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 수의사가 축산농가에서 소에게 백신접종을 하고 있다.ⓒ연합뉴스
한 수의사가 축산농가에서 소에게 백신접종을 하고 있다.ⓒ연합뉴스

노동 사건을 하다 보면 ‘회사가 참 너무했다’라는 생각이 종종 든다. 특히 오랜 시간 제 몸 상해가며 헌신적으로 일해온 노동자를 회사가 함부로 대할 때, 회사의 그러한 태도가 ‘부당하다’를 넘어 ‘불법’이라는 판단을 받아내는 것에 어떤 사명감을 느낀다. 수의사 A 사건도 그랬다.

A는 어느 지역 축협에 전문 계약직으로 고용되었다. 축협이 운영하는 동물병원에서 근무하며 조합원 농가에 출장도 다녀야 했다. 특히 출장 업무가 힘들었다고 한다. 1400여 곳 축사에서 키우는 소 5200여 마리를 살폈다. 거세 시술이나 임신 진단을 할 때는 소한테 차이고 밟히는 위험도 감수해야 했다. 원래는 두세 명이 함께 해야 할 일을 혼자서 다 했다. 채용 공고를 여러 번 내도 지원자가 없었기 때문이다. 급여에 비해 일이 힘들다는 인식이 있었던 모양이다.

그렇게 3년 가까이 버티다 결국 사고가 났다. 조합원 축사에서 소에 들이받혀 공중에 붕 떴다 떨어지고 말았다. 척추에 장애가 남는 큰 사고였다. 9개월여 병원 치료를 마치고 복귀하자, 축협은 그다음 해 A에게 ‘근로계약 갱신 거절’ 통지를 날렸다(A는 1년마다 재계약을 했다). 형식상으로는 ‘근무평정 결과가 좋지 않다는 이유’를 댔지만, 실질적인 이유는 ‘몸이 성치 않아 더 이상 위험한 현장 업무에 맞지 않는다’는 것이었다. A는 부당해고를 주장하며 축협과 법정 다툼을 벌여야 했다.

1심 법원은 축협 손을 들어주었다. A에게 더 이상 거친 현장 업무를 기대하기 어려워, 근로계약의 갱신을 거절한 것에 합리적 이유가 있다고 보았다. 나는 항소심부터 이 사건을 맡았다.

복잡한 듯하지만 단순하게 요약되는 사건이었다. 과중하고 위험한 일을 해오던 노동자가 산재사고로 장해까지 입게 되자, 더 이상 어려운 일을 맡기기 어렵다는 이유로 해고해버린 사건. 회사 측 변호사도 소송에서 ‘일이 매우 힘들고 위험하다’는 점을 계속 강조하며 해고의 진짜 이유를 숨기려 하지 않았다. 오히려 그것이 해고의 합당한 사유가 된다고 자신하는 것 같았고, 그래서 나는 이 사건을 더 이기고 싶었다.

다행히, 고등법원은 “A에 대한 근로계약 갱신 거절에 합리적 이유가 없다”라고 판결했다. 축협이 갱신 거절 사유로 앞세운 근무평정 결과가 너무 자의적으로 허술하게 작성되었음을 강조했다. 또한, 오랜 기간 추가 채용이 이루어지지 않아 모든 업무를 혼자 담당했고 그러다 산재사고까지 당하여 과거처럼 현장업무를 하지 못하게 된 것을 A의 책임으로 돌릴 수도 없다고 했다. 축협은 이 사건을 대법원까지 끌고 갔지만, 대법원의 판단도 다르지 않았다.

서울 서초구에 위치한 서울중앙지방법원 전경. ⓒ시사IN 이명익
서울 서초구에 위치한 서울중앙지방법원 전경. ⓒ시사IN 이명익

산재보상은 하지만, 해고는 어쩔 수 없다?

혹자는 그런 생각을 할지 모른다. 일하다 사고가 나면 산재보상을 해줘야 하는 것은 맞지만, 그 사고로 인해 더 이상 같은 일을 하지 못하게 된 노동자를 해고하는 것도 어쩔 수 없지 않느냐고. 회사 입장에서 그렇게 생각할 수도 있겠다. 하지만 해고에 이르는 과정에서 꼭 생각해야 할 문제들이 있다.

산재사고가 잦을 정도로 위험한 업무를 좀 덜 위험한 방식으로 대체할 수는 없는지, 인력을 충원함으로써 위험을 줄이거나 관련 업무를 분담할 수는 없는지 등을 고민해야 한다. 요컨대 그 노동자에 대한 고용을 유지하면서도 사업을 정상적으로 운영할 수 있는 방법을 생각하며, ‘정말 해고할 수밖에 없는 상황인가’를 판단해야 한다. 계약직 노동자에 대해서도 갱신기대권(근로계약이 갱신될 것이라는 정당한 기대)이 인정되는 경우, 법원은 합리적 이유 없는 갱신 거절을 부당해고와 마찬가지로 취급하므로, 사업주는 같은 고민을 해야 한다. 더욱이 오랜 시간 헌신적으로 일하다가 몸까지 상하게 된 노동자에 대해서는 마땅히 그러한 생각을 깊이 해야 한다. 법을 떠나 상식적으로 생각해보아도 그렇지 않은가. 옳고 그름을 가르는 기준에 있어 우리의 상식과 법은 크게 다르지 않다.

A에 대한 축협의 해고 과정에서는 그러한 고민이 전혀 느껴지지 않았다. 그래서 마땅히 불법(부당해고)이라는 판단이 내려져야 했는데, 다행히 잘 마무리되었다. 육향 진한 소고기를 먹을 때마다 흐뭇하게 떠올릴 수 있는 사건이다.

기자명 임자운 (변호사) 다른기사 보기 editor@sisain.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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