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울 여의도에 위치한 태영건설 사옥. ⓒ시사IN 조남진
서울 여의도에 위치한 태영건설 사옥. ⓒ시사IN 조남진

시공능력 16위, 시가총액 약 1200억원 규모의 중견 건설사가 비틀거리자 온 나라가 뒤집혔다. 부동산 PF(프로젝트 파이낸싱)로 인해 유동성 위기에 빠진 태영건설이 2023년 12월28일 워크아웃(기업구조개선)을 신청했다. 워크아웃 신청 당일 금융 당국은 곧바로 협력업체 지원과 시장 안정 조치를 발표했다. 태영건설에 걸려 있는 돈이 수조 원 규모인 데다, 태영건설 사태로 인한 PF 연쇄 붕괴를 우려해서였다.

갑작스러운 워크아웃처럼 보이지만, 실상은 그렇지 않다. 태영건설 위기는 금융권에서 어느 정도 예견하던 사태다. 지난해 9월에는 〈국민일보〉의 보도가 금융권 전반에서 화제가 되기도 했다. 태영건설로 추정되는 한 건설사가 금융감독원을 찾아 ‘우리가 무너지면 우리보다 신용등급이 낮은 건설사는 다 무너진다’며 SOS를 보냈다는 내용이다. 당시 태영건설은 해당 보도와 관련이 없다고 주장했지만, 전부터 금융권과 건설업계는 태영건설을 예의주시했다. 태영건설 사태는 어째서 ‘예견된 사태’였고 PF는 왜 한국 경제의 뇌관이 되었을까.

■ 빚이 많은데, 보증은 더 많다

태영건설의 위기는 ‘체력도 떨어졌는데 감당해야 할 보증이 너무 많다’로 요약할 수 있다. 당장 부채비율이 높다. 2023년 3분기 기준 태영건설의 자기자본은 8469억원이다. 유동부채는 2조1804억원으로 부채비율이 258%에 달한다. 주요 건설사 가운데 이만큼 빚이 많은 회사는 찾기 어렵다. 문제는 여기서 그치지 않는다. 본인 체력이 떨어졌을 땐 부실을 덜어내면 그만이다. 그러나 PF 사업장 이곳저곳에 ‘이 사업에 문제가 생기면 내가 대신 돈을 갚겠다’며 보증을 선 게 사태를 악화시켰다.

얼마나 보증을 서준 것일까? 지난해 12월28일 금융 당국이 발표한 태영건설의 PF 보증액(우발채무)은 약 3조7000억원 수준이다. 그런데 PF 보증에 얼마나 노출되었는지는 금융기관마다 계산이 다르다. 당장 태영건설 측이 주장하는 PF 보증액은 2조5000억원이다. 1월3일 산업은행 본점에서 열린 태영건설 채권단 설명회에서 윤세영 태영그룹 회장은 “일부 보도와 달리 실제 문제가 되는 우발채무는 2조5000억원 정도다. 태영건설의 현재 수주잔고는 12조원이 넘으며 향후 3년간 연 3조원 이상 매출이 가능할 것으로 예상한다”라면서 회생의 기회를 달라고 주장했다.

태영건설이 사실과 다르다며 항변하는 ‘일부 보도’란 금융권에서 예상하는 최대 보증 규모를 의미한다. 금융기관에 따라 계산은 조금씩 다르지만, 통상 태영건설의 보증 정도는 9조~10조원 규모로 파악된다. NH투자증권이 1월2일 발표한 리포트에 따르면, 미사용 한도를 포함한 태영건설의 채무보증 총잔액은 약 10조5000억원 규모다. 이른바 ‘최대치’다. 여기에서 미사용된 금액을 제외하고, 중도금대출보증도 제외할 경우 약 5조5000억원 규모로 집계된다.

중요한 건 ‘그중에서 부실 PF 보증이 얼마나 많은가’이다. 태영건설이 보증을 선 PF 대출 전체가 부실이라고 보긴 어렵다. 하지만 부실의 규모가 큰 것도 사실이다. 신용평가사인 한국기업평가가 지난해 12월27일 발표한 자료에 따르면, 태영건설이 노출된 PF 보증 가운데, 분양률이 양호한 사업장을 제외한 ‘위험이 큰 PF 우발채무’는 1조원가량이다. 금융권이 계산 중인 최대 PF 보증액에 비하면 줄어든 금액이지만, 이 정도 부실 채무보증도 결코 작은 액수는 아니다.

태영건설 워크아웃 소식에 금융권과 건설산업 분야에서는 ‘올 것이 왔다’는 분위기가 강하다. 지표상으로 태영건설의 부실은 예견되어 있었다. 건설산업 전체에 PF 리스크가 커지고 있다는 지적이 지난해 제기되었다. 신용평가사인 한국신용평가가 지난해 12월 발표한 ‘점증하는 PF·유동성 리스크, 재무적 대응력이 필요한 시점’ 보고서를 살펴보자. 이 보고서는 2023년 9월 기준, 한국신용평가가 등급을 매기는 각 건설사의 PF 보증 규모를 비교해두고 있다. 당시 보고서에 등장하는 주요 건설사의 지표가 아래 〈그림〉이다. 이 그래프에서 보라색 점은 자기자본 대비 PF의 비율, 즉 각 건설사가 자신들의 규모에 비해 얼마나 많은 PF에 노출되었는지를 보여준다. 태영건설 373.6%, 롯데건설 212.7%, 현대건설 121.9%, HDC현대산업개발 77.9% 등이다. 이 지표에서도 알 수 있듯, 유독 태영건설이 ‘자본력에 비해 보증을 많이 섰다’는 것을 알 수 있다. 금융 당국도 이 보고서에 나오는 지표를 토대로 워크아웃 당일 대책을 발표했다.

회사채 신용등급을 평가하는 신용평가사들은 지난해 꾸준히 PF 우발채무로 인한 리스크를 경고해왔다. 이들 리포트에서 특히 태영건설과 롯데건설은 과중한 PF 우발채무 규모가 신용등급 하락의 원인으로 지적됐다. 태영건설과 함께 위기론이 대두되었던 롯데건설은 2022년 자산유동화기업어음(PF-ABCP) 차환을 위해 그룹 계열사로부터 1조원 넘게 현금을 동원하기도 했다. 한국신용평가에 따르면, 롯데건설의 PF 우발채무 규모는 약 5조8000억원인 것으로 알려졌다. 자본금이 태영건설보다 많기 때문에 덜 도드라졌을 뿐, 롯데건설의 PF 노출액 역시 상당한 수준이다.

■ 또 재현된 버블의 역습

건설사들이 PF 우발채무에 허덕이는 것은 한국형 부동산 개발사업의 특징 때문이다. 건설사는 통상 ‘시공사’ 역할을 한다. ‘시행사’로부터 공사를 수주받아 아파트나 빌딩을 직접 짓는다. 한국형 부동산 개발사업은 주요 경제위기를 겪으며 형태가 조금씩 바뀌어왔다. 1990년대까지는 시공사가 직접 시행사 역할도 함께 했다. 1990년대 초 1기 신도시 개발 과정에서 대형 건설업체들이 사업 주체로 나섰던 것도 이 때문이다. 그러나 외환위기 이후 2000년대 관련 법령이 개정되면서 전문 시행사들이 생겨나고 부동산 관련 금융도 고도화되었다. 이때부터 PF 구조를 통한 자금 동원이 본격화됐다. 총 1조원짜리 아파트 개발사업이 있다고 가정하자. 시행사는 자본금 500억원에 대출을 받아 땅을 구입하고, 여러 차례 차환을 거쳐 아파트를 지어 올리며 분양을 완료한다. 대출에 대출을 해가며 마진을 수천억 원 남기는 게 가능했다. 이게 한국식 부동산 PF의 기본 골조다.

건설사 위기는 보증 구조 때문에 발생한다. 대출은 담보 또는 신용이 있어야 가능하다. 그러나 부동산 개발은 보증 물품(건축물)이 아직 만들어지지 않은 단계에서 ‘프로젝트’만 보고 대출을 일으켜야 한다. 여기서 ‘한국식 부동산 PF’의 특징이 나타난다. 단순히 프로젝트의 비전과 사업성(분양 가능성)을 면밀하게 분석하고 대출을 해주는 게 아니라, ‘뒷배가 누구냐, 누가 보증하냐’에 따라 대출 성사가 결정되는 게 한국식 부동산 PF의 핵심이다.

공사가 중단된 대구의 한 아파트 건설 현장. 부동산 경기 침체로 전국 PF 사업장에 위기가 발생했다. ⓒ시사IN 박미소
공사가 중단된 대구의 한 아파트 건설 현장. 부동산 경기 침체로 전국 PF 사업장에 위기가 발생했다. ⓒ시사IN 박미소

그러다 보니 자본력이 약하고 신용도도 낮은 개별 시행사들은 상대적으로 신용도가 높은 시공사에 의존해 신용을 보강한다. 이때 등장하는 것이 ‘책임준공’이다. 책임준공이란 ‘돈을 제대로 받지 못해도 끝까지 최종 담보물인 건물을 완성해 지어올리겠다’는 건설사(시공사)의 약속이다. 대개 책임준공을 하지 못할 경우에는 채무를 인수해 돈을 대신 갚겠다는 약속도 포함된다. PF 우발채무는 이 과정에서 발생한다. 시행사는 아니지만 시행사의 부실을 책임질 수밖에 없는 구조에서 부실은 건설사로 전이된다.

이 보증 구조(대출 구조)에 존재하는 가장 큰 위험은 건물을 만들어도 팔리지 않을 때, 혹은 다 지어도 팔리지 않을 것으로 예상될 때이다. 전자는 미분양 사태, 후자는 미분양 우려가 큰 부동산 불경기다. 한국 경제에서 대표적인 부동산 불경기는 1997년 외환위기 직후인 1998~1999년, 세계 금융위기 직후인 2008~2013년이 꼽힌다. 이때마다 건설사들의 위기가 여러 차례 반복되었다.

가장 최근 위기는 2008년 글로벌 금융위기 직후다. 2000년대 부동산 가격이 상승하다가 금융위기로 인해 각종 사업이 멈추고 미분양이 속출했다. 얼마 후, 2010년부터 2012년까지 건설사들이 수차례 쓰러졌다. 당시에도 주거용 건축 비중이 높고, 미착공 PF 사업이 많은 건설사일수록 위기가 고조되었다. 대한건설협회에 따르면, 2008년부터 2012년 6월까지 상위 100대 건설사 가운데 21개 회사가 워크아웃·법정관리에 돌입했다. 금호·벽산·풍림·삼환·신동아·남광·극동·진흥·한일 등 귀에 익은 건설사들이 다수다.

계열사인 건설사의 위기가 그룹 전체 명운을 가르기도 했다. 극동건설을 인수한 웅진그룹은 법정관리에 들어갔고, 대우건설을 인수한 금호아시아나그룹도 이후 그룹 주요 계열사를 팔아야 했다. ㈜건영을 인수해 설립한 LIG건설은 법정관리 직전 기업어음 사기 발행 사건으로 구자원 LIG그룹 회장과 두 아들(구본상·구본엽)이 기소당하기도 했다(당시 수사를 이끌었던 인물이 현 대통령인 서울중앙지검 특수1부 윤석열 부장검사다). 결국 구본상·구본엽 두 아들은 각각 징역 4년과 3년을 만기 복역해야 했다. 부동산 PF 문제가 수년에 걸쳐 재계 전반에 영향을 미친 셈이다.

■ 2008년보다 지금 더 위험한 이유

이번 태영건설 워크아웃 신은 2010~2012년 건설사 연쇄 도산을 떠올리게 한다. 단순 비교했을 때 현 상황은 당시보다 나쁘다. 몇 가지 이유가 있다. PF 우발채무와 연관된 금융기관이 많고, 불경기 직전까지 버블이 더 크며, 금리가 높다. 2010년대 투자은행(IB) 육성을 위해 금융사들의 ‘칸막이’ 규제가 대폭 축소됐다. 증권사와 여신전문회사(캐피탈 등)의 부동산 개발사업 진입이 용이해졌다. PF 대출은 흔히 1차 대출인 ‘브리지론’과 2차 대출인 ‘본 PF’로 나뉜다. 2010년대 초반에는 주로 저축은행이 PF 부실의 여파를 맞았다. 그러나 현재 부실 PF는 새마을금고, 신협, 증권사, 보험사 가릴 것 없이 2금융권 전반으로 확대되고 있다.

2010년대부터 계속된 양적완화와 저금리로 인해 부동산 가격이 상승했고, 대다수 PF들이 저금리 환경에서 사업을 벌였던 점도 태영건설 워크아웃 사태의 여파를 더 우려하게 만든다. 2022년부터 금리가 인상되면서 PF 사업장들이 사업을 멈추는 것만으로도 많은 이자를 지불하게 되었기 때문이다. 한국신용평가에 따르면, 2023년 6월 기준 태영건설의 자기자본 대비 PF 우발채무 비율은 359.6%였다. 이 비율은 불과 3개월 만에 373.6%로 늘어난다. 3개월 사이에 PF 부채의 부담이 더 커졌다는 것을 알 수 있다. 개별 PF 사업장의 차환 과정에서 추가 신용 보강을 요구하는 경우도 발생했다. 이자는 쌓여가고, 금융기관은 ‘더 많이 보증해달라’고 요구한다. 금리가 상승하던 2022년 하반기부터 ‘PF 옥석 가리기’가 필요하다는 주장이 나온 것도 이 때문이다. 사업성이 부족한 PF를 살려둘수록, 이자비용만 더 증가한다는 논리였다.

2023년 12월28일 김주현 금융위원장(왼쪽 네번째)이 태영건설 관련 대응 방안을 발표하고 있다. ⓒ연합뉴스
2023년 12월28일 김주현 금융위원장(왼쪽 네번째)이 태영건설 관련 대응 방안을 발표하고 있다. ⓒ연합뉴스

상황이 점차 악화되지만 금융 당국의 PF 문제 대응은 미온적이었다. 2023년 9월까지만 해도 금융 당국 관계자들의 전망은 ‘상황이 나아지고 있다’였다. 9월3일 김주현 금융위원장과 이복현 금융감독원장은 당시 제기되던 ‘9월 위기설(브리지론 만기가 8월에 몰려 있다는 이유로 제기된 위험 전망)’에 대해 근거가 없다고 결론 내린 것으로 알려졌다. PF 대출 연체율이 낮아지고 있다는 게 이유였다. 9월21일 당시 추경호 경제부총리 겸 기획재정부 장관 역시 공개적으로 “최근 (부동산 PF) 대출 연체율 상승세가 크게 둔화하고, 리스크가 점차 완화되고 있다”라며 위기설에 대해 선을 그었다.

하지만 금융 당국자들이 연말에 접어들며, 태도를 바꾸는 모습을 보이면서 상황이 급반전되었다. 지난해 12월12일 이복현 금감원장은 “시장 원칙에 따라서 적절한 형태의 조정 내지는 정리, 자기 책임의 원칙에 따른 진행 등이 불가피하다”라고 말했고, 12월19일 최상목 신임 경제부총리 겸 기재부 장관도 국회 인사청문회에서 “(부동산 PF 리스크가) 남아 있어서, 위기는 어느 정도 헤쳐 나가고 있지만, 첫 번째 과제라고 생각한다”라며 상황을 엄중히 여기는 모습을 보였다. 가을까지만 해도 잘 관리되고 있다던 주요 당국자들의 입장이 바뀐 셈이다.

며칠 지나지 않아, 태영건설이 워크아웃을 신청했고, 바로 당일에 금융 당국의 후속조치가 뒤따랐다. 정부 처지에서 태영건설의 워크아웃은 갑작스러운 사태가 아니라, 시기를 미리 조율했던 것 아니냐는 의혹이 나오는 이유다. PF 부실 사태와 같은 이슈는 정부의 적극적 역할이 요구되는 게 사실이다. 그러나 PF 시장에 대해 고작 2개월 전까지 장밋빛 전망을 하던 주요 당국자들의 갑작스러운 입장 선회는 시장의 불안을 더 키울 수도 있다는 지적이 제기된다.

건설사 도산은 실물경제에 큰 영향을 미친다. 당장 하도급 업체로 연쇄적 자금경색이 이어질 가능성이 커진다. 정부는 태영건설이 진행하던 PF 사업장 가운데 분양이 완료된 사업의 경우 주택도시보증공사(HUG)의 분양 보증을 통해 공사를 이어가고, 나머지 비주거, 분양 전 사업장, 브리지론 단계 사업장은 옥석 가리기를 통해 시공사를 교체하거나 태영건설이 시공을 지속하도록 하겠다고 밝혔다.

하지만 PF 구조의 최종 담보물인 완성된 건물의 가치를 보장하기 어려워 또 다른 PF 부실 문제가 터질 수 있다는 우려가 뒤따른다. PF 사태를 해결하기 위한 가장 손쉬운 방법은 부동산 가격이 계속 상승하고 분양이 원래 목표하던 만큼 이뤄지는 것이다. 그러나 2022년 금리인상 이후 ‘제로금리’ 상황에서 만들어진 거품은 상당 부분 사그라들었고, 가계부채 증가로 인해 정부의 부동산 경기 부양책에도 한계가 드러났다. 만들기만 하면 팔리던 건설산업은 PF 부실이라는 결과로 이어졌다. 한국 건설산업은 2010~2012년 건설사 연쇄 도산 시기를 타산지석으로 삼지 못하고, 버블 뒤에 다가오는 위기를 다시 마주하는 중이다.

기자명 김동인 기자 다른기사 보기 astoria@sisain.co.kr
저작권자 © 시사IN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
이 기사를 공유합니다
관련 기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