친구를 위한 선물을 샀다가 시작된 사업 탁재형 (팟캐스트 <탁PD의 여행수다> 진행자) 유럽의 크리스마스 풍경을 대표하는 것은 ‘크리스마스 마켓’이다. 보통은 마을의 가장 큰 광장에 천막을 치고, 11월 말부터 12월 넷째 주까지 점포가 들어선다. 파는 물건들은 지역별 크리스마스 먹거리를 비롯해, 서로에게 선물하거나 크리스마스트리에 장식하면 좋을 법한 것들까지 다양하다. 원래 독일어를 쓰는 지역에서 처음 시작되었는데 지금은 유럽 대부분의 국가에서 찾아볼 수 있다.크리스마스 마켓의 본고장 독일에서 크리스마스와 관련해 가장 유명한 도시를 하나만 꼽으라고 하면 많은 사람들이 로텐부르크를 말할 것이다. 타우버 강가에 위치한 중경삼림의 한복판에서 탁재형 (팟캐스트 <탁PD의 여행수다> 진행자) 2013년 10월 홍콩에서 첫 숙소를 찾으려던 나는 계속해서 침사추이를 가로지르는 네이선로드의 36번지 주변을 맴맴 돌기만 했다. 분명히 내가 예약한 숙소는 어딘가의 ‘맨션’ 안에 있는 것으로 예약서에 나와 있는데, 이것도 사실 이해가 안 가기는 마찬가지였다. 무슨 호텔이 맨션 안에 있다는 거지? 예약서에 쓰인 주소 주변엔 ‘맨션’처럼 보이는 깔끔한 건물은 눈을 씻고 찾아봐도 보이지 않았기 때문이다. 결국 경찰관에게 도움을 청한 후에야, 내가 찾던 건물이 사실은 그 블록 전체를 차지하고 있는 거대한 성채와도 같은 빌딩임을 깨닫게 ( 삶의 모두를 걸고 ‘사서 고생’ 탁재형 (팟캐스트 <탁PD의 여행수다> 진행자) 길이 13m에 폭 3.9m, 무게는 9t. 20m쯤 되는 마스트(돛대) 끝까지 앵글에 욱여넣으려다 보니 사진 속의 배가 앞으로 헤쳐 나가야 할 파도를 미리 만나기라도 한 듯 기울게 찍히고 말았다. 촬영 날짜는 2014년 10월17일. 이 배(사진)가 한국 최초로 단독 무보급 무기항 세계일주 항해에 나서기 이틀 전이다. 배의 이름은 ‘아라파니’. 순우리말로 ‘바다 달팽이’라는 뜻이다.세계일주 항해라고 하면 오늘은 이 나라, 내일은 저 나라를 마음대로 주유하는 여유롭고 낭만적인 모습을 그려보는 사람이 많을 것이다. 별이 가득한 밤바다를 불면의 밤에 달을 보았다 탁재형 (팟캐스트 <탁PD의 여행수다> 진행자) 히말라야를 찾는 사람들에게 신이 고루 선사하는 것이 있다. 고산증이다. 고산증은 공평하다. 건장한 사람, 왜소한 사람, 젊은 사람, 나이 든 사람을 가리지 않는다. 하지만 그 공평함은 기계적인 것이 아니다. 꼭 남자보다 여자에게 먼저 온다는 법도 없고, 한창때인 청년이라 하여 노인보다 반드시 나중에 온다는 법도 없다. 그저 찾아올 고도가 되면 찾아오는 것이 고산증이다. 그런 면에서 고산증은 ‘운명’의 영역에 걸쳐 있는 듯하다. 늦게 오는 것에 감사하되, 나의 특별한 능력 때문이라 여겨 교만해질 이유는 없는.산소의 농도는 고도가 높아 모든 일상을 마지막처럼 탁재형 (팟캐스트 <탁PD의 여행수다> 진행자) 참 아무렇게나 찍었다. 렌즈를 광각으로 바꿔 끼울 생각도 없이, 사람들이 좀 사라지길 기다릴 생각도 없이 무심하게 셔터를 누른 티가 팍팍 난다. 하지만 이 사진을 찍고 나서 9개월 후 사진 속 건물이 불에 타 사라지고, 더 나아가 일본이라는 나라를 언제 다시 가게 될지 알 수 없어진다는 사실을 미리 알았다면, 저렇게 덜렁 셔터 한 번을 누른 채 발걸음을 돌릴 수 있었을까.슈리성(首里城)은 오키나와가 ‘류큐’라는 이름으로 불리던 시절부터 섬을 대표하는 상징이자 섬 주민들의 자부심이었다. 13세기에 처음 건축된 이후 류큐 국왕의 즉위를 무지개가 뜬 것은 그때였다 탁재형 (팟캐스트 <탁PD의 여행수다> 진행자) 그 산을 그대로 내려와버렸으면, 내 인생에 산에 갈 일은 다시 없었을 것이다. 그렇지 않아도 군 시절 대대장으로부터 입은 내상(1월2일 단독 군장에 소총까지 메고 치악산 정상을 가자고 했다) 때문에 산을 별로 좋아하지 않았던 터인데, 해외의 산을 전문으로 다루는 프로그램의 현장 PD를 맡은 것부터가 미친 짓이었다. ‘안자일렌’이 뭔지, ‘압자일렌’이 뭔지도 모르던 2006년 뉴질랜드에서도 험하기로 소문난 쿡산(마운트쿡, 3724m)의 2박3일짜리 볼패스(Ball Pass) 코스를 등반하게 된 것이다.마운트쿡은 일찍이 에베레스트를 처 팬데믹 이동 제한으로 맑아진 하늘 탁재형 (팟캐스트 <탁PD의 여행수다> 진행자) 몽골 여행 일정은 그믐에 맞춰 잡는 것이 보통이다. 바다가 있어서 조석간만의 차이를 고려해야 하는 것도 아닌데 그렇게 하는 이유는 바로, 많은 사람이 몽골 여행에 걸고 있는 다음과 같은 기대 때문이다.“별이불을 덮고 자보자!”그만큼 몽골의 밤하늘은 하늘을 가득 메운 별로 명성이 높다. 사막의 밤. 천막 밖의 어둠과 맞서는 유일한 광원이라고 할 수 있는 달빛마저 사그라드는 그믐 때가 되면, 광막한 공간을 끝없이 채워나가는 별빛의 잔치가 도시에서 온 여행자들을 압도한다. 그 모습을 한번 가슴에 담은 사람들은 무엇에 홀리기라도 한 듯, 파라솔, 아이스박스 그리고 ‘달콤한 고립’ 탁재형 (팟캐스트 <탁PD의 여행수다> 진행자) 누구나 공평하게 떠나지 못하는 시대다. 일견 해외여행은 종말을 맞이한 것처럼 보인다. 우리는 다시금 귀에도 생경한 이름을 가진 땅으로 두근거림을 안고 떠날 수 있을 것인가? 이럴 때일수록 몇몇 장면은 더욱 선명하게 떠오른다. 그런 것들을 꺼내 보는 것은 지금보다 바지 둘레가 5인치는 작았을 때의 사진을 다시 보는 것과 같은 아련함 섞인 위로를 준다. 그때 그 시간, 찬란했던 한순간을 기억하는 것만으로 현실이라는 사막 위에 다시금 발자국을 내며 나아갈 용기를 얻게 된다.로스로케스(Los Roques). 이곳이 어디에 붙어 있는지 아는 최초의 팬데믹 ‘스페인 독감의 교훈’ 탁재형 (팟캐스트 <탁PD의 여행수다> 진행자) 지난 세기부터 오늘날에 이르는 감염병의 연대기에는 한 시대를 풍미한 질병의 목록이 빼곡하다. 코로나 이전에 신종플루가 있었고, 그 이전에 메르스 (MERS)가, 사스(SARS)가, 에볼라가, 홍콩 독감이 있었다. 그리고 그 모든 것의 서막에는 스페인 독감이 있었다. 1918년 시작되어 1920년 그 기세가 수그러들 때까지, 이 바이러스성 전염병은 당시 세계 인구의 3분의 1에 해당하는 5억명을 감염시켰고 5000만~1억명의 목숨을 앗아갔다.시작은 명확하지 않다. 혹자는 프랑스에 주둔하던 영국군의 야전병원을, 혹자는 미국의 군사기지를 그가 만든 ‘팜플레무스 식물원’에 온다면… 탁재형 (팟캐스트 <탁PD의 여행수다> 진행자) 20대를 온통 투자했던 모험은 처참한 실패로 끝났다. 말 한마디 통하지 않는 열대의 정글에서, 꿈을 이루기 위해 동분서주했지만 남은 것이라곤 성치 않은 몸과 아픈 기억들뿐이었다. 다행히 중년 운은 그리 나쁘지 않아, 고향에서 양갓집 규수와 결혼해 가정을 꾸리고 집도 마련했다. 예상치 않은 계기로 사회적 명성과 안정적인 수입도 얻게 되었다. 이런 상황이라면 다시금 고향을 떠나 지구 반대편으로 향할 사람은 그리 많지 않을 것이다. 하지만 지난 글에서 만신창이가 되어 고국으로 향했던 피에르 푸아브르는 달랐다.1756년 프랑스로 돌아온 그 ‘후추’라 불린 이 사람 향신료 독점을 깨다 탁재형 (팟캐스트 <탁PD의 여행수다> 진행자) ‘존버’라는 말이 있다. ‘존재를 걸고 버티다’라는 의미다. 요즘처럼 미증유의 위기가 전 세계적으로 지속될 때, 저마다 ‘존버’하는 것 외엔 답이 없다. 이것을 해낸 것만으로도, 우리 삶은 충분히 보상을 받기도 한다. 영원할 것만 같던 네덜란드의 향신료 독점 체제에 구멍을 내고, 결국에는 무너뜨린 남자의 삶도 이를 증명하는 좋은 예다.피에르 푸아브르(1719~1786)는 프랑스 리옹에서 잡화상의 아들로 태어났다. 향신료와 관련된 일을 한 것은 어쩌면 운명이었다. 그의 성 ‘푸아브르’는 프랑스어로 ‘후추’를 의미한다. 그는 프랑스 외 잔인하고 악랄했던 대항해 시대 탁재형 (팟캐스트 <탁PD의 여행수다> 진행자) 17세기 중반 네덜란드인들이 후발주자임에도 불구하고 향신료 제도(현재의 인도네시아 몰루카 제도)에서 포르투갈을 누르고 독점적 지위를 차지할 수 있었던 것은, 그들의 합리적인 비즈니스 마인드에 힘입은 바가 컸다. 포르투갈은 원주민들을 야만인 취급하며 향신료를 거저나 다름없는 가격에 빼앗고, 그들을 가톨릭으로 개종시키는 데 열심이었다. 반면 네덜란드인들은 현지인 군주(술탄)들을 상대로 포르투갈보다 더 나은 향신료 가격을 제시했고, 가톨릭 선교 따위는 관심이 없었다. 원가 대비 20배 이익을 볼 수 있는 향신료가 생산되는 섬들은 이렇게 17세기 주식회사 네덜란드 동인도회사 탁재형 (팟캐스트 <탁PD의 여행수다> 진행자) 네덜란드의 아시아 진출은 16세기 말이 되면서 본격화한다. 바스쿠 다가마가 포르투갈-인도 직항로를 열고, 아폰수 드 알부케르크가 1511년 향신료 무역의 요충지 말라카(현재의 말레이시아 믈라카)를 점령한 이래, ‘포르투갈령 인디아’는 유럽으로 공급되는 향신료 물량을 독점해 천문학적인 수익을 올렸다. 13세기부터 이 지역에 전파되기 시작한 이슬람교가 15세기 들어 지배층의 종교로 확고하게 자리 잡고, 이를 구심점 삼은 토착 세력들이 연합전선을 형성해 포르투갈 함대를 습격하는 일이 잦아졌다. 네덜란드의 진출은 이 타이밍에 맞춰 이뤄졌다 네덜란드 일으킨 염장 청어의 힘 탁재형 (팟캐스트 <탁PD의 여행수다> 진행자) ‘기니의 영주, 정복왕, 항해왕, 에티오피아·아라비아·페르시아·인도의 무역왕.’ 포르투갈의 마누엘 1세가 1499년 바스쿠 다가마의 인도항로 개척 직후 유럽의 왕들에게 보낸 서한에 표기한 공식 칭호다. 포르투갈이 이슬람 상인들을 건너뛰고 인도에서 향신료를 직수입(이라 쓰고 수탈이라 읽는다)하는 데 성공한 것은 유럽 사회에 충격을 안겼다. 얼마 지나지 않아, 포르투갈이 아득히 먼 인도의 식민지를 완벽히 통제하는 데는 그다지 철저하지도, 강력하지도 못했다는 것을 누구나 알게 되었다. 감시망을 피해 새어나오는 향신료 물량이 정식 루트를 르네상스 시대의 보물섬 찾기 탁재형 (팟캐스트 〈탁PD의 여행수다〉 진행자) 16세기 초, 바스쿠 다가마와 알바레스 카브랄의 원정으로 인도 서해안에 대한 지배를 확고히 한 포르투갈은 거기서 멈출 생각이 없었다. 해마다 후속 함대를 동쪽으로 파견했다. 이미 진귀한 향신료가 모여드는 집산지인 캘리컷과 스리랑카, 말라카(현 믈라카)를 차지했지만 성에 차지 않았다. 향신료 중의 향신료로 여겨지며 가장 비싼 가격에 거래되는 정향(Clove)과 육두구(Nutmeg)의 원산지를 찾지 못했기 때문이다.육두구는 중세 이후 유럽인들의 입맛을 사로잡으며 귀족들의 식탁에 올랐다. 자두 크기의 열매에 타원형 씨앗이 들어 있는데, 후추제국과 식료품의 왕 탁재형 (팟캐스트 〈탁PD의 여행수다〉 진행자) 1498년 11월, 바스쿠 다가마는 인도를 떠났다. 인도 서해안 무역도시 캘리컷의 군주 자모린이 그들을 놓아주지 않을 것이라는 불안감 속에서 몇 달을 보낸 뒤였다. 자모린은 백인들에게 어느 정도의 향신료를 구입해 돌아갈 수 있도록 관대함을 베풀었다. 향신료의 품질이 최상급은 아니었다. 포르투갈인에게는 문제 될 게 없었다. 그들이 지난 세기 동안 찾아 헤맨, 약속의 땅에 다녀온 것을 입증하는 증거였기 때문이다.이 인도 원정대가 돌아온 뒤 1500년 3월, 32세의 젊은 사령관 페드루 알바레스 카브랄이 지휘하는 13척 규모의 함대가 포 15세기 탐험가의 인도 가는 길 탁재형 (팟캐스트 〈탁PD의 여행수다〉 진행자) 군중이 집으로 데려온 백인을 본 북아프리카 출신 상인은 놀라서 말을 잇지 못했다. 한동안 그를 물끄러미 바라보다가 건넨 첫마디가 “빌어먹을, 당신네들이 여기까지 어떻게 온 거지?”였다. 1498년 5월, 인도 서해안의 무역항 캘리컷에서 벌어진 일이다.백인은 포르투갈 함대의 일원인 죄수였다. ‘데그레다두(Degredado)’라고 불렸던 이들은 낯선 세계를 탐험하는 장거리 항해에서, 오늘날의 탐사용 로봇 같은 역할을 맡았다. 본국에서 사형 또는 추방에 해당하는 죄를 지은 이들 중, 학식이 있고 건강한 이들을 골라 함대에서 복무하게 했다 ‘낙원의 씨앗’ 찾아 바다로 바다로 탁재형 (팟캐스트 〈탁PD의 여행수다〉 진행자) 왕자는 바다에 대한 이야기라면 누구보다 좋아했다. 아프리카에 대해서도 어린 시절부터 동경을 키워오고 있었다. 1415년, 지금의 지브롤터와 마주 보고 있는 세우타 항구가 포르투갈 차지가 되었을 때, 꿈은 많지만 직접 몸을 쓰는 일은 싫어하는 왕자는 세우타의 총독으로 부임했다. 그는 바로 ‘항해 왕자’로 알려진 엔히크 왕자(1394~1460)다.젊은 시절부터 즐겨 먹던 마니게트(후추 맛이 나는 서아프리카 원산의 향신료)의 향기는 그를 미지의 세계로 이끌었다. 어디에서 자라는지, 어떤 과정을 통해 서유럽까지 오는지 알 길이 없었던 이 마겐브로트 향 속에 담긴 대양의 역사 탁재형 (팟캐스트 〈탁PD의 여행수다〉 진행자) 한입 크기의 조각으로 잘려 있는 빵은 볼품없다. 입안에 넣는 순간, 무어라 말할 수 없는 이국적인 향기가 풍겨온다. 혀를 감싸는 초콜릿의 진한 단맛과 어우러져, 오래 지나도록 가시지 않는 여운을 남긴다. 이 맛과 향기는, 독일과 스위스 사람들에게는 크리스마스 시즌이 왔음을 의미한다. 마겐브로트 (Magenbrot)라는 빵 이야기다.스위스의 아름다운 호반 도시 루체른의 가을은 로체르너 메에스(Lozärner Määs)라는 축제와 함께 시작된다. 크리스마스까지 이어지는 이 축제의 상징은 호반을 따라 늘어선 임시 상점들이다. 차가워진 날 끝나지 않는 대마도 수난사 탁재형 (팟캐스트 〈탁PD의 여행수다〉 진행자) 대마도(쓰시마섬)는 일본 본토보다 한반도와 거리가 더 가까운 섬이다. 규슈까지는 82㎞이지만 부산까지 거리는 50㎞가 채 안 된다. 날씨가 좋을 때면 부산에서 육안으로 대마도를 볼 수 있다. 부산항에서 불꽃놀이라도 벌어지는 날에는 대마도에서 폭죽 불빛에 비친 광안대교까지 볼 수 있다고 한다. 이를 위해 아예 ‘한국 전망대’라는 망루까지 세워 관광 상품으로 홍보하고 있을 정도다.이렇게 한국에서 가깝다 보니 한국 관광객이 많고 지역경제 상당 부분도 그에 의존한다. 대마도는 최근 일본 불매운동의 성패 여부를 가름하는 바로미터 같은 존재가 더보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