6월28일 프랑스 파리에서 공영방송 노동자들이 수신료 폐지 반대 시위를 벌이고 있다.ⓒAFP PHOTO

5월 재출범한 에마뉘엘 마크롱 정부가 방송 수신료 폐지 문제로 난항을 겪고 있다. 수신료 폐지는 마크롱 대통령의 경제 공약 중 하나다. 대선 당시 프랑스 국민이 압도적으로 지지한 국정 과제는 ‘구매력 향상’이었다. 지난 대선 코로나19와 러시아-우크라이나 전쟁으로 어려워진 민생 챙기기가 최우선 과제로 떠오르자, 마크롱 대통령을 비롯한 몇몇 후보는 수신료를 걷지 않겠다는 공약을 내걸었다. 수신료 폐지 법안이 의회를 통과했지만 논란은 계속되고 있다. 공영방송의 재정 독립성에 해롭다는 지적이 나온다.

프랑스는 1933년 라디오방송부터 공영방송 수신료를 부과해왔다. 1949년 수신료 범위가 텔레비전으로 확대됐고 2009년부터는 거주세를 내는 가구마다 TV 보유 여부를 확인해 추가 세금을 부여했다. 현재 TV를 보유한 프랑스 가구는 매년 138유로(약 18만5000원)를 수신료로 낸다. 2020년 2800만여 가구가 수신료를 납부해 31억 유로(약 4조1000억원) 규모의 세수를 확보했다. 이 수신료로 공영 채널을 운영하는 프랑스텔레비지옹과 국제방송 ‘프랑스 메디아 몽드’, 라디오프랑스, 프랑스-독일 공동 TV채널 아르테, 국립시청각센터를 지원한다. 2021년 프랑스 문화부의 공식 조사 발표에 따르면 공영방송 운영에 수신료가 차지하는 비율은 83%에 달한다.

사실 프랑스는 유럽 국가 중 방송 수신료가 그리 높지 않은 나라에 속한다. 유럽방송연합의 2020년 발표에서 스위스, 독일, 영국에 뒤이어 8번째 순서를 차지했다. 스페인·네덜란드·벨기에는 세금에서 수신료를 충당하고, 덴마크·스웨덴·독일·영국은 시청각 기기 전반에 세금을 부여하는 방식으로 수신료를 걷었다. 유독 프랑스만 수신료 폐지 목소리가 나오는 것은 아니다. 영국 정부도 2028년까지 BBC 수신료 폐지를 목표로 하겠다고 밝혔다. 스위스에서는 2018년 이 문제를 국민투표에 부쳤으나 부결되었다.

수신료 폐지는 마크롱 대통령의 재선 행보에서 중요한 문제였다. 지난 3월7일 파리 근교 주민과 대담하면서 그는 “거주세와 연관된 방송 수신료도 폐지하겠다”라고 말했다. 2017년 대선 당시 공약이었던 거주세 폐지와 더불어 방송 수신료도 폐지하겠다는 말이었다. 이튿날 라디오 프랑스앵테르에 출연한 정부 대변인 가브리엘 아탈은 “TV를 소유한 프랑스 국민이 점점 줄어들고 있는 현 상황에서 공영방송 수신료는 낡은 수단에 불과하다”라고 말했다. 그는 별도의 예산을 편성해 수신료를 충당하겠다고 말했다.

대선 국면에서 수신료 폐지는 뜨거운 감자였다. 3월8일 프랑스앵테르와 인터뷰에서 시청각디지털커뮤니케이션규제청(Arcom) 대표 로크올리비에 메스트르는 “공영방송이 건재하려면 재정 영속성을 보장하는 메커니즘이 필요하다”라고 말했다. 언론역사학자인 파트리크 에베노는 같은 날 라디오 프랑스앵포에서 “(수신료 폐지가) 공공기관의 재정에 문제가 되진 않을 것이다. 최근 증액된 정부예산에서 공영방송 운영비용을 충당하면 오히려 세수가 간결해진다”라고 말했다. 좌파 정당 후보들은 일제히 비판을 쏟아냈다. 3월8일 유럽녹색당(EELV)의 야니크 자도 후보는 “공공기관에 대한 대통령 노선이 극우 정당과 같다는 것은 의미심장한 일”이라고 말했다. 실제로 수신료 폐지는 극우 성향 ‘재정복(Reconquête)당’의 에리크 제무르, 우파인 공화당 발레리 페크레스 후보 등의 공약이기도 했다. 사회당(PS) 안 이달고 후보는 “TV 수신료 폐지는 공영방송의 독립성을 죽이는 것이나 다름없다”라고 말했다.

“극우파 공약, 방송 독립성 죽인다”

5월11일 마크롱 대통령의 재선 성공 이후 첫 국무회의에서 정부는 수정예산안에 공영방송 수신료를 포함했다. “올해부터 수신료를 폐지하고 공영방송이 독립성을 유지할 수 있게 재정을 지원하겠다”라고 발표했다. 새 정부의 문화장관인 리마 압둘말라크는 6월21일 라디오 프랑스앵테르에 출연해 “의회에서 (수신료가 아닌) 새로운 재원 조달 방식을 찾는 데 주력하겠다”라고 말했다. 장관은 수신료 폐지가 ‘공영방송 민영화’와는 다르다고 선을 그었다. “대선에서 몇몇 정당이 공영방송을 민영화하겠다는 공약을 낸 건 사실이지만 우리 정부의 계획과는 완전히 다르다. (마크롱) 대통령은 견고하고 독립적인 공영방송을 지지한다고 여러 차례 확언했다”라고 말했다.

이에 대한 반대 움직임이 끊이지 않고 있다. 6월28일 파리에서는 프랑스텔레비지옹, 라디오프랑스 노조의 반대 시위가 열렸다. 노조는 수신료 폐지가 “수신료를 정부예산에 포함시킴으로써 공영방송을 불안정하고 빈곤하게 만드는 것”이라고 주장했다.

7월23일 수신료 폐지 법안이 찬성 170표, 반대 57표로 하원을 통과했다. 법안에는 부가가치세 일부(37억 유로, 약 4조9500억원)를 공영방송 재원 조달에 사용하는 조항이 포함됐다. 새 정부의 재정장관으로 임명된 가브리엘 아탈은 “프랑스 국민에게 부담이 되는 세금을 없애고 싶었다. (동시에) 공영방송의 독립성을 유지하는 데 전념하겠다”라고 말했다. 7월22일 일간지 〈르피가로〉가 여론조사기관 오독사(Odoxa)와 함께 발표한 여론조사에 따르면, 응답자의 66%가 공영방송 수신료 폐지를 구매력 향상에 효과적인 정책이라고 평했다.

7월23일 프랑스 하원의회가 수신료 폐지 법안을 통과시켰다.ⓒEPA

의회 내 반대 의견도 적지 않았다. 지난 6월 총선을 앞두고 결성한 범좌파 정당 연합인 신민중생태사회연합(NUPES) 의원들은 만장일치로 이 법안에 반대했다. 굴복하지않는프랑스(LFI)당의 클레망틴 오탱 의원은 “민주주의는 독립성을 보장하는 재정으로 운영되는 견고한 공공서비스가 필요하다. 해당 법안은 선동적이고 위험한 조치다”라고 말했다. 사회당 아르튀르 들라포르트 의원은 라디오 프랑스앵포에서 “이미 몇몇은 면제받고 있는 세금인 수신료를 TV가 없는 국민까지 모두 내는 부가가치세로 대체하는 것은 부당하다”라고 말했다. 7월28일 언론 종사자 450명은 일간지 〈르몽드〉에 수신료 폐지안에 반대하는 공식성명을 냈다. 해당 성명에서 그들은 “정부는 (휴가철인) 한여름에 수정예산안을 통과시켰다. 공공서비스에 대한 숙고와 진정성 있는 논의도 없이 공영방송의 미래를 넘긴 것은 불합리하다”라고 비판했다.

8월1일 수신료 폐지안은 상원에 부쳐졌다. 이날 회의에서 법안 보고 책임자인 공화당 장프랑수아 위송은 2024년 12월31일까지만 부가가치세로 공영방송 수신료를 충당하고 그 이전에 새로운 재정 마련 방안을 구축할 것을 제안했다. 이날 수신료 폐지안은 찬성 196표, 반대 147표로 상원을 통과했다.

기자명 파리∙이유경 통신원 다른기사 보기 editor@sisain.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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