 그의 ‘범용성’에 시선을 빼앗기지 않을 수 없지만 말이다. 그는 다채로운 음색과 캐릭터 사이를 섬세하고도 정확하게 누비는 보컬리스트다.

똑같이 달콤한 목소리라 해도 에릭 남과의 듀엣곡 ‘봄인가 봐’에서는 웃음기를 한껏 머금은 듯 싱그러운 달콤함을, 존 레전드와 함께한 ‘리튼 인 더 스타(Written in The Stars)’에서는 별빛처럼 다정한 달콤함을 들려주는 식이다. 같은 곡 안에서도 대목과 가사, 멜로디에 따라 세세한 변화를 주어 감성과 맛을 잘 살려내는 것은 물론이다. 특유의 허스키함과 비음을 마치 물감 풀듯이 절묘하게 조절하면서 변화를 주는 그의 음색은, 벨크로처럼 가슴을 긁고 지나가며 청자를 끌어들였다가는 다정다감하게 풀어놓기도, 통쾌한 리듬을 날려대기도 한다.

고전 〈피터 팬〉 이야기에도 웬디라는 이름이 등장한다. 그만큼 친숙하지만, 또한 너무 특별해서 누구도 선뜻 자신의 것으로 택하지 못했던 이름을 그는 차지했다. 디테일에 귀 기울여 들을수록 빛이 나는 가수인 웬디에게는 그것이 과분하지 않다. 최근 터무니없는 사고로 활동을 쉬게 된 그의 쾌유를 빈다. 그늘이나 뒷셈에는 관심을 두지 않을 것만 같은 쾌활한 얼굴로 무대에 돌아올 그를 기다린다.

기자명 미묘 (〈아이돌로지〉 편집장) 다른기사 보기 editor@sisain.co.kr
저작권자 © 시사IN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
이 기사를 공유합니다
관련 기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