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지영 그림
ⓒ이지영 그림

블라디미르 나보코프는 러시아어와 영어로 작품을 쓴 이중언어 작가다. 그가 두 개 언어로 작품을 쓰게 된 이유는 1917년 러시아혁명이 일어나면서 부모를 따라 망명길에 올랐기 때문이다. 콘스탄티노플, 런던, 베를린, 파리를 떠돌아다녔던 그는 ‘V. 시린’이라는 필명으로 시, 희곡, 소설, 평론을 발표하면서 ‘러시아 에미그레 사회’(러시아 망명객 사회)에서 유명해졌다. 파리 생활을 끝으로 1940년 5월 미국에 정착한 그는 여러 유명 대학에서 러시아·유럽 문학을 강의하면서 영어로 소설을 쓰기 시작했다. 1958년 간신히 출간된 〈롤리타〉가 성공을 거두자 그는 약 20년간의 미국생활을 미련 없이 청산했다.

〈프닌〉(문학과지성사, 2023)은 미국의 출판사 네 군데에서 퇴짜를 맞은 〈롤리타〉가 1955년 프랑스에서 먼저 선보인 다음, 미국 출간을 위해 애쓰는 막간에 쓰였다. 작중의 프닌은 고국을 등지고 미국으로 망명한 러시아 지식인으로 미국의 대학에 적응하지 못하고 퇴출되고 마는데, 그와 달리 대학에 쉽게 자리를 잡았던 나보코프는 프닌의 일화를 통해 세상에 드러나지 않은 자신의 역경을 투사한 것으로 보인다. 이 작품을 줄곧 이끌어가던 화자(‘나’)는 마지막 장인 7장에 가서 나보코프 그 자신임이 밝혀지는데, 프닌을 밀어낸 자리에 채용된 러시아 문학 교수가 바로 그이다. 두 사람은 혁명 전의 러시아에서부터 서로 알던 사이였지만, 이국에서 교수 자리를 놓고 경합한 것이다(러시아 망명 지식인 사회에서 이런 일은 흔했을 것이다).

미국 역사는 유럽과 단절하면서 시작했다. 하지만 나보코프는 유럽의 교양과 결별하지 않았다. 프닌의 입을 빌려, “재즈, 재즈, 재즈 없이는 못 살겠지”라고 미국인을 조롱하는 나보코프는 반미국적인 작가였다(그러는 동시에 철저한 반공주의자였다). 하지만 1960년 스위스 몽트뢰로 이주한 다음 〈롤리타〉의 인세로 평생 호텔에서 주거했던 그는 계속해서 영어로만 작품을 썼다. 여러 대담에서 자신을 ‘미국인일 뿐 아니라, 미국 작가’라고 강변해온 그가 미국을 좋아한 이유는 이랬다. ‘나는 미국에서 최상의 독자를 찾았다.’

기독교가 운영하는 행려병자 요양원이 무대인 김솔의 〈사랑의 위대한 승리일 뿐〉(안온북스, 2023)은 홀수 장(1, 3, 5장)과 짝수 장(2, 4, 6장)으로 나뉘어 이야기가 전개된다. 홀수 장의 화자는 ‘파블로’다. 원래 교도관이었던 그는 범죄자들의 흥미진진한 이야기에 매료되었다. “그들 중에는 예술가로 분류돼야 마땅한 자들도 많았는데, 범상치 않은 예술이 동시대인들에게 범죄로 간주될 수밖에 없다는 사실을 그때 이해했죠.” 죄수들의 편의를 봐주다가 10년 동안 다니던 직장에서 해고된 그는 모험을 찾아 중남미로 떠난다.

파블로는 3년 동안 중남미를 여행하면서 도둑질만으로 체류 비용을 마련했는데, 그가 벌인 도둑질과 거짓말이 홀수 장의 중요한 원천이다. 세계의 부조리에 상처받은 독자들은 소설을 읽으며 권선징악을 통해 위로받는다. 그러나 스페인에서 유래한 피카레스크(악동 소설) 양식은 선악, 교훈, 성장, 구원과 거리가 멀다. 이 양식에서는 타락한 인물을 단죄할 도덕적 주체가 없다. 이 세계에는 타락한 가치들에 굴복하는 인물만이 있으며, 그들의 지혜는 행복한 삶이나 도덕적 전체성이 아닌 또 다른 분별력을 향한다. 생존하는 법, 이익을 꾀하는 법, 처벌을 피하는 법. 이 양식이 낳은 최선의 결말은 교수형을 모면하는 꾀돌이의 임기응변이며 명예를 바란 바 없는 까불이가 현상 유지에 만족하는 것이다.

〈사랑의 위대한 승리일 뿐〉에 나오는 요양원은 도덕적 주체가 없는 현실을 상징한다. 먼저 원장 신부는 중증환자들을 교보재로 활용해 요양원을 호스피스 양성 교육장으로 변질시키려 한다. 또 입원한 행려병자들은 의무적으로 장기기증 각서를 쓰게 되어 있는데, 원장 신부는 자의적인 뇌사 판정에 관여하여 장기 판매를 활성화하려 한다. 도시의 권력자들 역시 요양원을 필요로 한다. “소문에 따르면, 원장 신부는 사회 고위층 인사들에게 일정한 후원금을 받는 대신 그들의 자녀들이 이곳에서 봉사했다는 증명서를 허위로 발급해준다더군요. 그 증명서를 가지고 아이들은 유명 대학에 입학하거나 병역 문제를 해결할 수 있다죠.” 짝수 장은 독자들 몫으로 남겨둔다.

모성과 돌봄이 여성의 몫이라는 사회규범

〈엘레나는 알고 있다〉(비채, 2023)를 쓴 클라우디아 피녜이로는 아르헨티나에서 이름난 추리소설 작가다. 석 달 전 비오는 날 성당 종루에서 목매단 리타(44세)의 죽음으로 시작하는 이 소설의 도입부는 영락없는 추리소설이다. 경찰은 그녀의 죽음을 자살로 결론짓고 수사를 종결했으나, 리타의 어머니 엘레나(63세)는 승복하지 못한다. 엘레나가 딸이 자살하지 않았다고 철석같이 믿는 근거는 리타가 어릴 때부터 번개를 무서워했다는 점뿐이다. 아버지가 어린 시절 딸에게 성당의 십자가가 번개를 끌어당긴다는 것을 가르쳐준 이래로 리타는 비바람 치는 날이면 성당 근처에 얼씬도 하지 않았다.

엘레나는 직접 살인자(범인)를 찾기로 한다. 하지만 그녀는 빠른 속도로 진행 중인 파킨슨병을 앓고 있어서 스스로 할 수 있는 신체 동작이 극도로 제한되어 있다(그녀는 조만간 누군가의 돌봄 없이는 아무것도 하지 못하는 아기가 될 것이다). 그래서 그녀는 자신을 도와줄 조력자를 찾게 된다. 대개의 추리소설이 범인을 찾는다면, 이 소설은 탐정(엘레나)이 조력자를 찾아나서는 하루 동안의 여정으로 이루어졌다. 그녀가 선택한 조력자는 자신이 사는 곳에서 꽤 먼 도시에 살고 있는 이사벨이다.

이사벨은 20년 전, 낙태(임신중지)를 하기 위해 엘레나와 리타 모녀가 사는 도시에 온 적이 있다. 낙태 전문 병원 앞에서 구토를 하는 이사벨을 본 리타는 오로지 낙태를 막을 신념으로 이사벨을 억지로 집으로 데려온 다음, 어머니와 함께 이사벨을 택시에 태워 그녀가 살던 도시의 집으로 데려다주었다. 엘레나는 이사벨이 그들 모녀가 베푼 20년 전의 헌신을 기억하고 있으리라 믿으면서, 리타의 살인범 찾는 일을 도와달라고 부탁했다. 사정을 듣고 난 이사벨은 지난 20년 동안 마음속으로 리타를 매일 죽여왔다면서 이렇게 말한다. “저는 여자가 낙태를 하고 나면 어떤 기분이 드는지 잘 몰라요. 하지만 절대로 엄마가 되고 싶지 않던 여자가 엄마가 되면 어떤 기분이 드는지 잘 알아요.” 억지로 아이를 낳아 기르게 된 이사벨은 지금, 모성과 돌봄이 곧 여성이라고 말하는 것은 사회규범에 지나지 않으며, 리타에게 그것은 비보다 더 무서운 일이었다고 말하고 있다(리타는 가로늦게 그 사실을 알게 되었다).

기자명 장정일 (소설가) 다른기사 보기 editor@sisain.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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