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사IN〉 제861호에는 ‘한 이주민 전문기자가 만들어낸 변화’ 기사가 실렸다. 통근버스를 운행하던 중 미등록 이주노동자 단속을 나온 법무부 공무원 11명을 다치게 한 한국인 운전기사 김민수씨(가명)의 사연이다. 이 사건을 취재·보도한 박중엽 〈뉴스민〉 기자의 취재기를 싣는다.

많은 이주노동자들이 일하고 있는 대구의 한 공단 모습. ⓒ박중엽 제공
많은 이주노동자들이 일하고 있는 대구의 한 공단 모습. ⓒ박중엽 제공

나는 경북 중소 도시 구도심에서 생애 대부분을 지냈다. 성장하던 구도심은 언젠가부터 낙후하고 있다. 이주노동자는 낙후하는 도시에서 활력이 느껴지게 하는 희소한 존재다. 고용허가제 도입 이후 이 지역은 본격적으로 중앙시장에서, 상점에서, 길거리에서 자연스럽게 이주노동자와 만날 수 있는 지역으로 변모했다. 그들은 정주민이 떠난 이 도시의 저임금 고강도 경공업, 농업 현장을 책임지는 사람들이 되었다. 이 도시에는 이주민들만 가는 식당·식료품점이 있으며 서로 다른 국적의 이주노동자가 장을 보다가 엉성한 한국말(반말)로 안부를 나누는 재미난 장면도 볼 수 있다.

2007년 집에서 1분 거리에 이주노동자 센터가 생긴 후 그들과 개인적 인연도 시작됐다. 대학생 시절, 그곳에서 잠깐 한국어 교사를 맡았다. 교육에 소질은 없었지만, 그들과 함께 먹고 마시다 보니 어느새 이주민을 특별하거나 특이하게 생각하지 않게 됐다. 대학을 마치고 기자 생활을 시작하고도 의식적으로 이주민 이슈를 다루겠다는 생각은 없었다. 하지만 이주민들이 터무니없는 일을 겪는 게 자주 보였다. 지역에서 언론은 크게 화제가 될 만한 사건 외에는 이주민 문제에 별달리 관심을 두지 않았다. 미디어에서는 그들을 불법체류·마약·범죄와 같은 부정적 인상을 풍기는 사건과 연결해 비추는 듯했다. 그 모습은 내가 만난, 평범하고 웃고 일하고 연애하는 이주민의 모습과 연결되지 않았다.

기회가 닿는 대로 우리 곁의 이주민 모습을 보여주려고 마음먹었다. 〈뉴스민〉에서 농촌 이주노동자 숙소 문제, 미등록 이주 아동과 난민 문제, 대구 대현동 이슬람 사원 문제, 현금이 아닌 쿠폰으로 임금을 대신한 농가와 계절 이주노동자 처우 문제, 이주노동자 산재 사망사고 기사를 비중 있게 실었다. 한 베트남 이주노동자 산재 사망 이후 그 시신이 베트남에 송환되기까지 어떠한 과정을 거쳤는지 취재했다. 베트남 현지에 있는 유족이 한국에 어떤 심정을 갖게 되었는지도 화상전화로 인터뷰했다. 그 유족이 송환된 고인의 관 앞에 쓰러져 있는 사진을 한국의 이주민 선교센터 목사에게서 전달받았다. 사진을 통해 울분이 전달됐다.

미등록 이주노동자를 싣고 통근 버스를 운행하던 운전자가 단속을 피하려다 법무부 출입국 직원 다수에게 상해를 가했다는 김민수씨(가명)에 대한 짧은 사건 기사를 보고, 이 사람을 꼭 취재하고 싶다고 생각했다. 변함없는 강제 단속 일변도의 미등록 이주노동자 대책이 부른 안타까운 사례로 보였다. 그 기사에는 출입국 측이 아침 출근 버스를 단속하려 하자 이주노동자들이 살려달라며 아우성쳤고, 이 때문에 김민수씨가 도주를 시도한 결과 출입국 직원 11명이 다쳤다는 내용이 담겼다.

김민수씨의 행동과 그로 인한 결과는 달리 해석할 여지도, 의미를 부여할 이유도 없다. 하지만 정치·행정·언론 그 어디서도 관심을 두지 않는 이주노동자들의 살려달라는 호소에 왜 그의 마음이 움직였는지가 궁금했다. 교도소에서 면회한 10분은 김민수씨의 생애, 급박한 단속의 순간 발휘된 그의 잘못된 판단이 어디에서 비롯했는지 묻기에 짧은 시간이었다. 그래서 추가로 편지를 쓰고, 주변인 취재를 거쳐 ‘접견 시간은 10분, 동료 시민이 이야기를 시작했다’ 보도가 나왔다.

그가 다치지 않는 선택지란 없었다

보도는 상당한 주목을 받았다. 이주민과 관련해 다양한 보도를 했던 나는 유사 주제의 다른 보도와 견주어 이번 보도에 특별히 더 많은 공을 쏟거나 하지는 않았다. 유독 주목받는 이유를 여전히 잘 모르겠다. 주된 등장인물이 이주노동자가 아닌 한국인이어서 감정이입이 쉬웠을까? 교도소라는 흔치 않은 배경이 등장해서일까? 글의 전개가 이야기를 풀듯 진행되어서일까? 탄원과 공감을 통해 비극을 희극으로 다소나마 바꿀 여지가 있어서일까? 그저 어쩌다가 알 수 없는 알고리즘의 파도를 타버린 것일 수도 있겠다.

〈뉴스민〉의 보도 후 김민수씨 (가명)가 도움을 준 시민들에게 보낸 편지의 일부. ⓒ뉴스민 제공
〈뉴스민〉의 보도 후 김민수씨 (가명)가 도움을 준 시민들에게 보낸 편지의 일부. ⓒ뉴스민 제공

사실 나는 인물의 사연에 집중된 비극보다는 비뚤어진 세상 속 사람들의 군상극을 보여주고 싶었다. 김민수씨의 행동과 그 동기를 보여주면서도, 정말로 선명하게 드러내고 싶었던 것은 그에게 잔혹한 선택지를 내민 비뚤어진 세상이었다. 도주를 선택한 김씨는 자신이 감당하기 어려운 결과를 맞이했고, 감옥에서 후회하고 있다고 말했다. 과거 본인이 일하던 공장에서 잡혀간 이주노동자를 지켜보며, 아무것도 하지 못했던 순간을 자책했던 그다. 그가 다치지 않는 선택지란 없었던 것이다. ‘김민수 시리즈’ 두 번째 기사는 이렇게 끝난다. “김민수가 얼마의 형을 살든, 교도소를 나와서는 공장으로 돌아가야 한다. 김민수가 다시 기계 앞에 섰을 때, 이주노동자 제도는 얼마나 바뀌어 있을까.” 변하지 않은 세상은 김민수씨에게 다시 같은 선택지를 내밀지도 모른다.

2004년 시행되어 한국 사회의 숱한 미등록 이주노동자 문제를 낳은 고용허가제도 여전히 진행형이다. 세상이 점차 바뀌는 동안에도 이주민의 세상은 20년 전에 고정되어 있다. 이 간극은 미등록 이주노동자 추격, 제압, 강제 추방을 콘텐츠로 만드는 유튜버가 활개 치는 공간이기도 하다. 그 영상에는 체포돼 비명을 지르는 미등록 이주노동자, 자포자기하고 눈물 흘리는 이주노동자의 얼굴이 여과 없이 노출된다. 이 유튜버는 ‘행정적 미비 상태’에 처해 있는 미등록 이주노동자를 형사사범 대하듯 강압하는 모습을 공개한다. 도대체 누가 이 유튜버에게 이들의 얼굴을 그대로 자기 콘텐츠로 공개할 권한을 주었는가.

“정치인은 이주민 문제에 관심이 없다. 표가 되지는 않고 욕만 먹기 십상이기 때문이다.“ 이번 연재를 진행하면서 만난 이주민 정치인 이자스민 국회의원과 법무부 출입국심사과장을 지낸 김도균 한국이민재단 전 이사장이 공통적으로 한 말이다. 제도를 바꾸려면 정치인이 나서야 하고, 정치인이 나서려면 여론과 언론의 힘이 필요하다. 〈뉴스민〉 같은 총원 6명의 작은 언론사가 보도해도 화제가 된 이야기다. 이주노동자 없이 존속하기 어려운 지역 산업·농업 현장, 여전히 임금이 박하고 위험한 일자리에서 인권을 침해받는 이주민의 현실, 낡은 제도를 그대로 두고 이주노동자 유치에만 열을 올리는 행정과 이 속에서 고통받는 사람 이야기는 힘 있는 언론사도 뛰어들 만한 매력적인 소재라고 할 수 있겠다. 나는 총선 이후, 미등록 이주노동자가 발디딘 세상에 대한 보도를 더 이어가볼 생각이다.

기자명 박중엽(<뉴스민> 기자) 다른기사 보기 editor@sisain.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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