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리들

케이트 비턴 지음, 김희진 옮김, 김영사 펴냄

“인생에 금이 간다는 걸 알면서 왜 여기에 올까요?”

캐나다 앨버타의 한 오일샌드 개발 현장에 있던 큰 연못에 죽은 오리 수백 마리가 떠올랐다. 석유를 채굴하는 과정에서 유독성 물질을 걸러낸 물을 그대로 흘려보낸 것이 집단 폐사의 원인이었다. 이야기의 끝에 다다르면, 떼죽음 당한 오리들은 이곳 ‘싱크루트 오일샌드’ 공장에서 일하는 노동자들에 대한 비유임을 깨닫게 된다. 가난이 싫어서 공장으로 온 ‘평범한’ 사람들이 가난보다 더 서늘한 노동권 침해와 성폭력, 산업재해, 환경파괴를 겪으며 무너져 내리는 모습을 담담히 그려낸다. 이 그래픽 노블이 더욱 빛나는 이유는 작가 본인의 실제 경험을 담은 회고록이라는 데 있다.

 

기억·서사

오카 마리 지음, 김병구 옮김, 교유서가 펴냄

“그 여성이 ‘떠올린다’라고 할 때 그녀는 구체적으로 무엇을 떠올리는 것일까.”

말과 글이 충분하지 않은 순간들이 있다. 말과 글 안으로 경험과 상황을 욱여넣을 때마다 “우리가 가진 언어의 윤곽 속에 완전히 담기지 않은 채 넘쳐흐르는 사건의 조각” 안에 더 많은 진실이 숨어 있을지 모른다고 생각하게 된다. 그럼에도 기억은 말해져야만 공유될 수 있다. 그러나 그것은 ‘같은’ 것일까. 그것이 불가능하다면 우리는 기억을 어떻게 나누어 가질 수 있을까. 기억하는 타자가 없다는 것은 ‘사라진 역사’가 된다는 의미이기도 하다. 기억의 정치학을 위한 윤리적 고민과 치열한 탐문이 꼬리를 물고 이어진다. 책 바깥에서 세월호 참사와 이태원 참사로 대표되는 수많은 참사를, 참사가 우리 몸에 새긴 트라우마를 어쩔 수 없이 자꾸만 겹쳐보게 된다.

 

공화주의자 노무현

장은주 지음, 피어나 펴냄

“공동선의 정치는 단순한 타협의 정치, 산술적 균형의 정치가 아니다.”

대한민국의 국체는 민주‘공화’국이다. 그러나 공화주의만큼 모호하고 남발되는 개념도 드물다. ‘군주가 아니라 시민권자들이 공동으로 주권을 갖는 체제’라고 대충 정의되지만, 극좌에서 극우까지 모두가 공화주의자로 자처하는 현실을 보면 그렇다. 정치철학자인 저자는 ‘민주적 공화주의’라는 틀 속에서 노무현 전 대통령의 정치적 행적과 사상을 재구성하며 그 의미를 추적한다. 그에 따르면 노 전 대통령은 스스로를 공화주의자로 인식하진 않았으나 정치적 삶 속에서 자신도 모르는 사이에 공화주의를 생각하고 실천한 사람이다. 저자는 노무현의 ‘자각되지 않은 공화주의’를 실마리로 공화주의를 재해석하면서 대안적인 민주적 헌정 체제를 모색한다.

 

미래를 먼저 경험했습니다.

김영화 지음, 메멘토 펴냄

“이주민과 1년을 보낸 한국인의 후기라면 이보다 신뢰할 만한 ‘근거’가 있을까?”

2021년 아프간 특별기여자들을 한국으로 이송하는 작전에는 ‘미라클’이라는 이름이 붙었다. 탈레반이 점령한 카불에서 400여 명을 국외로 대피시키는 일은 불가능에 가까워 보였기 때문이다. 여기까지였다면 이 이야기는 무용담에 그쳤을 것이다. 느닷없이 나타난 난민 이웃은 기적보다 충격에 가까웠다. 학부모를 비롯해 기존 주민들은 거세게 반발했다. 한국 사회에서 점점 더 빈번하고 격렬해지는 충돌이다. 울산시 동구는 갈등을 피하거나 침묵하지 않았다는 점에서 달랐다. 이견을 적대시하지 않으며 합의점을 찾으려는 지역사회의 노력은 전에 없던 미래를 만들어냈다. 저자는 ‘갈등의 쓸모’를 배웠다고 말한다. 아프간 이주민들의 정착 1년, 기적을 현실로 바꿔낸 사람들의 경험을 촘촘하게 엮어냈다.

 

중국인 문제

메이 나이 지음, 안효상 옮김, 책과함께 펴냄

“우리 시대에 인종주의와 싸우고 이를 근절할 수 있는 잠재력을 이해하는 데 도움이 되기를 바란다.”

원제는 ‘The Chinese Question’이다. 19세기 미국인들은 까다로운 사회문제를 ‘Question’이라 불렀다. 골드러시 당시 많은 중국인이 미국, 오스트레일리아 등으로 이주하면서 유럽, 미국인들과 첫 ‘대규모 접촉’을 하게 된다. 그때 떠오른 질문이다. ‘그들이 우리 사회의 시민이 되기에 적합한가?’ 이 질문은 곧 이민 제한과 시민권 배제라는 인종주의 정치로 이어지게 되었고 다른 한편 중국이라는 국가정체성에도 영향을 미쳤다. 저자가 중국계 미국인이자 이주를 연구한 역사학자라는 점에서 더욱 의미 있는 기록이다. 미·중 갈등의 국제정치, 전 지구적 자본주의, 그리고 인종주의가 어떻게 연결되어왔는지 방대한 자료로 드러낸다.

 

판결 너머 자유

김영란 지음, 창비 펴냄

“공적 이성의 표본인 법원이 실패해서는 안 되기 때문이다.”

저자는 현재의 한국 사회를 이렇게 진단한다. “토론은 없이 표결만 남은 사회로서 동조자를 끌어들여서 다수를 확보하는 것만이 중요한 사회로 가고 있다.” 이 분열의 시대는 공적 이성의 표본이자 최후의 보루인 법원마저 향하고 있다. 상반된 신념들은 공존할 수 있을까? 대법관 출신인 저자가 롤스의 정치적 자유주의를 이정표 삼아 대법원 전원합의체 판결을 되짚어보는 여정을 담았다. 그곳엔 가장 ‘올바른 결론’을 내리기 위한 토론 경로가 고스란히 제시되기 때문이다. 전교조 법외노조 사건, 양심적 병역거부, 성전환자 성별정정 등을 다룬 판결문을 분석해 다원주의 사회의 쓸모와 효용을 묻는다. 소모적인 편 가르기에 지친 이들에게 권한다.

기자명 시사IN 편집국 다른기사 보기 editor@sisain.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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