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P Photo스리랑카 시나몬 축제 모습.

한입 크기의 조각으로 잘려 있는 빵은 볼품없다. 입안에 넣는 순간, 무어라 말할 수 없는 이국적인 향기가 풍겨온다. 혀를 감싸는 초콜릿의 진한 단맛과 어우러져, 오래 지나도록 가시지 않는 여운을 남긴다. 이 맛과 향기는, 독일과 스위스 사람들에게는 크리스마스 시즌이 왔음을 의미한다. 마겐브로트 (Magenbrot)라는 빵 이야기다.

스위스의 아름다운 호반 도시 루체른의 가을은 로체르너 메에스(Lozärner Määs)라는 축제와 함께 시작된다. 크리스마스까지 이어지는 이 축제의 상징은 호반을 따라 늘어선 임시 상점들이다. 차가워진 날씨 때문에 사람들은 약한 불에 뭉근히 데운 와인인 글뤼바인과 함께 오븐에서 갓 나온 마겐브로트를 찾는다. 이 둘의 공통점은 이국적인 향이다. 그 향의 주인공은 정향(Clove)과 시나몬이다.

군주나 부호만 즐긴 ‘사치품’ 정향과 시나몬

3700여 년 전에 이미, 소아시아 지역에서 이곳에 이르는 무역망이 갖춰져 있었다. 지금은 시리아·이스라엘·레바논 같은 지역이 분쟁과 테러의 상징처럼 여겨지지만, 유럽에서 아프리카 대륙을 우회해 인도로 향하는 대양 항로가 개척된 15세기 전까지만 해도 아시아의 물건이 유럽으로 가기 위해 거쳐야 하는 무역 기지였다. 시리아 항구에서 배에 실린 정향은 지중해를 가로질러 그리스, 나아가 로마인들의 식탁에까지 올랐다.

시나몬 역시 일찍부터 역사에 등장하는 아시아의 향신료다. 지금의 스리랑카에 해당하는 실론 섬이 원산지인 이 향기로운 나무껍질은 성경에도 언급된다. 〈잠언〉에는 침실에 시나몬 가루를 뿌려 그 향기로 남성을 유혹하는 여성의 이야기가 나온다.

유럽 사람들이 아시아의 향신료를 사용한 역사는 수천 년을 거슬러 올라가지만 일반 서민들이 먹고 마시는 빵과 포도주에까지 사용할 수 있게 된 것은 채 200년이 되지 않는다. 17세기까지만 해도 유럽에서 정향의 가격은 같은 무게의 금값과 맞먹었다. 인도네시아-아랍-소아시아- 지중해(베네치아)-서유럽의 루트를 거치는 동안, 향신료의 가격은 산지에서보다 수십 배 이상 올랐다. 근대 이전 유럽에서 정향과 시나몬은 군주나 부호들만 즐길 수 있는 사치품이었고, 어떤 품질의 어느 향신료를 대접하는가가 그 사람의 위상을 결정하는 척도로 사용될 정도였다. 이 진귀하고 향기로운 꽃봉오리와 나무껍질의 생산지를 독차지하기 위해, 남들보다 좀 더 저렴한 가격으로 판매할 수 있는 루트를 찾기 위해 많은 사람들이 망망대해로 향했다.

15세기에서 16세기에 이르는, 향신료 직거래 루트 개척의 초반부에 두각을 나타냈던 나라는 포르투갈이었다. 유럽에서도 스페인과 더불어 가장 서쪽 끝에 위치한 이 나라는, 기존 지중해 무역 루트에서는 소외되어 변방의 설움을 맛봐오던 터였다. 북아프리카에서 건너와 이베리아반도에 800년간 머물렀던 이슬람교도들을 몰아내기 위한 전쟁이 대대적으로 벌어졌던 14세기 혼란이 어느 정도 수습되자, 포르투갈은 ‘항해 왕자’로 알려진 엔히크 드 아비스(1394~1460) 왕자를 중심으로 본격적인 대양 진출 채비에 나선다. 그는 자신이 보낸 함대가 인도에 도달하는 것을 보기 전에 눈을 감지만, 그의 뜻을 이은 바스쿠 다가마(1460~1524)가 1497년 유럽인으로는 처음으로 아프리카 최남단을 돌아 인도의 캘리컷에 도착했다. 향신료의 생산지를 독점하는 첫걸음을 내디딘 것이다. 그 뒤를 스페인과 네덜란드, 프랑스가 추격하고, 태평양을 피로 물들이는 전쟁과 향신료 종자를 빼내기 위한 첩보전이 이어졌다. 하지만 원산지 이외에서도 향신료를 생산해내는 식물학의 발달과 함께 향신료의 황금시대는 저물어간다.

기자명 탁재형 (팟캐스트 〈탁PD의 여행수다〉 진행자) 다른기사 보기 editor@sisain.co.kr
저작권자 © 시사IN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
이 기사를 공유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