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해 6월12일 수원지방검찰청에서 반도체 공장 설계자료 해외유출사건 중간수사 결과를 발표하고 있다. ⓒ연합뉴스
지난해 6월12일 수원지방검찰청에서 반도체 공장 설계자료 해외유출사건 중간수사 결과를 발표하고 있다. ⓒ연합뉴스

산업기술 유출 범죄, 이른바 ‘산업스파이’는 한국 언론이 가장 악질적 범죄로 다루는 것 중 하나다. 특히 국내 대기업의 반도체 생산 기술을 외국에 팔아넘기려 한 자들을 거의 매국노로 취급한다. ‘최근 관련 범죄가 늘어나고 있다’라며 위기감을 조성하거나, ‘형사처벌을 강화해야 한다’는 주장도 심심치 않게 나온다.

그런 보도를 볼 때마다 의문이 든다. 언론이 보도한 사건 속 인물들은 정말 산업스파이였을까. 회사 측의 일방적인 주장에 의해 억울하게 누명을 쓴 사람은 없을까.

산업기술보호법의 문제를 알기 때문이다. 이 법이 보호하는 산업기술은 3000개가 넘는다. 그중 70여 개는 국가 핵심기술로 지정돼 특별히 더 보호받고 있다. 이 법은 여덟 가지의 산업기술 침해행위를 정했다. 그 행위를 한 자는 최대 15년(국가 핵심기술 침해는 최대 30년)의 징역형에 처해질 수 있다. 회사로부터 징벌적 손해배상 청구를 당할 수도 있다.

그런데 법이 정한 산업기술 침해행위라는 것이 참 모호하다. 이를테면 산업기술에 대한 ‘비밀유지의무가 있는 자’가 그 기술을 ‘유출’만 하여도 침해행위가 된다. 산업기술을 보유한 회사의 근로계약서에는 통상 비밀유지 약정이 붙는다. 업무 관련 문서를 회사 밖으로 가져가기만 해도 ‘유출’이 될 수 있다.

문제는 그 문서가 ‘산업기술에 해당하는가’이다. 이를 판단하는 기준은 법에 없다. 관련 지식이 부족한 수사기관과 언론은 심각한 기술 유출 피해를 주장하는 회사의 말을 받아들이기 쉽다.

물론 법원에서는 판단 기준이 제시되고 있다. 산업기술 침해행위와 관련해 ‘해당 기술의 구현에 있어서 고유하고 필요 불가결한 정보이거나 이에 준하는 정보인지 여부’라는 기준이 제시된 적 있고, 국가 핵심기술 침해행위에 대해서는 ‘국내외 시장에서 차지하는 기술적·경제적 가치가 높거나 관련 산업의 성장잠재력이 높아 해외로 유출될 경우 국가의 안전보장 및 국민경제의 발전에 중대한 악영향을 줄 우려가 있는 기술’인지 여부를 판단해야 한다. 기술 관련 문서가 유출되었다 하더라도 그 내용의 정보가치를 면밀히 판단해야 한다는 취지다.

그러한 판단은 종종, 수사기관과 언론에 의해 이미 심각한 곤욕을 치른 당사자가 상당한 경제적·정신적 고통을 이겨내고 겨우 판사 앞에 섰을 때 비로소 나온다. 이를 잘 아는 일부 기업들에게 산업기술보호법은 회사에 불만을 품거나 정당하게 이직을 꿈꾸는 기술 노동자들에 대한 합법적 억압 수단이 될 수 있다.

2017년부터 2021년까지 산업기술보호법 위반으로 처리된 제1심 형사공판 사건 81건을 검토한 결과 무죄선고 비율이 34.6%에 이른다는 내용이 발표된 적이 있다. 전체 형사사건 무죄율(3.0%)보다 약 11배 높았다. 이쯤 되면 검찰의 무리한 기소 문제를 생각할 법하다. 하지만 이를 보도한 언론은 모두 ‘지나치게 관대’한 법원을 비판하며 처벌 강화를 주장했다. 참 놀라운 일이다.

기술자 억압하는데 기술이 보호될 리가?

그 기간에 무죄선고를 받은 사람 중에는 삼성전자 A 전무도 있었다. 삼성이 그를 기술 유출 혐의로 고소하자, 언론은 단 이틀 동안 기사 100여 개를 쏟아냈다. 대부분 그를 범죄자로 낙인찍었다. 압권은 최초 단독 보도한 SBS였다. 그가 ‘삼성의 최신 스마트폰 핵심 기술을 중국 업체에 통째로 팔아넘기려다 붙잡혔다’고 보도했다. 법원이 밝힌 팩트는 해프닝에 불과했다. 그는 중국은커녕 국내 다른 회사와도 접촉한 적이 없었다. 단지 집에서 일을 하려고 사무실에서 출력한 문서를 밖으로 가지고 나갔을 뿐이다. 1심, 2심, 3심의 결론이 모두 같았지만, 삼성과 언론 모두 그에게 사과하지 않았다.

4년 전에는 시민사회에서 산업기술보호법 대책위원회가 만들어져, 법 개정을 촉구하는 국회 기자회견을 이끌어내기도 했다. 국회의원 열다섯 명이 이 법의 개악에 동참한 과오를 인정하며 사과했다. “이 법이 올바르게 개정될 수 있도록 노력하겠다” “이 법이 악용되지 않도록 철저히 감시하겠다”라는 약속도 나왔다. 하지만 지금까지 아무것도 바뀌지 않았다.

산업기술보호법이 계속 이렇게 다루어지는 동안 한국의 산업기술은 발전할까, 후퇴할까. 물론 악의적인 기술 유출과 탈취는 엄하게 처벌되어야 한다. 하지만 기술 발전도 결국 사람이 하는 일이다. 기술자를 억압하고 괴롭힐 수 있는 법으로 기술이 보호될 리 없다.

기자명 임자운 (변호사) 다른기사 보기 editor@sisain.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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