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7년 8월 파리 레퓌블리크 광장에서 시위를 하는 딜리버루의 자전거 배달원들. ⓒAFP PHOTO

딜리버루(Deliveroo)는 다국적 음식 배달 플랫폼이다. 본사가 있는 영국을 비롯해 세계 10개국에 진출했다. 프랑스 300개 지역에서 1만5000여 개 식당과 협업 관계를 맺고 있다(2020년 기준). 지난 4월19일 ‘딜리버루 프랑스’는 직원으로 고용해야 할 배달원을 프리랜서로 채용하는 위장도급을 맺어 유죄판결을 받았다. 파리형사법원은 딜리버루 프랑스에 벌금 37만5000유로(약 5억원)를 부과했다. 2015년과 2017년 사이 배달원을 노동자로 등록하지 않고 사회보장비·급여세 등을 의도적으로 내지 않았다는 혐의다. 정신적 피해를 이유로 딜리버루를 고소한 노동총동맹(CGT) 등 5개 노동조합에 각 5만 유로(약 6700만원)의 배상금을 지급해야 한다고 판결했다.

4월19일 딜리버루 측은 “판결문을 검토하고 상고 가능성을 열어두겠다”라고 밝혔다. 그동안 ‘우버화’ 문제를 취재해온 귀르방 크리스타나자야 〈리베라시옹〉 기자는 이날 라디오 ‘프랑스앵포’와의 인터뷰에서 “우버 시대의 플랫폼이 최초로 형사처분을 받은, 무척 상징적인 판결”이라고 말했다. 2020년 2월에 파리 노사분쟁조정위원회(1심)에서 딜리버루 배달원을 노동자로 인정하고 보상금 3만 유로(약 4000만원)를 지급하라는 민사 판결이 있었지만, 2심급 형사법원의 판결로는 이번이 최초인 셈이다. 2020년 재판에서도 배달원들의 변호를 맡은 케뱅 망시옹은 이번 판결을 두고 “수년 전부터 기다려온 결과이자 첫 전투 승리다”라고 말했다.

4월19일, 딜리버루 유죄판결이 난 뒤 전직 배달원 제롬 피모트 씨가 취재진의 질문에 답하고 있다. ⓒREUTERS

3월17일, 딜리버루 CEO인 윌리엄 슈는 공판에 불참했다. 반면 배달원 100여 명은 손해배상 청구인 자격으로 참석했다. 법정에서 셀린 뒤쿠르노 검사는 딜리버루가 “배달원들을 값싸게 고용하기 위해 부정행위를 저질렀다”라고 말했다.

회사 측은 배달원에게 ‘배달복 의무 착용’과 같은 사내 규칙과 교육 영상이 담긴 메일을 수시로 보냈다. 배달 경로와 지연 여부를 체크해 벌점을 매겼고, 배달원들의 아침 기상 여부도 관리했다. 주문이 몰리는 주말 배달을 거부한 배달원에게는 일감을 제한했다. 담당 검사는 딜리버루 프랑스와 배달원 사이에 ‘종속관계’가 성립된다고 말했다. 실질적으로 딜리버루 프랑스 배달원은 ‘노동자’ 지위를 갖는다는 뜻이다.

이 판결은 앞으로 다른 소송에도 영향을 미칠 것으로 보인다. 이번에 파리형사법원은 판결문에서 “배달원들이 딜리버루와 종속관계에 있다”라고 명시했는데, 이는 다른 지역 배달원들이 낸 소송에서도 판결의 근거가 될 수 있다. 이 판결 직후, 프랑스 동부 브장송에서는 딜리버루를 상대로 소송 중인 배달원들이 모여 피해배상 청구인을 추가로 모집하기도 했다.

4월24일 변호사이자 파리에스트 대학 법학과 교수인 로랑 가메는 라디오 프랑스앵포와 인터뷰하면서 이렇게 말했다. “프랑스 법은 모 아니면 도다. 노동자이면 모든 걸 얻을 수 있고 노동자가 아니면 아무것도 얻을 수 없다. 노동자이면 노동법의 보호를 받고 여러 사회보장의 혜택을 받을 수 있지만 프리랜서는 그렇지 못하다.”

프랑스 법에 따르면, 배달원이 프리랜서가 아니라 노동자일 경우 딜리버루는 사회보장금을 지불해야 한다. 유급휴가를 제공하고 시간당 최저임금(SMIC) 이상을 지급해야 한다. 그러나 여태껏 배달원들은 ‘건당’ 급여를 받아왔다. 근무 중 사고가 나면 회사를 고소해 프리랜서가 아님을 증명해야 했다. 딜리버루 측 변호사 앙토냉 레비는 “회사와 배달원 사이에 종속관계는 존재하지 않았다”라고 말했다. 그는 “오늘 일할지 안 할지를 선택하고, 경쟁사에서 일할 수도 있으며, 들어오는 주문을 거부할 수 있는 사람이 직원인가?”라고 되물었다.

회사 측 “노동자로 고용할 생각 없다”

플랫폼 배달원의 노동자성은 프랑스에서도 논쟁거리였다. 딜리버루 프랑스는 그때마다 ‘배달원의 선택권’이라는 논리로 방어해왔다. 정치권의 비판에도 같은 논리로 대응했다. 집권 여당인 ‘전진하는 공화국(LREM)’의 무니르 마주비 의원은 ‘플랫폼 서비스 근무자 만족도 보고서’에서 딜리버루가 ‘고용 방식의 투명성’ 면에서 가장 낮은 점수를 받은 점을 지적했다. 이에 대해 딜리버루 프랑스 측은 ‘배달원들은 투잡 개념으로 이 일을 하고 있는 것이다. 유동성은 배달원들이 플랫폼을 선택하게 된 아주 중요한 요소다. 배달원들을 노동자로 고용할 생각이 없다’는 입장을 표명해왔다.

디지털 플랫폼 노동자의 지위에 대한 논의는 유럽연합(EU) 집행위원회에서도 있었다. 지난해 12월9일 유럽연합 집행위원회는 우버, 딜리버루, 볼트(Bolt) 등과 같은 플랫폼 회사가 노동자들을 프리랜서나 자영업자로 채용하는 위장도급을 금지하는 지침을 발표했다. 이 지침은 올해 2분기 유럽의회에서 개정될 예정인데, 개정될 지침의 골자는 크게 두 가지다.

먼저 노동자성을 정하는 기준 몇 가지를 제시한다. △플랫폼의 제재나 감시를 받는다 △급여를 직접 정할 수 없다 △특정 업무를 받아들이거나 거절할 수 없다. 이 중 두 가지 이상에 해당하면 노동자 지위가 인정돼 근로계약을 다시 맺어야 한다. 다음으로, 이 기준에 해당하는지를 두고 노사 분쟁이 생겼을 때, 그 입증책임을 회사에 물렸다. 이 지침에 따르면 “노동자 지위로 추정되는” 직원들을 노동자로 채용하지 않은 이유를 사용자 측에서 밝혀야 한다.

유럽연합 집행위원회에서 노사관계를 담당하는 유럽의회 의원 실비 브뤼네는 “법률의 보호가 없다면 노동자들은 ‘현대판 노예’처럼 이용될 것이다”라고 말했다.

유럽 각국 정부가 노동자를 보호하려고 제도 정비에 나서자, 플랫폼 자본은 철수 카드를 꺼내들고 있다. 지난해 스페인 정부는 모든 딜리버루 배달원을 노동자로 고용하게 하는 노동법 개혁을 단행했다. 그러자 딜리버루는 스페인 시장에서 철수했다. 회사 측은 “스페인에서 올린 수익은 전체의 2%에 불과하다. 수익이 더 나는 시장에 투자를 집중하겠다”라고 밝혔다.

기자명 파리∙이유경 통신원 다른기사 보기 editor@sisain.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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