태영건설이 고양시 향동동에 건설 중인 지식산업센터. 태영건설은 이 건물에 3074억원 규모의 중도금대출보증이 있다. ⓒ시사IN 이명익
태영건설이 고양시 향동동에 건설 중인 지식산업센터. 태영건설은 이 건물에 3074억원 규모의 중도금대출보증이 있다. ⓒ시사IN 이명익

부동산시장에 ‘계포’ ‘마피’라는 말이 등장했다. 서울시 경계로부터 불과 600m 떨어진 경기도 고양시 향동동. 이곳에는 태영건설이 짓고 있는 한 지식산업센터가 올해 2월 입주를 앞두고 위용을 자랑하고 있다. 지상 20층, 연면적 14만여㎡에 달하는 업무용 건물이다.

과거 ‘아파트형 공장’으로 불리던 지식산업센터는 부동산 상승기에 ‘투자용 부동산’으로 인기를 얻었다. 2021년에 분양한 이 지식산업센터도 순조롭게 팔리는 듯했다. 하지만 겨우 2년 만에 분위기는 180도 변했다. 인근 부동산 중개업소에서는 ‘계포’ ‘마피’라는 단어를 쉽게 찾아볼 수 있다. 계포란 ‘계약금 포기’를, 마피란 ‘마이너스 프리미엄(P)’을 의미한다. 분양가의 10% 수준인 계약금을 포기할 터이니 분양권을 가져가달라고 매물을 내놓은 것이다(분양권을 사는 사람이 잔금을 치르는 구조).

태영건설의 워크아웃 신청은 이 회사 특유의 사업 구조에서 원인을 찾을 수 있다. 크게 세 가지다. 상업용 부동산(비거주), 비수도권 지방 사업, 그리고 도급 위주다. 태영건설 채무보증 구조는 크게 ‘중도금대출보증’과 ‘PF 대출보증’으로 나뉜다. 분양받은 계약자가 중도금을 갚지 못할 경우, 건설사가 대신 중도금을 내는 보증이 ‘중도금대출보증’이다. 앞서 설명한 향동동 지식산업센터가 대표적이다. 태영건설은 이 사업장에 3074억원 중도금대출보증을 선 상태다.

더 큰 문제는 PF 대출보증이다. 태영건설 사업보고서를 살펴보면 시행을 맡는 자회사·계열사의 PF 보증이 눈에 띈다. 강릉엘앤디에 1400억원, 전북 전주시 에코시티개발에 1850억원, 경남 김해시 삼계개발에 1650억원 등이다. 자회사와 계열사가 시행사를 맡고, 태영건설이 시공사를 맡아 사실상 자체 사업과 다를 바 없는 사업장이 다수다. 비수도권 부동산 경기는 2023년에도 회복되지 못했고, 비수도권 사업장의 비중이 큰 태영건설의 부담도 커졌다.

‘도급에 의존하는 구조’도 위기를 키웠다. 건설산업은 크게 ‘정비’와 ‘도급’으로 나뉜다. 정비는 재개발·재건축처럼 이미 수요자가 상당수 정해져 있다. 건축비도 원 소유주의 분담금 등으로 상당 부분 충당된다. 특히 수도권 재개발·재건축은 인기 있는 지역에서 진행되는 만큼 분양 리스크도 덜하다. 재개발·재건축 사업은 브랜드의 영향을 많이 받는다. 흔히 ‘1군 건설사’로 불리는 대형 건설사들은 이 분야에서 강점을 갖는다. 서울 주요 재개발·재건축 단지 아파트 이름이 익숙한 브랜드 위주인 것도 이 때문이다.

반면 시공능력 10~30위 건설사들은 빈 땅에 새로 지어올리는 사업에 나서는 경우가 많다. 시행사로부터 일을 발주받아(도급) 건설해주는 식이다. 신도시 아파트 사업은 대표적인 도급 사업이다. 최근 10년 동안 급성장한 주요 건설회사들은 이러한 도급 사업에 힘을 실었다. 광역시나 경기도에서는 나름 유명한 풍경채, 엘리프(리슈빌), 디에트르(노블랜드), 린, 에일린의 뜰 같은 아파트 브랜드를 서울에서는 찾아보기 힘든 것도 이 때문이다(서울에서는 빈 땅에 아파트를 짓는 도급 사업이 드물다). 각각 제일건설(17위), 계룡건설(18위), 대방건설(14위), 우미건설(25위), 아이에스동서(23위)처럼 태영건설과 규모가 비슷한 중견 건설업체들의 브랜드다.

신한투자증권이 2023년 12월29일 발표한 리포트에 따르면, 태영건설의 PF 보증 구성은 도급 사업이 98%에 달한다. 〈그림〉처럼 미분양 리스크가 상대적으로 적은 ‘분양률 75% 이상 사업’은 32%에 불과하다. 미착공 사업장이 33%인데, 이 가운데 광역시(19%), 지방(33%)의 비중이 절반을 넘는다. 부동산 불경기에 직격탄을 맞을 가능성이 큰 사업 구조다.

도급 사업을 주로 하는 건설사들이 모두 위험한 건 아니다. 태영건설과 비슷한 규모인 중견업체들 가운데 부채의 비율이 낮은 곳, PF 사업장을 이미 상당 부분 축소한 곳도 있다. 아예 손해를 감수하고 ‘손절’한 대우건설의 사례도 다시금 회자되고 있다. 지난해 2월, 대우건설은 울산 동구에 위치한 한 주상복합 개발사업의 시공권을 포기하고, 보증을 섰던 440억원을 대신 갚겠다고 발표했다. 440억원 손실을 감수하고서라도 더 큰 위험(착공이 미뤄지고, 이 과정에서 각종 금리 부담으로 비용이 더 커지는 상황)을 대비하겠다는 뜻이었다.

SBS는 남기려는 태영그룹

태영건설은 워크아웃을 통해 사업성이 높은 현장을 최대한 보존하고 회생을 노리겠다는 입장이다. 그러나 워크아웃 과정에서 지속적으로 잡음이 생기고 있다. 1월3일 산업은행 본점에서 열린 채권단 설명회에서 태영건설과 지주회사 티와이홀딩스는 태영인더스트리 매각 대금 지원, 에코비트 매각 추진 등 총 1조5000억원이 넘는 자구안을 발표했다. 그러나 이날 윤세영 태영그룹 회장 오너 일가의 사재 출연 규모나 계열사인 SBS 지분 매각 가능성에 대해서는 명확한 답을 남기지 않아 채권단의 반발을 샀다.

법정관리와 달리 워크아웃은 사적 구조조정에 해당한다. 태영그룹 측의 자구안을 살펴본 뒤, 채권단 75%가 동의해야 워크아웃 개시 여부가 결정된다. 워크아웃 가능 여부는 1차 채권자협의회가 열리는 1월11일에 결정된다. 그러나 1월3일 태영그룹 측이 발표한 자구책에 대한 비판이 커지면서 전방위적 압박이 이어지고 있다. 이복현 금감위원장도 1월4일 신년 기자간담회에서 “채권단 입장에서는 (이번 자구안이) 태영건설 자구 계획이 아니라 오너 일가 자구 계획이다. 채권단 입장에서는 남의 뼈를 깎는 노력(으로 보인다)”이라며 전날 태영그룹 측의 자구책을 공개적으로 질타했다.

1월3일 산업은행 본점에서 태영건설 채권자 설명회가 열렸다. ⓒ연합뉴스
1월3일 산업은행 본점에서 태영건설 채권자 설명회가 열렸다. ⓒ연합뉴스

특히 지상파 방송사인 SBS 지분 매각이 초미의 관심사다. 태영그룹이 다른 건 다 내놓으면서 막상 SBS는 지원금 마련의 대상에서 빠져 있기 때문이다. 1월4일 기준, SBS의 시가총액은 5769억원이다. 단순 계산했을 때, 대주주인 티와이홀딩스의 지분율 36.32%를 매각할 경우 2000억원 정도를 동원할 수 있다. 경영권 프리미엄을 붙여서 더 비싼 가격에 매각할 수도 있다.

하지만 1월3일 태영그룹 측은 법적 제약이 있어서 자구안에 SBS를 동원하는 건 쉽지 않다고 주장했다. 지상파 방송인 SBS의 대주주를 티와이홀딩스로 변경(기존 대주주였던 SBS미디어홀딩스를 합병)하는 과정에서 방송통신위원회에 SBS의 미래가치를 훼손시키지 않겠다는 약속을 했기 때문에 방송사 지분을 담보로 현금을 만들면 당시 대주주 변경 조건을 어기게 된다는 의미다. 그럼에도 유일한 민영 지상파 방송인 SBS의 운명에 대한 관심은 워크아웃 성사 여부가 결정될 때까지 이어질 전망이다.

기자명 김동인 기자 다른기사 보기 astoria@sisain.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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