울산은 한국의 제조업을 상징하는 산업도시다. 한국의 기간산업인 자동차와 조선, 석유화학이 이 도시에 뿌리를 내리며 전 세계로 뻗어 나갔다. 울산은 한국 노사관계의 상징이다. 착취와 억압에 분노한 현장 노동자들이 ‘전투적 조합주의’로 굳건히 단결해서 ‘자본’과 치열하게 싸웠다. 이는 한국 노동운동에 압도적 영향을 미쳤다. 그 결과, 울산은 글로벌 최강의 산업단지와 ‘중산층 노동자’를 겸비한 부자 도시로 발전했다. 울산의 미래는 어떠한가? 지난 10여 년 동안 울산, 거제 등 경상남도 산업도시들에 대한 현장 조사로 〈중공업 가족의 유토피아〉 〈울산 디스토피아〉(3월 말 출간 예정) 등 저서를 낸 양승훈 경남대 교수는 이렇게 내다봤다. “한마디로 야단났다. 울산은 ‘산업 수도’ ‘생산 도시’로 불려왔는데, 그 ‘알맹이’가 사라지고 있다.”

양승훈 경남대 사회학과 교수. ⓒ시사IN 이명익
양승훈 경남대 사회학과 교수. ⓒ시사IN 이명익

그 ‘알맹이’가 무엇인가?

구상 기능이다. 생산은 ‘구상’과 ‘실행’으로 나눌 수 있다. 무엇을 어떤 공정으로 어떻게 만들고, 필요한 자재와 장비를 어떻게 조달하며, 어떻게 혁신(연구·개발)할 것인지 ‘구상’부터 해야 한다. 그 구상을 작업장에서 제품으로 만들어내는 것을 ‘실행’이라고 부른다. 애당초 울산은 구상(경영진·엔지니어)과 실행(현장 노동자) 기능을 겸비한 도시였다. 자동차라면, 울산 본사에서 경영진의 지휘 아래 제품 연구와 개발, 설계, 조달 등이 구상되고, 이는 울산 작업장에서 실행되었다. 그런데 구상 기능이 거의 깡그리 수도권으로 옮겨 갔다. 최근엔 실행 기능(제조 공장)까지 구상 기능을 따라 수도권으로 가는 경향이 보인다.

딱 잘라 말하자면, 울산은 수도권의 ‘구상’ 전문가들이 시키는 대로 ‘실행’만 하는 도시로 전락했다는 이야기다. 그만큼 울산이 생산하는 부가가치와 일자리도 줄어들 것이다.

그렇게 된 이유 중 하나는, 울산 현장 노동자(실행 기능)들의 ‘숙련’ 약화(탈숙련화)가 있다. 일터에서 오랜 세월 실행을 거듭한 노동자들에겐 지식과 경험(숙련)이 축적되기 마련이다. 그런데 산업이나 업체마다 노동자의 숙련을 대하는 방식이 다르다. 첫 번째는, 경영 측이 작업공정을 조밀하게 설계하거나 로봇을 투입해서 현장 노동자에겐 아주 단순한 반복 작업(숙련이 필요 없는)만 맡기는 방식이다. 두 번째는 노동자들의 숙련을 더 우수한 제품 생산과 혁신에 활용하는 것이다. 이 생산방식에서는 엔지니어들이 작업장에 투입되어 현장 노동자들과 긴밀히 협조한다. 미국 자동차 회사들은 첫 번째, 일본은 두 번째에 해당한다.

현대자동차는 두 시스템이 혼합된 체제였다. 그러나 1997년 외환위기 이후 사측이 정리해고에 나서면서 분위기가 달라졌다. 회사와 노조가 서로 불신하게 되었다. 노동자들은 언제 해고될지 모르니까 ‘가능할 때 최대한 많이 받는 것’을 중시했다. 생산성 향상이나 자신의 숙련엔 관심을 두지 않았다. 노동자의 협조가 필요한 생산방식 개편에 대해 ‘자본의 통제’라는 관점에서 반발하기도 했다. 이에 사측은 작업용 로봇처럼 노동자들의 숙련을 대체할 수 있는 기술을 대거 도입하는 방향으로 나아갔다. 노동자 숙련은 상대적으로 중요하지 않은 생산요소로 전락했다. 새 라인 까는 걸 현대자동차만큼 잘하는 회사도 없다. 탈숙련 노동자들은 대체 가능하다.

회사는 성공했을지 모르지만 노동자들과 지역사회는 결과적으로 실패하고 만 것 아닌가?

이미 2015년부터 인구가 계속 빠지는 추세다. 지난해 하반기에 울산 인구가 1000여명 증가했다고 떠들썩했는데 이는 외국인 노동자 수천 명이 조선업 사내하청에 취업하러 들어온 덕분이었다. 인구 감소 추세 자체엔 전혀 변화가 없다. 더욱이 앞으로 닥칠 산업환경의 변화(태양광이나 풍력 같은 재생에너지로 만든 제품만 수출할 수 있는 RE100 같은 규약, 전기차 등)에 울산이 잘 적응할 수 있을지도 의심스럽다. 예컨대 현대자동차에 납품하는 울산 부품업체들의 경우, 절대다수가 연구개발을 못할 정도로 영세하다. 그나마 전장(자동차의 전기·전자 장비) 부품을 제조하는 대부분의 업체는 이미 수도권으로 이전했다.

2022년 1월13일 인도네시아 베카시 델타마스 공단 내 현대자동차 공장에서 로봇들이 차체를 조립하고 있다. ⓒ연합뉴스
2022년 1월13일 인도네시아 베카시 델타마스 공단 내 현대자동차 공장에서 로봇들이 차체를 조립하고 있다. ⓒ연합뉴스

앞으로 어떤 상황이 펼쳐질까?

울산 현대차의 정규직 직원이 4만~5만명, 현대중공업은 3만명 정도다. 이들 중 상당수는 고도성장기에 대량으로 고용되어 민주노조 운동을 경험했다. 앞으로 몇 년 동안 이 정규직 노동자들이 정년으로 거의 나간다. 1980~1990년대에 태어난 1만여 명만 남는다. 울산의 구매력은 어떻게 될까. 하청업체 직원들의 수입은 정규직의 절반 정도다. 또한 1990년대 말에서 2000년대에 이르기까지 울산에서도 대졸자가 엄청나게 늘어났다. 여성 고학력자도 대거 증가했다. 그러나 울산엔 이들에게 제공할 만한 일자리가 없다. 대졸자들을 생산직으로 밀어 넣으면 된다고? 울산의 장년 정규직 노동자들은 생산직을 하지 말라고 아이들을 대학에 보냈다. 한국의 다른 산업도시와 마찬가지로 울산 인구 역시 수도권으로 가파르게 유입되고 있다. 고부가가치 일자리가 죄다 수도권에 있기 때문이다. 이렇게 울산이란 도시의 ‘부자 이미지’는 사라지게 될 것이다.

지금 상황은 대체로 과거에 예측된 것들이다.

그렇다. 울산은 전환에 실패했다. 울산은 중화학공업에 엄청난 투자가 이뤄지던 1970년대 후반기부터 고졸 생산직과 기계를 결합한 생산체제에 기반해 급속히 발전했다. 그 산업들이 성숙해 1990년대부터 이익을 내면서 글로벌 산업단지로 자리 잡았다. 그러나 이후 급변하는 상황에 대응해 생산체제와 노사관계를 전환시키지 못했다. 2010년대 이후 문제점들이 연이어 돌출하고 있는데도 불구하고 울산은 멈춰 서 있을 뿐이다.

대안이 있을까?

주력산업을 더욱 고도화하면서 이로부터 파급되는 역량을 강화하는 쪽으로 나가면 길이 있다고 생각한다. 경남과 인근에 유니스트·경상대·경남대·부산대 등이 있는데 이 연구 기능들을 집약하고 네트워크화해서 자본과 인력을 유인해야 한다. 중소업체들을 통폐합으로 대형화해서 연구개발 역량을 강화하고 자동화율을 높여 고부가가치 일자리를 만드는 구조개혁을 실행해야 한다. 이는 물론 울산 홀로 할 수 있는 일이 아니다. 대한민국을 유지하는 데 ‘균형발전’이 필요한 가치라면, 정부가 국가전략 차원에서 관련 정책에 무게를 두고 구속력 있는 방안을 수립해야 한다. 울산의 문제는 결국 한국 경제 전반의 문제이기도 하다.

기자명 이종태 기자 다른기사 보기 peeker@sisain.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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