두 개 대학에서 역사학을 가르치고 있는 페데리코 핀첼스타인이 쓴 〈파시스트 거짓말의 역사〉(호밀밭, 2023)는 탈진실 시대로 묘사되는 지금, 파시즘이 부활하고 있다고 주장한다. 이 책이 2020년에 출간된 것을 보면 지은이로 하여금 이런 우려를 하게 만든 장본인은 도널드 트럼프다(‘열대의 트럼프’라는 브라질의 자이르 보우소나루와 헝가리의 독재자 빅토르 오르반도 이런 우려에 기여했다). 트럼프는 영광스럽게도 이 책에서 파시즘의 창시자 무솔리니와 파시즘의 완성자 히틀러와 동격이 되었다.
지은이는 파시즘의 가장 큰 특색이 “주로 진실을 왜곡하고 거짓을 확산시킴으로써 정치적 힘”을 얻는 것이라면서, 이 점에서 트럼프는 다른 정치인들과는 급이 달랐고 이미 거짓말의 역사에서 탁월한 지점에 도달했다고 말한다. 티머시 스나이더가 〈가짜 민주주의가 온다〉(부키, 2019)에 쓴 바에 따르면 “대통령에 취임하고 처음 99일 중 91일 동안 트럼프는 적어도 한 번씩 거짓임이 뻔한 주장을 했다. 처음 298일 동안 그는 1628차례 그릇되거나 오해를 야기하는 주장을 했다. 한번은 30분 동안 진행된 인터뷰에서 24차례 그릇되거나 오해를 야기하는 주장을 했다. 인터뷰어가 발언하는 시간을 감안하면 1분당 한 번씩 한 셈이다. 모든 대통령이 거짓말을 하는 것은 사실이다. 차이가 있다면 트럼프는 진실을 말하는 게 예외적이라는 것이다.”
트럼프의 거짓말은 언론을 악마화하고 의회와 선거를 불신하며 역사를 비튼다는 점에서 역사적 파시즘과 아무런 차이가 없지만, 그를 진정한 파시스트로 만드는 것은 히스패닉과 무슬림 및 기타 소수민족에 대한 폭력 사주와 혐오 언사이다. 그는 2017년 버지니아 샬러츠빌에서 백인 인종차별주의자들이 시위를 벌일 때, 신나치(neo-Nazis) 가운데도 ‘선한 사람들’은 있다고 발언함으로써 인종주의에서도 선한 요소를 찾을 수 있다고 추인했다.
리사 이셔우드는 〈뚱뚱한 예수〉(대장간, 2023)에서 다이어트는 결코 성서적이지 않은데도, 미국의 일부 교회와 목회자들이 날씬함의 종교적 미덕을 찬양하고 뚱뚱함을 죄로 규정하는 다이어트 관련 산업과 결탁하여 여성 신도의 주체성을 빼앗고 기독교를 왜곡한다고 말한다. 일명 ‘예수 다이어트 산업’이라 불리는 기독교와 다이어트의 결합은 1957년 출간된 찰리 셰드의 〈살 빼는 기도를 하라〉가 처음 시작했다. 셰드는 이 책에서 하나님은 뚱뚱한 것을 상상하지 않으셨다면서, 지방은 거룩한 성령이 통과할 수 없어서 사람의 마음에 침투하지 못하게 방해하므로 비만은 하나님에 대한 불순종이 몸으로 구체화된 것이라고 주장했다. 셰드 이후에 여성의 체중은 신진대사의 문제가 아니라 신앙의 문제라고 을러대는 기독교 다이어트 서적이 끊이지 않고 나왔고, 교회와 신도가 구입(제휴)할 수 있는 ‘그분을 위해 날씬하기(Slim For Him)'와 같은 다이어트 프로그램이 인기를 모았다.
기독교가 다이어트 산업의 숙주가 될 수 있는 것은 기독교 자체가 지닌 남성 가부장적 성격 때문이다. 창세기는 하나님의 형상에 따라 인간이 지어졌다는데, ‘아버지’라고도 불리는 하나님은 남성으로 간주된다. 하나님의 형상에서 한 차원 떨어진 여성은 자연히 남성보다 열등한 존재로 자리매김되었으며, 여성은 남성의 감시와 지도를 받아야 했다. 오늘처럼 여성의 살이 문제가 되기 이전에는 여성의 성욕이 문제가 되었다. 인간이 완벽하고 변함없는 하나님의 형상에 따라 창조되었기에 비만은 치유(보정)받아야 할 불완전을 나타낸다. 가부장적 교회가 여성의 뚱뚱한 몸을 날씬하게 길들이려는 진짜 동기는 여성의 뚱뚱한 몸이 남성의 지도와 감시에 도전하고 대안을 제시한다고 여겨지기 때문이다.
성서에는 “네가 만일 음식을 탐하는 자이거든 네 목에 칼을 둘 것이니라(잠언 23장 2~3절)” “여호와여! 내 입에 파수꾼을 세우시고 내 입술의 문을 지키소서. 내가 그들의 진수성찬을 먹지 말게 하소서(시편 141장 3~43절)”와 같은 기독교 다이어트 프로그램이 좋아할 구절이 꽤 있다. 하지만 전 세계의 많은 사람이 굶주리는 상황에서 교회가 다이어트를 (여성) 신도 모집과 유지를 위해 이용하는 것이 과연 성서적일까. 기독교인은 자신들의 기준에 따라 하나님을 완벽하다고 생각한다. 바로 이 때문에 기독교는 ‘죄와 장애’를 쉽게 융합하게 되고, “부끄럽게도 장애를 불완전하고 때로는 악마적인 것으로 간주한다”. 교회의 장애 감수성이 사회의 진전보다 뒤처지는 이유다.
“파시즘이 돌아왔다”
〈파시스트 거짓말의 역사〉에 이어, 진 E. 베이트의 〈모던 파시즘〉(드러커마인드, 2023)을 읽게 된 것은 호기심을 잔뜩 부추기는 ‘유대-기독교 세계관을 위협하는 현대 파시즘’이라는 부제 때문이다. 앞서 읽은 책에서 핀첼스타인은 파시스트를 멍청하거나 미친 거짓말쟁이 취급을 해서는 안 된다고 주의를 주었다. 무솔리니·히틀러·트럼프를 정신병자로 취급하게 되면 그를 따르는 엘리트와 정신이 멀쩡한 추종자가 왜 그토록 많은지에 대한 설명이 불가능해진다. 유럽 근대 지성사 속에서 파시즘을 규명하려는 베이트의 주장도 그와 같다. 파시즘은 “서구의 지적 역사 속에 깊숙이 뿌리”를 내리고 있다.
히틀러로 대표되는 역사적 파시즘을 파악하기 어려운 것은 파시즘이 계몽주의의 계승과 단절을 동시에 품고 있기 때문이다. 계몽주의는 이성을 앞세워 유대-기독교의 초월적이고 불변하는 가치(신)를 파기했다. “신은 죽었다”라는 니체의 선언은 계몽주의 시대에 이미 준비된 것이다. 파시즘은 유대-기독교의 초월적이고 불변하는 가치를 파기한 계몽주의를 계승했으나 신을 죽인 도구였던 이성을 받아들이지 않았다(이성과 단절했다). 파시즘은 그 대신, 니체가 조악한 이성보다 우월한 것으로 내세운 ‘의지’를 수용했다. 의지는 이성이 아닌 무의식·자아·신화·초인(영웅)·선민(選民)·피와 흙 같은 반초월적이고 내재적인 것을 편든다. 1993년에 출간된 이 책에서 베이트는 파시즘을 “본질적으로 하나의 영적 운동”이라고 말하며 새로운 이교주의(新異敎主義·neopaganism)로 명명한다. 지은이는 기독교 신학의 시각에서 파시즘을 비판하고 있지만, 속내는 니체와 하이데거로부터 실존주의와 포스트모더니즘으로 이어진 현대 철학을 파시즘 철학(반이성주의)으로 단죄하는 데 있다.
베이트는 30년 전에 쓴 책의 서문을 “파시즘이 돌아왔다”로 시작했다. 핀첼스타인은, 파시즘은 1945년 패배 이후 민주주의 시대에 맞게 자신의 본모습을 포퓰리즘으로 변형했으며, 트럼프주의를 가리켜 포퓰리즘으로 위장한 파시즘이라고 말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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